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대교
일요일 오후에 집 앞 한강대교 아래의 자전거도로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반포->여의도 방면)
일요일 오후에 날씨도 비교적 화창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이사온지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서야 아래 자전거도로에 간 것이 부끄럽다.
(여의도->반포 방면으로만 가봤다)
미세먼지를 핑계로 자전거를 안탔는데 반성을 많이 했다.
일요일 오후에 집 앞 한강대교 아래의 자전거도로에 가서 사진을 찍었다.
(반포->여의도 방면)
일요일 오후에 날씨도 비교적 화창해서 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이사온지 5년이 다 되어가는데 이제서야 아래 자전거도로에 간 것이 부끄럽다.
(여의도->반포 방면으로만 가봤다)
미세먼지를 핑계로 자전거를 안탔는데 반성을 많이 했다.
이제 막 취직한 19살 젊디 젊은 사람이
세상을 떠나게 되어 가슴이 아프다.
이런 사고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컵라면을 가지고 다니는 19살 직원이 변을 당했는지는 몰랐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
지하철 안전문 나홀로 정비가 앗아간 ‘19살의 꿈’
등록 :2016-05-29 19:03수정 :2016-05-29 21:05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 직원 김아무개군의 가방에 있던 스패너 등의 작업공구와 컵라면, 스테인리스 숟가락, 일회용 나무젓가락. 유가족 제공
28일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안전문(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업체 직원 김아무개군의 가방에 있던 스패너 등의 작업공구와 컵라면, 스테인리스 숟가락, 일회용 나무젓가락. 유가족 제공
또 지하철 안전문 사망사고
생일 하루 전 보수중 전동차에 끼여
협력업체 6명이 49개역 장애 처리
밥도 제때 못먹어 가방엔 컵라면
인력부족 탓 ‘2인1조’ 수칙 무용지물
작업 전 역무실에 보고도 못 한듯
“공기업 직원 될 희망에 버텼는데…”
“오늘이 아들 생일이에요. 어제 가족들이 같이 축하해주기로 했는데….”
29일 아들의 주검이 안치된 건국대병원에서 만난 아버지 김아무개(50)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아들(19)은 전날 2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의 고장난 안전문(스크린도어)을 고치다 승강장에 들어오는 열차와 스크린도어 사이에 끼여 숨졌다. 오후 5시55분 안전문을 열고 승강장에 진입하고 2분 뒤인 57분 사고를 당했다.
김군은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해 10월, 지하철역 안전문 유지보수 업체 은성피에스디(PSD)에 취직했다. 김씨는 “(아들이) 취직이 늦어 마음고생을 하다, 취직하고 너무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군은 퇴근 뒤 매일 ‘파김치’가 됐다. 은성피에스디는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협력업체로, 서울메트로 관할 121개 스크린도어 설치역 가운데 97개역 안전문 유지보수를 맡아왔다. 업무시간(오후 1시~밤 10시)에는 1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50개 가까운 역을 맡은 적이 허다했다. 김군의 어머니는 “인원이 적은데 수리 갈 곳은 계속 나오니까 아들이 밥도 잘 못 먹는다고 얘기했다. 근무시간이 넘게 근무한 적도 많았다”고 가슴을 쳤다.
사고 당시 김군이 소지한 가방에는 니퍼와 드라이버 등 작업공구와 필기도구 그리고 스테인리스 숟가락과 일회용 나무젓가락, 컵라면이 들어 있었다. 김씨는 “아들이 밥 시켜놓고, 출동 떨어져 못 먹는 경우도 많았다고 얘기했었다. 사고 당일에도 종일 굶을까봐 컵라면을 싸가지고 다녔던 것 같다”고 말했다.
업체와 노조 쪽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고 발생 당시 김군이 포함된 근무조 6명의 노동자는 49개 역의 안전문 장애 처리를 맡고 있었다. 직원 2명이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나머지 직원 4명이 지하철역 현장으로 지령을 받고 출동하는 식이다. 서울메트로 쪽은 하루 평균 30건, 많으면 40~50건의 장애가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업체 관계자는 “이용객들이 많은 시간 주로 장애가 발생하다 보니 인력이 부족할 때가 종종 생긴다. 사고가 났을 때도 그랬다”고 말했다.
2013년 1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서 같은 업체 직원이 안전문 점검 중 열차에 끼여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뒤 서울메트로는 선로 쪽을 점검할 때는 2인1조로 해야 한다는 안전수칙을 정했다. 그러나 김군은 혼자서 점검을 하다 변을 당했다. 서울메트로는 언론 브리핑에서 “전자운영실과 역무실에 작업 내용을 보고해야 하는데 보고 절차가 생략됐다”며 김군의 과실을 시사했다. 수리업체의 한 직원은 “하청으로서 빨리 장애조처는 해야 하고, 수리인력은 부족한데 보고를 하면 수리 허가가 안 나기 때문에 보고 없이 혼자 수리하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사고 당시 구의역에는 3명의 역무원이 있었다. 안전문 이상을 발견한 기관사가 신고했지만 역무원들은 1시간여 동안 안전문 고장 상황과 사고를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한다. 기관사의 신고는 관제실에만 통보되고 역무원들에게 전달되지 않는 체계다. 당연히 역무원 쪽의 안전확인 조처는 없었다. 경찰과 고용노동부 서울동부지청,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사고를 합동으로 조사할 계획이다.
김군은 안전문 유지보수 업무가 서울메트로 자회사로 이관된다는 소식에 공기업 직원이 될 수도 있겠다는 희망을 품어왔다고 한다. 지난 23일에는 비번임에도 서울메트로 본사 앞에서 협력업체 직원 전원을 자회사에 고용승계할 것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석했다. “공기업 직원 된다는 희망 하나로 참아가며 출근했던 아들이에요. 월급 받았다고 동생에게 용돈을 주고 출근하던 아들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 몰랐어요.” 김군의 어머니는 눈시울을 붉혔다.
이재욱 방준호 기자 uk@hani.co.kr
교보문고 온라인몰을 이용해왔다.
이 기사를 보니, 나라도 교보문고를 이용해야지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진 회사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베일속의 비상장사 (6) 교보문고
고 신용호 창업자의 ‘책사랑’…국민 독서량이 나라장래 좌우
책 베껴가도 눈치 주지 마라…연 4000만권 판매 ‘독보적 1위’
모바일족 증가에 성장 한계…오프라인 단행본 시장 위축
수년간 매출 5000억대서 정체…경영이념이 위기대응 더디게해
[ 고은이 기자 ] 1980년 광화문에 교보빌딩이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이 건물의 지하 1층이었다. 워낙에 목 좋은 금싸라기 땅이라 어떤 점포든 열기만 하면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고(故) 신용호 교보그룹 창업자는 온갖 사업 아이디어를 다 물리치고 서점을 만들었다. “돈은 교보생명으로 벌고 사회 환원은 서점으로 하겠다”는 지론에서였다. 그래서인지 교보문고는 그동안 돈을 버는 데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매출 5000억원대의 초대형 서점이지만 영업이익률은 1%를 넘지 않는다. 하지만 요즘은 독서인구 감소와 인터넷 서점, 모바일 콘텐츠의 도전에 시장을 지키기 위해 부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IMF도 놀란 독서 행렬
교보문고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1981년 6월1일. 8930㎡에 달하는 매장은 단일 면적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였다. 서가 길이만 24.7㎞였다. 이 대형 서점은 개장하자마자 서울의 명소가 됐다. 사람들은 앞다퉈 교보문고를 찾았고 아무런 부담 없이 오랫동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교보문고 개점 이후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은 ‘내가 하지 못한 일을 해줘서 고맙다’는 요지의 칼럼을 신문에 싣기도 했다.
고 신용호 교보생명 회장은 생전에 “연 500억원 정도의 적자는 내도 괜찮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보문고를 찾은 고객이 노트에 책 내용을 베끼더라도 직원들이 절대 눈치를 주지 않도록 했다. 책을 훔치려는 사람이 있어도 도둑 취급해 망신을 주지 말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타이르게 했다. 1985년엔 학자들을 위한 80만종의 해외 논문도 공급했다. ‘국민의 독서량이 나라의 장래를 좌우한다’는 신조 때문이었다. 이 같은 사회적 책임의식과 독서에 대한 애정은 교보문고만의 고유한 기업문화를 형성하는 밑거름이 됐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 관계자가 우연히 광화문지점에 들렀다가 많은 젊은이들이 책을 읽고 있는 것을 보고 “이 나라는 분명히 다시 일어난다”고 말했다는 에피소드는 교보문고 임직원의 자랑 중 하나다.
◆온라인에선 밀려
교보문고의 등장은 영세한 서점업계에 대형화·고급화 바람을 불게 했다. 물류·유통 비용을 줄이기 위한 규모의 경제가 서점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1995년 630억원이던 매출은 2015년 5234억원으로 늘었다. 전국 16개 매장과 바로드림센터 6곳, 인터넷 교보문고를 통해 연간 4000만권가량(전자책 포함)을 팔고 있다. 독보적인 업계 1위다. 2위인 예스24(매출 3586억원)와도 차이가 크다. 문구류를 파는 자회사인 교보핫트랙스 매출(2015년 기준 1213억원)도 쏠쏠한 편이다.
하지만 2011년 이후 매출이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 것이 이 회사의 고민이다. 지난해 교보문고 매출의 54.3%는 전국 16개 오프라인 매장에서 나왔다. 온라인 비중은 37.7%로 비교적 낮다. 2000년대 초 인터넷 서점들이 벌인 30~40% 할인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탓에 온라인 시장을 기선제압하는 데 실패했다. 단순히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업계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출혈 경쟁’은 하지 않겠다는 윤리적 판단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일이었다.
온라인 매출만 보면 예스24와 알라딘에 이은 업계 3위다. 한 업계 관계자는 “교보문고는 온·오프라인 서점을 동시에 운영한다는 장점과 동시에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한쪽에만 유리한 전략을 펼치기 힘들다는 한계도 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장 정체 타개할 수 있을까
스마트폰을 쓰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교보문고가 주력하는 오프라인 단행본 시장도 쪼그라들고 있다. 2012년 6월 본사를 광화문에서 파주로 옮긴다고 발표했을 때도 한 차례 위기설이 불거졌다.
교보문고 관계자는 “겉으로는 출판도시로 옮긴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내부에선 미래 먹거리가 불확실하다는 불안감이 팽배했다”고 말했다. 2013년엔 창사 이래 처음으로 매출이 전년보다 3.7% 줄었고 영업이익도 적자가 났다.
당시 교보문고 경영 컨설팅을 맡은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은 “교보문고 임직원은 하나같이 회사와 서점업을 사랑한다”며 “역설적이지만 이런 문화가 위기를 돌파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자신의 업을 너무나 사랑해 상황을 객관화하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는 창립 이념에서 비롯된 인문학적 정서가 지금까지 교보문고를 키워 온 원동력이지만 경쟁이 심해지고 있는 시장 상황에 대응하는 데는 오히려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주 금요일에 마전 입주자 대표회의가 있었고
지난주 토요일에 게시판에 입주자대표회장 명의로 공고가 하나 붙었는데,
기존의 아파트관리업체와 수의계약으로 재계약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아파트 1층에 주민들이 자유로이 글을 적을 수 있는 게시판이 별도로 있어서
거기에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을 하게된 사유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포함한
공개질의서를 부착했다.
월요일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관리업체가 전화오고
입주자대표회장은 공개질의서를 철거해라, 안그러면 경찰에 고발한다라고 까지 말하더라.
결국 그렇게 내 글은 철거당했고
그날 밤에 다시 붙였는데 다음날 또 철거당했다.
그들의 논리는, 관리규약 위반이고 관리업체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글을 부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난 이해할 수 없었다.
잘못되었다 지적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왜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정하였는지 결론으로의 도출과정을 물어본 것인데
그런 반응이…
주민끼리 대화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인데 왜 사전승인을 받아야하는지?
아파트 관리규약과, 관련법인 주택법/주택법 시행령을 보아도 그런 규정은 없었다.
비유하면,
어느 주민이 해당 지역구 국회의원이 운영하는 홈페이지의 자유 게시판에 지역구 현안에 대해 질의를 하였는데
질문글은 즉시 삭제당하였고, 홈페이지 운영자의 사전 동의를 받고 올리지않으면 안된다는 경고장을 받은 기분이랄까?
나를 정말 얼치기 호구로 본 것 같다.
그래서 싸우기로 마음 먹었다.
내 권리를 찾기로.
일요일 오후에 차를 몰고 사진을 찍기 위해 망원한강지구쪽으로 갔다.
내비를 잘못 찍고 가는 바람에, 원래 가려던 곳에 도착했지만
막상 이곳이 사진을 찍기엔 더 좋은 곳이었다.
사진이 마음에 든다.
여행 때도 경험했지만 의도치않은 다른 길도 그 또한 좋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오늘 LG-KT 경기를 보다가
10회 연장승부 만루상황에서 등판한 KT 김사율 선수가
LG 타자에게 잇달아 안타를 허용하며 역전패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LG팬이지만 마음이 편치않았다.
지금 찾아보니 김사율 선수는 80년생으로 벌써 만 36세의 고참 투수다.
고교 졸업 후 롯데에 지명을 받아 주로 셋업맨, 마무리 역할을 해왔고 2015년 KT로 이적하여 활동중이라 하는데,
그가 땀을 뻘뻘 흘리며 투구하고 씁쓸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 사람은 얼마나 마음이 괴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뷰민라 2016에서 안녕하신가영 이라는 가수는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 꽤 행복해보였다.
황재근씨는
과거 찜질방, 만화방, 옥탑방, 지하방을 전전하다가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우승상금을 자기 브랜드를 위해 쏟아부었고
지금은 7평짜리 원룸에 살고 있다는 인터뷰 내용을 보면서 그 역시 행복하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에 만족감이 큰 것 같다.
나는 그것을 지금에서야 깨달았다는 것이 반성할 점.
오늘 가족들과 사진을 찍었다.
어머니, 아버지, 아내, 동생, 제수씨, 조카 둘 총 8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 와중에 틈틈히 나는 내 사진을 찍었다.
라이카를 쓴지 8년이 되어가지만 라이카 쓰는 사람들은 한번씩 찍어본다는 이 셀피를 제대로 찍어보지못해서
스튜디오에 간 길에 한장 찍어보았다.
신의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아마추어 도전자가 부른 노래
전람회 졸업
가사를 음미해보는데 참 좋다.
김동률씨가 23세일 때 작곡/작사한 곡인데
이런 가사와
요즘 쇼미더머니에서 랩하는 애들의 남을 깎아내리고 외모, 재력, 인기 자랑으로 점철된 랩 내용과 비교되어
참…왜 시대는 퇴보하는가는 한탄을 하게 된다.
***
언제 만났었는지 이제는 헤어져야 하네
얼굴은 밝지만 우리 젖은 눈빛으로 애써 웃음지으네
세월이 지나면 혹 우리 추억 잊혀질까봐
근심스런 얼굴로 서로 한 번 웃어보곤 이내 고개 숙이네
우리의 꿈도 언젠가는 떠나가겠지 세월이 지나면
힘들기만한 나의 나날들이 살아 온 만큼 다시 흐를 때
문득 뒤돌아 보겠지
바래져가는 나의 꿈을 찾으려했을 때
생각하겠지
어린 시절 함께 했던 우리들의 추억들을 (그 어린 날들을)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라라……
요즘 당일 또는 전날 비가 왔다하면 남한산성으로 가서 서울 사진을 찍곤 하는데
어제 저녁부터 오늘 새벽까지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녁 해질 무렵 서울 하늘은 이랬다.
하루만에 황사와 미세먼지로 뒤덮인 모습
보정 하나도 안한 사진.
실제로 보고 충격을 받았다.
정말 미세먼지 감소를 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