2015/7/9
새벽 1시 37분
퇴근길
택시를 타고 눈을 감고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머리에 부딪힌다.
눈을 감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한 인생이 아니야.
새벽 1시 37분
퇴근길
택시를 타고 눈을 감고 창문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머리에 부딪힌다.
눈을 감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이건 내가 원한 인생이 아니야.
생일 당일 새벽
이게 뭐하는거지
우울하다.
모든 것은 최악으로 치닫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살다보면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다 생각도 되지만
대체로는 좋은 방향보다
안좋은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최근 본 TV광고중에서 가장 잘 만들었다.
광고대행사는 이노션
제작사는 그림브라더스
라는데 그림브라더스가 도대체 어디지…
저녁 식사를 사러 나가는 길
나는 어디로 가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어디로 가는가
종종
알 필요가 없는 사실을 안 경우가 있는데
좋은 결과였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냥 모르고 사는게 편할 때가 많은 것 같다.
지난주 목요일
회사 training이 있어서 홍콩으로 가는 비행기
그날은 입사하고 8년이 되는 날이었다.
“잘난 사람보다 약간 무능한 사람이 회사를 오래 다닌다”는 말도 있는데
나는 잘난 사람이고 싶지도, 무능한 사람이고 싶지도 않지만
현실에 안주한 것이 아닌가
스스로 반성하게 된다.
난 이 결정을 지지한다.
(번역) 버락 오바마의 동성결혼 합헌 연설 전문
2015년 6월 27일 by 페디
미국은 우리 모두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건국이념 하에 건국되었습니다. 각 세대의 과제는 시대가 변해도 모든 미국인이 그 말을 보장받도록 끊임없이 이어나가고 추구하는데 있습니다.
이 여정의 발걸음은 때로는 작은 변화에서 옵니다. 헌신적인 사람들의 끊임없는 노력 끝에 2보 전진하기도, 1보 후퇴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오늘처럼, 느리지만 꾸준히 정의와 함께 노력한 결과는 마치 번개처럼 올 때도 있습니다.
오늘 아침, 연방대법원에서는 평등한 결혼을 보증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모든 미국인들이 법으로부터 같은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재확인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들이 누가 됐든, 누구를 사랑하든 평등하게 대우받아야 합니다.
이 결정은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임시변통의 시스템을 마감할 것입니다. 이로 인해 한 주에서는 결혼을 인정받았지만, 다른 주로 이주하거나 심지어 방문했을 때 결혼상태를 인정받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는 수백수천의 동성커플의 불안정함을 끝내게 될 것입니다.
이 판정은 이 위대한 땅 위의 모든 동성 커플에게도 결혼의 존엄성을 제공하면서, 우리 사회를 더 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두 번째 취임 연설에서, 전 우리가 모두 평등하게 태어났다면, 분명 우리가 서로 사랑을 엄숙히 약속하는 것도 똑같이 평등한 것이라 말했었습니다. 이 결정으로 인해 그 신념이 법에 정식으로 오를 수 있어 흡족합니다.
이 판결은 짐 오버게펠을 비롯한 다른 고소인들의 승리입니다. 이는 오랜 시간 동안 기본적인 시민의 평등권을 기다려 온 게이, 레즈비언 커플의 승리입니다. 이는 이제 그들의 가족이 다른 가족들과 동등하게 여겨질 아이들의 승리입니다. 이는 수년, 심지어는 십수년 간에 걸쳐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기도한 사람들의 승리입니다.
또한 이 판결은 미국의 승리입니다. 이 판결은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이미 그들 가슴속에 믿고 있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평등하게 대우받을 때, 우린 더 자유로워집니다.
저는 일관적으로 미국의 건국 이념에 따라 임기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는 왜 우리가 연방결혼보호법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왜 마침내 법원에서 그 차별적인 법을 폐지했을 때 기뻐했으며, 우리가 ‘묻지도 말하지도 마라(Don’t Ask Don’t Tell)’법(역주: 미군의 동성애자 복무 금지 규율로 2011년 폐지됨)을 폐지한 이유입니다.
연방 공무원들과 배우자들에게 결혼으로 인한 모든 혜택을 제공하는 데서부터, LGBT 환자들과 그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병문안을 할 수 있는 권리로 확장하는 데까지, 우리는 LGBT 미국인들의 평등에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과거엔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진보를 이뤄냈습니다.
LGBT 형제 자매들을 위한 변화가 오랫동안 느려 보였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다른 수많은 문제들과 비교했을 때, 미국의 변화는 꽤 빠른 편이었습니다.
선의를 가진 미국인들은 이 문제에 있어서 계속 관대한 관점을 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반대로 몇몇의 경우, 마음에서 우러났거나 혹은 종교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이 뉴스에 기뻐하는 사람들은 다양한 관점이 있으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것도 마음에 새겨둬야 합니다.
그러나 또한 오늘은 우리를 잡아채고 있고 때로는 고통을 주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희망을 줬습니다. 진정한 변화는 가능합니다. 사고방식의 변화도 가능합니다. 그리고 평등을 위한 진전을 해낸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면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다르지만, 같은 사람입니다. 혼자일 때보단, 뭉쳤을 때 더 강합니다. 이는 항상 그래왔습니다.
우리는 크고 광활하고 다양한 나라로 서로 다른 다양한 배경, 믿음, 경험,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로 이뤄져 있지만 하나의 궁극적인 이상을 공유합니다. 당신이 누구든, 어떻게 생겼든, 어떻게 시작됐든, 어떻게 누구를 사랑하든, 미국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해 나갈 수 있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모든 이들이 삶, 자유 그리고 행복추구권을 가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모든 미국인들이 그걸 보장받기 위해서 할 일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미합중국을 조금 더 완벽한 곳으로 만들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연방대법원의 결정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는 수십년 동안 들고 일어서왔고, 커밍아웃하고, 부모님께 말하고, 부모님은 자식이 어쨌든 그들의 자식을 사랑하고, 약자를 괴롭히고 비난하는 것들을 견뎌내면서 꿋꿋히 자기 자신을 믿어온 수백만 명의 사람들의 용기에서 나온 셀 수 없이 많은 작은 행동들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천천히 전국의 사람들이 사랑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게 만든 것입니다.
이는 너무나 비범한 업적입니다. 또한 평범한 사람이 비범한 일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근거이기도 합니다. 바비 케네디가 말한, 작은 행동들이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조약돌처럼 잔물결을 일으켜 희망의 폭포가 되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셀 수 없는, 종종 무명의 영웅들은 우리의 고마움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들은 매우 자랑스러울 겁니다. 미국도 매우 자랑스러울 겁니다.
감사합니다.
며칠전 건물주와 부딪히면서
“갑”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했으나
사실은,
딱히 “갑”이 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평생 “을”로 살 생각은 없다.
***
한국 떠나렵니다…내 인생 ‘을’로 끝날까 불안해서
중앙일보 원문 기사전송 2015-06-24 00:55 최종수정 2015-06-24 08:44
[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2030 ‘탈 한국’ 이유
한국을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하는 청춘들의 모습. 그들의 솔직하고 적나라한 목소리를 듣기 위해 익명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얼굴 위에 합성한 가면은 각자가 떠나고 싶어 하거나 살고 있는 나라의 국기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캥거루 회계사, 독일 공대녀, 평생 사장, 마냥 무계획씨.
우리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애국심은 그 어떤 가치보다 소중한 것이라고.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의문이 듭니다. 내가 사는 이 나라는 과연 사랑할 만한 곳인가. 특히 요즘 청춘세대 가운데 그런 의심을 나타내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취업도 결혼도 주택 마련도 힘든 한국 땅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는 푸념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옵니다.
최근에 나온 장강명 작가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한국에서의 삶에 지쳐 결국 호주로 떠나 버린 주인공 계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청춘리포트팀은 현실 속 계나‘들’을 만나 인터뷰했습니다. 지금 한국의 일부 청춘은 왜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걸까요. 소설 『한국이 싫어서』의 주요 대목과 함께 한국을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하는 청춘 5명의 인터뷰를 재구성했습니다.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한국이 싫어졌다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한국이 싫어서』, 10쪽)
“한국에서는 딱히 비전이 없으니까. 명문대를 나온 것도 아니고, 집도 지지리 가난하고, 그렇다고 내가 김태희처럼 생긴 것도 아니고. 나 이대로 한국에서 계속 살면 나중엔 지하철 돌아다니면서 폐지 주워야 돼.”(44쪽)
여기, 『한국이 싫어서』의 주인공 계나처럼 한국을 이미 떠났거나 떠나고 싶어 하는 5명의 청춘이 있다. 그 면면부터 소개해둔다. 익명 처리를 위해 별명으로 부르는 걸 양해하시길.
①캥거루 회계사: 29세 남자. 취업 면접에 줄줄이 낙방했다. 한국에선 취직이 왜 이리 힘들까.
②독일 공대녀: 28세 여자. 지난해 초 한국을 떠나 독일에 정착했다.
③워킹걸: 26세 여자. 호주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갔다. 영어 공부 열심히 해서 언젠간 영영 떠날 테다.
④평생 사장: 27세 남자. 호주에서 서빙과 청소 일을했다. 평생 서빙을 할 순 없어 일단 한국에 돌아오긴했지만….
⑤마냥 무계획: 23세 여자. 미국 룸메이트의 자유로운 생활을 보면서 외국 생활을 동경했다.
캥거루 회계사는 소설 속 계나처럼 한국을 떠나 3개월 전 호주로 갔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대학원에서 회계학을 공부하며 소설 속 계나의 궤적을 그대로 밟고 있다. 그는 “세월호 사태가 한국을 떠난 결정적인 계기”라고 했다.
“이 나라는 내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날 돌아보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피해를 당할 때 ‘을’의 위치에 있다면 끝이라는 느낌이 들었죠.”
“아버지 같은 삶을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있었다. “평생을 다 바쳐서 남는 건 집한 채와 자식인데 자식마저 보내고 나면 남은 아버지의 인생은 뭐가 되겠느냐”고 했다.
이번엔 독일 공대녀(28·여)의 사연을 들어보자. 그는 1년간의 캐나다 어학연수 이후 한국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결국 지난해 초 독일로 떠나 정보통신(IT)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다시 돌아올 생각은 없다.
“한국 사회는 자신과 다르거나 약자일 경우 굉장히 공격적이게 대하잖아요. 세월호 사태 같은 일이 생겼을 때 리본 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추모하는 분위기를 따르지않으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그런 분위기. 한국의 집단적인 문화가 답답했어요.”
독일 공대녀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성별주의(Sexism)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한국에서는 ‘여자는 여자라서 남자는 남자라서’라는 얘기를 쉽게 한다”며 “배려가 없고 다양성에 무심한 분위기를 견딜수 없었다”고 했다.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
“내가 아는 건 ‘무엇을’이 아니라 ‘어떻게’ 쪽이야. 일단 난 매일매일 웃으면서 살고 싶어. 남편이랑 나랑 둘이 합쳐서 한국 돈으로 1년에 3000만원만 벌어도 돼. 집도 안 커도 되고, 명품 백이니 뭐니 그런 건 하나도 필요 없어. 차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돼. (…) 한 달에 한 번씩 남편이랑 데이트는 해야 돼. 연극을 본다거나, 자전거를 탄다거나, 바다를 본다거나 하는 거. 그러면서 병원비랑 노후 걱정 안 하고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152쪽)
워킹걸(26·여)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대학생이다. 그 역시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때 경험했던 일이 잊히질 않는다고 했다.
“호주엔 공원이 많은데 낮 시간에도 아빠들이 정장을 입고 나와서 아기들과 놀고 있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단 한 번도 아이를 낳고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데 이런 환경에서는 애들을 두셋 낳아도 좋을 것 같았어요.”
마냥 무계획(23·여)도 여유 있고 배려 깊은 미국인 룸메이트를 만나고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을 갖게 됐다. 그는 “한국과는 달리 경쟁이 덜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다시 호주에 살고 있는 캥거루 회계사의 말을 들어보자.
“호주에선 하루 8시간 이상 일하는 순간부터 시급이 150%까지 올라요. 정말 최고의 노동 환경이죠.”
#유토피아는 없더라
“당시에 나는 다른 한국인은 한 명도 없는 셰어 하우스에서 살았는데, 거긴 정말 최악이었어.(…) 거실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소리가 그대로 들어왔고, 누군가 불쑥 천을 들추고 안으로 들어올 것 같은 두려움에 늘 시달렸어.”(88쪽)
막상 한국을 떠나본 이들은 다른 이야기를 할 때도 많다. 타국 생활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거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것과 언어 문제 등이 일상을 괴롭혀 끝내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이들도 있다. 『한국이 싫어서』의주인공 계나도 호주 생활에 시달리다 한국으로 잠시 돌아왔다.
평생 사장도 호주에서 1년간 머물다가 일단 한국으로 돌아온 경우다. 호주 리조트에서 일하며 생활했지만 다시 한국행을 택했다.
“유토피아 같을 줄 알았던 호주 생활도 일상이 되니 힘들었어요. 평생 서빙 같은 일이나 하면서 살 수는 없다고 생각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죠.”
#영영 한국을 떠날 용기가 있는가
“출국장에서 인사를 하고 보안 검색 구역으로 들어갔어. 난 도망치는 게 아니야, 행복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려고 애썼어. 이번에는 뒤돌아보지 않았어.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거든.”(162쪽)
“공항을 나오니까 적당히 시원하고 적당히 따뜻한 바람이 불어. (…) 나 자신에게. “해브 어 나이스 데이.” 그리고 속으로 결심의 말을 덧붙였어. 난 이제부터 진짜 행복해질 거야, 라고.(188쪽)
?『한국이 싫어서』 주인공 계나는 호주로 떠났다가 남자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한국으로 다시 돌아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 생활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호주로 다시 날아갔다.
지난해 말 한국에 돌아온 평생 사장도 계나처럼 다시 호주로 떠날 채비를 하고 있다. 일만 강요하는 한국의 문화가 견디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죽어라 일만 해도 집 한 채 사기 힘들고 결혼도 쉽지 않은 한국에서 어떻게 평생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언젠가는 영원히 이 나라를 떠났으면 좋겠어요.”
평생 사장은 정말 한국을 영영 떠날 수 있을까. 그리고 지금 한국이 싫다는 청춘들청춘들, 당신들은 과연 그럴 용기가 있는가.
채승기 기자, 배지원 대학생 인턴기자 che@joonang.co
가게를 문 열지않은 첫번째 일요일이었다.
밤늦게까지 회사 일을 하기는 했지만
낮즈음에 일어나서
점심을 먹고
그리고 나서는 무인양품에서 좌식의자를 하나 사고
사람들이 북적이는 이마트에서 이것저것 장을 보고
여의도 아티제에서 녹차빙수를 먹고
그리고 집에 들어왔다.
식당을 하던 때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들
거의 1년 반만에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남들에게는 평탄한 일상이었겠지만
나에겐 어색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