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

LG 박용택 선수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vod/index.nhn?uCategory=kbaseball&category=kbo&id=217085&redirect=true

LG가 오늘 3연승을 기록했다.
오늘 수훈 선수로 선정된 박용택 선수가 인터뷰를 했는데
난 박용택 선수가 말하는 거 처음 봤다.

79년생, 38세의 노장으로 2,000안타를 코앞에 두고 있는 박용택 선수는
주자가 있는 상태에서 타석에 섰을 때 짜릿하고 즐겁고 행복하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이 인터뷰를 보면서 이 사람은 정말 자기 일을 사랑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회사를 다니면서 “기가 막힌” 로직으로 모델을 만들거나, 아무도 발견하지못한 DD finding을 찾아내었을 때에도
즐겁고 행복하다는 생각은 안해봤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일을 찾아야할텐데…

2016-07-30T02:54:39+09:00Sat 30 Jul 2016 2:54 AM|

마흔의 지혜 37가지

꼼꼼히 읽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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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의 지혜 37가지, 월간 중앙, 2005년 3월

지금 마흔인 사람은 앞으로도 산 만큼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계산해 두어야 한다. 수명을 길어 질 것이고, 자식들은 제 밥 벌어먹고 사느라 어려울 것이고, 더 이상 늙은 부모를 돌보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니 자식들에 기대어 일찍 뒷방으로 물러나 여생을 즐길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흔이 넘으면 경제적 감가상각의 속도는 가속화 된다. 더 불안한 고용 구조 속에서 더 오래 근속해야한다는 것, 이 아이러니를 풀지 못하면 먹고 살기 조차 쉽지 않다. 나아가 삶의 절정을 놓치지 십상이다. 마흔 살 10년을 잘 보내는 지혜가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을 실천이다. 자신에게 적절한 것으로 10 가지만 골라 잘 실행해도 적잖은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삶을 꾸려가는 7가지 강령

마흔이나 먹었으니, 세상이 만들어 주는 대로 사는 대신, 스스로 만지고 냄새 맡고 체득나름대로의 깨달음이 있을 것이다. 그 깨달음에 충실한 것이 마흔의 미덕이다. 삶에 대한 자신의 깨달음을 따르는 것, 나는 이것을 마흔의 지혜의 기초라고 부르고 싶다. 자신의 깨달음을 따르고, 여력이 있으면 다음과 같은 보편적 원칙을 선별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을 제안한다.

* 생긴 대로 살아라. 멋대로 산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의 기질에 가장 잘 어울리는 행동을 하라는 뜻이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모습이 가장 매력적이다. 다른 사람의 처세를 모방하거나 어울리지 않는 몸짓을 하지 마라. 오래 동안 사귀고 싶은 사람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매력적인 사람이다. 마흔이면 몸과 얼굴에 살아 온 날들이 투영되게 된다. 그러므로 몸과 얼굴을 자신이 살아 온 좋은 날들로 채워라.

* 학생으로 계속 남아라. 나이듦의 최대의 약점은 ‘이 나이에 어찌 시작하랴’ 라는 겉늙음이다. 마흔살 10년에 중늙은이로 자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흔은 가을이 아니다. 마흔은 아직 무더운 여름이다. 인생의 절정에서 배우지 않는 게으름은 결단코 유죄다. 인생은 배울 것이 많은 학습장이다. 영원히 학생인 자만이 즐길 수 있다. 호기심의 끈을 놓치면 그때부터 바싹 늙고 만다.

* 과거를 그리워하거나 자랑하지 마라. 왕년은 없다. 역사는 자랑하기 위해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는 오늘의 문제를 풀기 위한 지혜로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에 기초하여 정체성을 만들어 내서는 안된다. 잠재성 또한 나의 정체성을 결정해야한다. 잠재성이란 발현되지 않았지만 이미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따라서 잠재성이란 단순한 가능성이 아니라 이미 현실의 영역으로 들어와 있는 현실의 한 부분이다. 내면적 잠재성의 구현을 통해 우리는 나아질 수 있다. 남아 있는 날들의 잠재성에 몰입하라.
* 젊은 사람들과 밥그릇을 놓고 경쟁하지 마라. 초라해 보인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다 넘겨 주지도 마라. 인생의 어느 시점이고 특유한 찬란함이 있게 마련이다. 인생은 시간의 두루마리 같은 것이다. 특별히 어느 시점이 다른 때 보다 더 압도적으로 찬란한 것은 아니다. 봄은 봄대로 가을은 가을대로 곱다. 마흔의 나이라 해서 밥그릇으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하지만 좋은 선배는 될 수 있다. 먼저 존경 받는 선배가 되라,

* 리스크를 지고 살아라. 예측된 위험을 피하지 마라. 모험이 없는 인생은 재미없다. 인생을 살다 보면 예기치 않은 일들이 생겨난다. 때로는 풀어야할 문제이고, 골치 아픈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예기치 않은 일은 신의 선물이다. 지루한 일상에 던져진 신의 수수께기며, 화두며, 짓궂은 장난이다. 특히 사람에 대해서는 위험을 감수하고 믿어주는 것이 좋다. 상대를 신뢰하지 못하면 방어적이 된다. 언제나 방어 자세를 취하고 상대를 불신한다면 치러야할 대가가 지나치게 크다. 사기를 당하거나 실망하게 될 리스크가 있을 지도 모르지만 상대방을 무능력하고 불성실하다고 생각하는 것 보다 현명한 일이다.

* 삶을 관조와 관찰로 대체하지 마라. 유감스럽게 가장 조신하고 사려 깊은 중년들에게 잘 나타나는 현상이다. 삶과 조금 격리되어 삶을 쳐다보는 조용한 옵서버가 되지 마라. 삶은 뜨거운 것이다. 살아봐야 삶이 된다. 사랑은 쳐다만 보는 것이 아니다. 마주보고 키스하고 안아주고 뒹굴며 섹스하는 것이다. 삶을 사랑하라. 헉헉거리며 사랑하라.

* 자연과 하나가 되라. 자연은 아주 지혜로운 파트너다. 자연과 격리되어 자연을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마라. 그 대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연습을 하라. 꽃과 이야기하고 여인의 허리를 안듯 나무의 허리를 쓰다듬고, 달을 즐기고, 종종 산에 들어라. 동양의 지혜는 모두 자연으로부터 왔다.

인간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강령 7가지

인간이란 말 그 자체가 사람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 사람을 잘 만나면 인생과 운명이 바뀐다. 어찌 고품격 처세술이 없겠는가.

*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모든 사람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가능하면 불쾌한 사람과는 섞이지 않는 것이 좋다. 불쾌한 사람과의 만남은 시간과 돈과 사람과 에너지를 모두 잃고 긍정적 사고조차 잃게 된다. 기분 좋은 사람과 만나 어울리는 데도 시간이 모자란다. 그러나 피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편안하고 냉정하게 만나는 것이 좋다. 마치 한 달에 두 번 씩 고장나는 자동차를 산 열 받은 고객이라고 생각하라. 결코 적으로 만들지는 마라.

* 부탁 받지 않으면 충고 하려 하지 마라. 공자가 한 말이 있다. ‘분발하지 않으면 알려주지 않고, 애태우지 않으면 말해주지 않는다’ (不憤不啓 不悱不發) 아무 때나 나서서 훈계하고 조언하고 답을 알려 주려하지마라. 젊은이들은 스스로 방황하고 틀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잔소리꾼은 선의를 가지고 있을 때도 가장 지겨운 존재다.

* 현재의 관점에서 이해하라. 과거는 우리가 어떤 사람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그러나 과거에 지나치게 많은 비중을 두지 않는 것이 좋다. 과거에 누군가에게 가슴 아픈 짓을 안 해 본 사람은 없다. 사람들은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고, 그 때 그 상황에 처하지 않고는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렵다. 더욱이 사람은 변하는 것이다.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소문과 풍문으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금물이다. 현재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전문성을 가지고 판단하라.

* 성과 보다 존재에 고마워하라. 상대를 칭찬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칭찬의 힘은 경우에 따라 매우 다르다. 상대가 스스로 인정할 수 없는 칭찬은 불편한 일이며, 아부이며, 마음이 서로 닿지 못하는 경박한 처세일 수 있다. 특히 동양적 문화는 ‘마땅한 일을 했을 때’ 칭찬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연히 해야할 일을 못했을 때 비난하는 것이 보통이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관계없이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는 성숙이 권장 되어 왔다. 칭찬을 할 때는 성과에 대한 칭찬 보다는 그 사람의 존재에 대한 칭찬을 해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 감정의 70% 정도는 표현하려고 애써라. 내향적 사람도 있고, 외향적 사람도 있다. 사교적인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자신에게 맞는 표현 방법을 계발하는 것이 좋다. 웃음 하나로 고마움을 전하거나, 눈짓하나로 공감한다는 것을 알려 줄 수 있다. 수사학이 길어야 할 필요도 찬란해야할 필요도 없다. 소박하고 진솔한 표현이 훨씬 진지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의 2/3 정도는 자기답게 표현하는 비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나머지 1/3은 마음 속에 묻어 주는 것이 좋다. 묻어 두는 법도 반드시 터득해야하는 기술이다.

* 휴먼네트워크를 만들어라. 많은 사람을 알면 좋지만 유지하는 데 그만큼 시간과 노력이 든다. 따라서 자신의 유지력 안에서 적절한 규모의 휴먼네트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전문성을 공유할 수 있는 순수한 네트워크는 공들여 가꾸는 것이 좋다. 혼자할 수 없는 수련과 정보를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관계를 위한 고리는 너무 강하게 묶어두면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 담합과 부패가 이 ‘끼리끼리’로부터 온다는 것을 이해해야한다.

* 들으면 친해진다. 묻고 잘 들어라. 내향적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절제된 말 밖에 할 수 없으니 상대방의 관심사를 묻고 들으면 서먹한 대화가 잘 이어진다. 외향적인 사람은 혼자 떠들지 않기 위해서라도 상대방에게 그의 관심사를 묻고 그에게도 말할 기회를 주는 것이 좋다. 상대방이 하고 있는 일, 잘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물어라. 그러면 신나게 말해 줄 것이다. 자신이 떠들고 난 것 보다 상대방의 말을 더 많이 듣는 것이 언제나 이문이 남는 거래다. 더욱이 다른 사람이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을 즐겨 떠들게 했으니 그 만남은 유쾌하게 남는다.

일에 대한 강령 7가지

일은 우리가 깨어있는 시간의 2/3를 차지한다. 일이 품삯으로 전락하는 경우 우리의 인생 2/3가 먹고 살기 위해 날아가 버린다. 먹고 사는 일 역시 진지한 일이지만 삶은 그 이상이다. 그래서 일에 대한 마흔의 지혜가 또한 중요하지 않을 수 없다.

* 의식적으로 문제의식을 가져라. 문제의식이 없으면 일을 단순 반복된다. 어제의 방식으로 오늘의 일이 처리되고, 내일의 일 역시 어제의 방식으로 처리될 것이다. 반복이 재생산될 때 개선과 혁신은 없다. 혁신의 능력이 없이는 지식 사회에서 성장하고 번영할 수 없다. 어제의 방식을 의심하라. 어제의 방식으로 오늘의 일을 처리하는 것을 퇴보라 생각하여 부끄러워하라.

* 실험하고 모색하라. 의도적으로 제기된 문제를 풀어라. 실패를 두려워하면 실험하기 어렵다. 실패는 아주 잘 배우는 또 하나의 방법일 뿐이다. 라 로슈푸코가 한 말을 기억하자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라 우리가 깨닫지 못했던 가능성이다 ” 그 가능성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실험해 보는 것이다.

* 알아주지 않아도 계속해라. 모든 훌륭한 성취의 이면에 숨어있는 공통점이다. 인정과 격려를 받으면 좋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외로운 일이 이루어져야 지금껏 아무도 하지 않았던 정말 큰 일이 성취된다. 처칠의 가장 짧은 연설을 기억하라. ‘여러분, 포기하지 마십시오. 포기하지 마십시오. 절대로 포기하지 마십시요’.

* 긍정적인 자긍심을 가져라. 자긍심은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다. 자신과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것이다. 남이 시키는 대로 하거나 하는 일에 대하여 자신의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자긍심을 가질 수는 없다. 따라서 먼저 자신이 매일 하고 있는 일을 자신의 언어로 규정해 보자. 예를 들어 나는 변화 경영전문가로서 내가 하는 일을 ‘ 어제보다 아름다워지려는 사람들을 돕는 일’이라고 규정했다. 그러자 내가 스스로 멋져 보였다.

* 자신만의 방식을 찾아라. 이 세상에 평범한 직업은 없다. 다만 ‘평범한 방식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평범해 질 뿐’이다. 전문가의 세계에서 중요한 것은 차별성이다. The Only The Best 라는 유일성을 중요하게 생각해야한다.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하면 어디서건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 1인 기업이라 생각하라. 시키는 일을 하며 품삯을 버는 피고용인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자신의 비즈니스를 경영하는 경영자라고 생각하라. 시키는 일을 하는 총무부 직원이 아니라, 회사와 총무서비스를 계약한 비즈니스 파트너라고 생각하라. 내 서비스에 만족하면 회사는 좋은 조건에 안정적인 조건으로 계약을 갱신해 갈 것이다. 나는 ‘나’(me)라고 불리는 1인기업의 경영자라 생각하라. 그 순간 자신의 서비스를 개선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불안과 욕망이 머리를 치켜 들 것이다.

* 자신의 지적 자산을 형성하라. 지식 사회의 재산은 지식이다. 지식은 만들어져야하고 저장되어야하고 유통되어야하며 활용되어야한다. 따라서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거나 블로그를 만들거나 까페를 만들어라. 그리고 매일 자신의 실험과 모색의 과정을 올려 회원들과 공유하도록 하라. 몇 년 내에 그곳에 있는 모든 지식의 소유자가 그대가 될 것이다. 지식사회에서 지적 재산권을 가진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즉 부자가 되었다는 뜻이다.

운이 좋아지는 강령 7 가지

‘운칠기삼’이라는 엉터리 조어가 있다. 수능을 준비하는 수험생들 사이에 돌고 있는 말이다. 운이 7이고 실력은 3이라는 뜻이다. 실력 좋은 놈이 운 좋은 놈을 당할 수 없다는 말이다. 성공한 사람들에게 성공의 요결을 물으면 반드시 포함되는 공통적인 성공 요소가 바로 ‘운이 좋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이 겸손의 의미가 아니라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든 성공한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운이 좋다. 정말 ‘모든 우주가 나서서 나의 성공을 돕는 듯이 느껴지는 순간’ 을 갖지 못한 성공인은 없는 것 같다. 운은 통제할 수 없는 우연일까 ? 아니다. 운은 오히려 만들어 지는 것에 가깝다. 직접적인 논리적 과정을 따르지는 않지만 과거의 어떤 사건이나 우연한 행동의 방식이 예기치 않은 때에 전혀 예상치 않았던 보답을 하는 것이 바로 운이다. 다행스럽게 좋은 운을 만들어 내는 일반적인 법칙이 있다.

* 호의를 베풀어라. 순수한 도움을 베풀라는 뜻이다. 가능하면 다른 사람이 곤란할 때 호의를 베풀면 효험이 크다. 자신이 친절한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우선 스스로 기분이 좋아진다. 호의를 받은 사람도 이 작은 순수한 도움을 잊지 못한다. 순수함의 힘이다. 호의는 씨앗이다. 뿌린 자가 거두어들이게 되어있다.

* 잘난 척 하지 않고 똑똑하게 보여라. 잘난 척은 만인의 구토다. 상대방의 말에 반박하고 싶거나 꼭 한마디 해주고 싶어 못 견딜 때는 의견을 말하기 전에 반드시 질문을 해라. 좋은 질문은 훌륭한 반박 보다 훨씬 부드럽고 창조적이다. 답변이 부족하면 상대방은 스스로 무너지고 답변이 훌륭하면 당신은 황금 같은 조언을 듣게 되는 것이다. 어느 쪽도 밑질 것이 없다. 더욱이 그대는 꼭 필요한 대목에서 꼭 필요한 질문을 한 현명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다른 사람을 통해 현명해 지는 것이니 현명해 지더라도 질투를 사게 되지 않는다.

* 변명하거나 남에게 원망을 돌리지 마라. 일이 잘못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것은 쪽박을 깨는 바보 짓이다. 결코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 질 수도 없고, 비난을 전가한 상대방과 적이 될 뿐이다. 제 3자도 속으로 그 소행을 비웃게 되는 졸렬한 방법이다. 변명하지 마라. 무능력을 선전할 뿐이다. 책임을 인정하되 주눅들지 마라. 실수는 잘 배우는 여러 가지 방법 중의 하나다. 같은 실수를 하면 바보라고 스스로 비웃어 줘라. 그러나 다른 실수를 하면 창조적 행위의 일환이라고 스스로 위로하라. 검증된 방식은 안전하나 보상도 적다. 새로운 방식의 모색은 실수를 수반하나 도약과 대박이 가능하다. 이것이 리스크와 보상의 상관관계다.

* 한 해 동안 꼭 하고 싶은 일을 한 두 개 골라라. 꼭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인생이 즐겁다. 삶이 찬란해지고 지친 영혼이 되살아난다. 매일 반복되는 채바퀴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공기로 허파를 채우게 된다. 초록빛 산소로 가득한 허파의 외침을 들을 수 있다. 마치 여행을 계획하고, 준비하고, 떠나고, 다녀온 후 사진을 정리하고, 그 곳에서의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하는 것 모두가 즐거움과 활력인 것과 같다. 항문까지 짜릿해 지는 신나는 일을 획책하고 실천하라. 이것이야 말로 스스로에게 운 좋은 일을 선물하는 방식이다.

*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라. 건강한 경쟁도 있고 존경할 만한 적도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과의 경쟁은 언제나 우리를 불편하게 한다. 은연중에 상대의 실수를 즐기게 하고, 경쟁자의 불운에 반사적 이득을 얻고, 반대로 그들의 승리 때문에 상처를 입게 된다. 이기는 자와 지는 자가 갈리고 상대방의 승리에 진심어린 찬사를 보내기 쉽지 않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와 경쟁하는 것은 적을 만들지 않고, 스스로 나아지는 방식이다. 승리하면 스스로 기뻐할 수 있고,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며, 모든 이의 찬사를 받을 수 있다. 가장 어려운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이며, 가장 가치 있는 진보는 자신의 어제 보다 나아지는 것이다. 적은 없고 추종자가 많아지는 승리처럼 운 좋은 성과는 없다.

* 다른 사람에게 공을 돌려라. 인디라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공이 돌아가는 사람과 일이 돌아가는 사람이 있다. 그 중에서 일이 돌아가는 사람이 되라. 그곳은 경쟁이 약한 곳이다“ 1인자가 되고 스타가 추앙 받는 시대에서 무대의 뒤편에 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그러나 인생은 긴 것이며 언젠가 자부심을 가지고 한 일을 통해 공이 돌아오게 된다. 한 때 2인자들은 대부분 1인자의 뒤편에 가려진 어둠 속에 있었지만, 그들이 사라지고 난 후 그들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 복수 하지 마라. 복수는 피가 날 때 까지 가려운 부위를 박박 긁는 것과 같다. 당장 시원할 지 모르지만 상처는 덧나고 관계는 끊어진다. 승진의 기회가 경쟁자에게 돌아가게 되었다거나 다른 사람의 의견이 채택되었다고 하여 분개하고 토라지지 마라.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하다고 말하라. 이것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이기도 하지만 매우 유효한 전략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미안한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의 빚을 지게 된다. 보복을 하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빚을 청산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다음에 좋은 기회가 와도 그 사람은 당신을 추천하거나 지원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당신에게 늘 마음의 빚을 가지고 있도록 남겨 두어라. 가능하면 그 빚을 갚으려고 할 것이다. 이것이 지나간 일로 운을 불러 오는 방식이다.

자기계발에 대한 강령 7 가지

직업은 소명이다. 세상에 기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타고난 자신만의 기질과 재능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것이다. 국화빵과 스탠다드의 시대는 지나갔고, 차별적이고 특화된 전문가들의 시대가 왔다. 노동 시장 어디서고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자리는 치워졌다. 지금은 ‘유일한 것이 최고’인 시대이며, 평생 학습을 통해서만 전문가의 자리를 유지할 수 있는 지식의 시대다.

* 자신의 기질과 재능을 찾아내라. 불확실성이 두드러진 불안의 시대에는 믿고 의지할 것이 자신 밖에는 없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정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무엇을 열망하고 무엇을 잘 할 수 있는 지 알아내야한다. 자신이라는 수수께끼와 퍼즐을 풀지 않으면 안된다. 이 내면적 자산을 활용하지 않고는 특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노력의 팔할을 자신의 특성에 집중하라. 자신의 특성 중에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장 뛰어난 특성을 활용하라. 예를 들어 사물의 어두운 부분을 보는데 능한 사람은 비판기능과 숨어 있는 덫을 파악하는 분야로 특화하라. 지금 까지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를 꾸짖어 사물의 밝은 부분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을 훈련하기 위해 헛된 노력을 기우려왔다. 왜냐하면 그것이 좋은 특성이라 믿어 왔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 특성 그 자체로 좋고 나쁨이 없다. 타고난 기질과 재능은 변하지 않는 것이니 즐기고 활용하라. 신의 선물이다. 그러나 노력의 20% 는 치명적 약점을 보완하는 데 써라. 적어도 그 치명적 약점이 강점을 상쇄하는 일이 없도록 다듬어라.

* 하루 한 두 시간의 해방구를 만들어라. 자신을 위하여 시간을 낼 수 없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바쁜 사람은 노예다. 자랑할 일이 아니다. 오늘 내가 가진 시간의 일부를 미래를 위해 투자할 때, 그것은 나의 ‘연구개발비’(R &D) 가 된다. 자신을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하루 두 시간을 쓸 수 있는 사람은 R &D 로 8% 쯤 쓰고 있는 사람이다. 미래가 되면 지금 보다 나아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 나를 위해 시간을 내지 못하는 사람의 R &D는 0% 다. 미래가 와도 나아지는 것이 없을 뿐 아니다, 흘러간 시간만큼 늙어있을 뿐이다.

* 매일 해야 이룰 수 있다. 시간을 낼 때는 매일 정해진 곳에서 가장 순도 높은 시간을 자신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이야 말로 가장 소중한 존재이기 때문에 먼저 자신에게 가장 좋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잇어야 한다. 새벽도 좋고, 밤도 좋고, 늦은 저녁도 좋다. 자신의 라이프 사이클에 가장 잘 맞는 시간대에서 매일 시간을 꺼내 자신을 훈련하라. “춤쟁이는 매일 춤춰야하고, 환쟁이는 매일 그려야하고, 글쟁이는 매일 써야한다. 마치 검객이 매일 수련하지 않으면 목숨이 위태롭듯이 매일 수련해야한다”. 이 말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 중의 하나다.

* 독학 없는 배움 없다. 혼자 공부하는 법을 즐겨야한다. 공부할 때는 공자 할아버지를 기억하라. 2500년이 지나 뼈도 남아 있지 않건만 아직도 살아서 영향력을 미치는 공자의 초절정 경쟁력을 상기해 보라. 논어의 첫줄이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하냐’인 이유를 잊지 말자. 공자의 시대가 춘추전국의 시대였고 중국 역사상 가장 경쟁적인 제자백가의 사회였음을 기억하자. 지금과 마찬가지로 그때의 경쟁력도 지식이었다. 모르는 것을 알게 되고 서툰 것을 익혀 능숙하게 하고 배우고 익힌 것으로 일상에 실천하여 나아지게 되면 즐겁지 않겠는가 ? 이것이 홀로 배움의 기쁨이며 진귀함이다.

* 스승을 구하고 파트너를 찾아라. ‘벗이 있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하냐’는 논어의 두 번째 구절이다. 벗은 수평적 사회의 상징적인 의미다. 수직적 위계와 권위주의가 붕괴하고 수평적이고 평등한 교류가 중요한 사회의 관계론의 근본이다. 서로가 서로의 좋은 스승이 되고 좋은 동지가 되고 건강한 경쟁자가 되는 새로운 관계를 체득하라. 같은 길을 걷는 5명의 스승과 동지를 얻어라.

* 기록하지 않는 것은 사라진다. 하루는 음식과 같다. 먹으면 사라지는 것이 음식이듯이 하루는 한 끼의 식사와 같다. 먹는 순간 음미하고 즐길 줄 알아야한다. 하루를 얻으면 현재를 얻는 것이다. 기록된 하루는 조금씩 다 다르지만 기록되지 않은 하루는 모두 같아 구별되지 않는다. 복제되어 반복되는 하루 밖에 가지지 못한 사람은 시지프의 신화 속의 인물과 같다. 기록하라. 하루 마다 그 독특한 맛을 찾아 적어 두어라. 그곳이 개인의 역사다.

퇴직에 대한 강령 2가지

무릇 떠나야할 때가 있다. 떠남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제 발로 떠나는 것이다. 이 경우는 반드시 갈 곳을 정하고 떠나야 좋은 여행이 된다. 그러나 지금 있는 곳이 싫어서 무작정 떠나면 가출이다. 겨울 하룻밤 노숙해 본 사람은 절대로 가출은 해서는 안되는 것임을 뼈 속 까지 알게 된다.

또 하나는 강제적으로 떠남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 경우는 참담하게 버려진 기분이다. 이 상황이 자신에게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 방법에 대하여 이미 35가지나 말해 두었다. 쫒겨남을 막는 다른 한 가지의 방법은 쫒겨 나기 전에 제 발로 떠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떠남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여행의 반은 준비에 있다. 지도를 펴고 행선지를 정하고, 어디를 경유하고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을까를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여행의 반이다. 여행의 즐거움을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 직장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과 제 발로 떠날 준비를 하는 것은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다닌다. 한 곳에서 꼭 필요한 전문가가 되고 열정과 헌신이 가능한 사람은 다른 곳에서도 그런 기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스스로 자신을 다듬어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 두었기 때문이다.

* 준비하라. 철저히 준비하라. 절실하지 않으면 떠나지 마라. 절실한 사람은 반드시 준비하게 되어있다. 그리하여 절실하게 해보고 싶은 자신의 길이 열릴 때 까지 기다려라. 그 순간이 오면 망설이지 마라. 전광석화라는 말은 이때 쓰는 말이다. 준비된 자 만이 그 때가 언제인지 알게 되어있다. ‘준비된 자가 기회를 만나는 것’, 이것이 성공이다.

* 자신에게 맞는 일을 유일한 방식으로 제공하라. 실패의 제 1 원인은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유망직종을 찾기 때문이다. ‘뭘 하면 먹고 살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빠지면 절대로 먹고 살 수 없다. 예컨대 밧줄을 타는 자가 밧줄 위를 걷는 것에 생각을 집중하지 못하고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애쓸 때 그는 이미 떨어질 운명인 것과 같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가슴 뛰는 일은 무엇일까 ? ’ 이 질문의 끈을 놓치지 말아야한다. 자신의 기질과 재능과 경험을 연결하여 차별화 하라. 그리고 그 일에 전력을 다하고 즐겨라. 이렇게 이루어진 차별화는 아무도 모방할 수 없다.

맺는 말

변화에 대하여 그 핵심을 표현하라면 나는 이렇게 말한다. “변화는 불행한 사람들의 주제다. ‘지금의 나’와 ‘내가 바라는 나’ 사이의 간격을 인식하는 불행한 자각으로부터 변화는 시작한다. 이 간격을 못 견디는 절박한 사람들만이 이 길을 선택한다. 변화는 에너지를 많이 요구하는 작업이다. 자신에 대한 창조적 증오 없이는 이 에너지를 공급 받을 곳이 마땅치 않다”

그러나 변화가 매우 매력적인 이유는 그것이 ‘내가 바라는 나’로 향하는 여정이기 때문이다. 환경에 강요당하는 ‘적자생존적’ 변화는 변화의 반쪽이며 불쾌한 과정이다. 변화의 또 하나의 반쪽은 ‘존재의 표현’이다. 즉 자신의 잠재성에 따라 가장 자기답게 사는 것, 이 자발적 변화는 아주 기분 좋은 과정이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늘 이 ‘두 개의 변화’ 가운데 쯤 서서 망설이고 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표지판이 필요한 것이다. 여기 37개의 표지판이 있다. 다행히 모두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필(feel)이 꽂히는’ 10개를 고르고 그 중에서 오늘 당장 한 가지라도 실천하면 변화는 오늘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한다. 부디 즐기시기를.

2016-07-26T23:16:49+09:00Tue 26 Jul 2016 11:16 PM|

병원 진료

2010년에 내치핵 수술을 받고 나서 즐겁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가
얼마전 건강진단 대장내시경에서 “내치핵”이라는 한 단어가 적혀있어서

찜찜한 마음에 예전 수술했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선생님이 진단해보더니 깨끗하다며 걱정 없이 살라고 했다.

내치핵 수술이 너무 고통스러웠기에
다시는 하고 싶지않았고
그 수술을 다시 하면 어떡하나 걱정을 했었는데
정말 다행이다.

마음이 가볍고 또 감사한 마음이 든다.

2016-07-26T12:16:22+09:00Tue 26 Jul 2016 12:16 PM|

백건우 & 윤정희

나는 마지막까지 자잘하고 세속적인 문제들로 지지고 볶고 살기보단 이렇게 아이처럼 근사한 꿈을 꾸면서 살다 갈래요. 돈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더 성공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을래요. 그저 더 멋진 영화, 더 아름다운 음악, 더 멋진 인생만 생각하다가 떠날래요. 건우 백이랑 그렇게 예술적으로 살다가 갈래요. 괜찮지 않아요?”

멋지다.

***

[Why] “건우 백이랑… 근사한 ‘꿈’ 꾸며 살다갈래요”

조선일보  | 기사입력 2016-07-23 03:03 | 최종수정 2016-07-23 11:02

[송혜진 기자의 느낌] 배우 데뷔 50년 맞는 윤정희, 영상자료원에서 9월 회고전
“자동차 없고 도배도 직접… 우린 물질에 큰 관심 없어요”

피아니스트 백건우(70)가 검정 천 가방에서 작은 빗 하나를 꺼냈다. 배우 윤정희(72)가 그에게 몸을 맡기듯 서며 이렇게 말했다. “응, 여기 좀 빗어 넘겨줘요. 머리 모양이 괜찮아요?” 백건우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아내의 머리칼을 가만히 빗어내렸다. 19일 오후 서울 혜화동 한 콘서트홀이었다.

1966년 1200대1 경쟁률을 뚫고 영화 ‘청춘극장’ 주인공으로 데뷔한 지50년. 윤정희는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사랑받은 배우였다. 330여 편 영화 중 325편에서 주연을 맡았고, 청룡영화상·대종상 등 여우주연상만 25번 받았다. 그녀가 주연으로 출연한 영화 다섯 편이 한꺼번에 같은 날 개봉한 적도 있었다. 2010년 이집트 카이로 국제영화제에서 리처드 기어와 함께 평생공로상을 받았고, 2011년엔 이창동 감독 영화 ‘시’로 LA비평가협회상 여우주연상과 프랑스 문화예술훈장 ‘오피시에’를 받았다. 오는 9월 22일엔 한국영상자료원이 ‘윤정희 50주년’ 행사도 연다.

윤정희는 남편이 빗겨준 머리를 손으로 다시 한 번 빗어 넘기고는 카메라 앞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미용실을 통 안 가거든요. 꾸미는 데 쓸데없이 돈과 시간 쓰는 게 싫어요. 건우 백(그는 남편을 이렇게 불렀다)이랑 파리에서 살기 시작한 이후로 한 번도 안 갔지요.” 실로폰을 두들기듯 높고 낭랑한 목소리였다.

“어때, 나 괜찮아 보여?” 윤정희가 묻자 피아니스트 백건우가 빗을 꺼냈다. 윤정희는 스스럼없이 그의 앞에 섰다. 친숙한 침묵이 감도는 여름날 오후였다. 이 두 사람은 평생 이렇게 종종 서로의 비서가 되어주며 살아왔을 것이다. 머리를 다 빗은 후 윤정희는 백건우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보, 메르시(고마워).” / 오종찬 기자

미용실도 안 가는 ‘전설의 여배우’

―미용실을 안 가시면 머리는 어떻게 하시나요.

“이이(백건우)가 가위로 잘라줘요. 손재주가 좋거든요. 자기 머리칼은 거울 보고 스스로 자르고, 내 머리칼도 슬쩍슬쩍 만져주는 거죠. 세상 어떤 스타일리스트보다 나아요.”

―화장도 남에게 안 맡기신다죠.

“옛날 배우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다 스스로 했으니까요. 요즘도 종종 공식 석상에 설 때가 있는데 그때도 내 얼굴만큼은 내 손으로 단장합니다.”

윤정희 본명은 손미자다. 6남매의 맏딸인 그는 음악을 즐겨 듣고 틈날 때마다 책을 끼고 지내던 문학소녀였다고 했다. 1966년 김래성 원작 영화 ‘청춘극장’을 찍기 위해 신인배우를 모집한다는 말을 듣고 가톨릭 신자였던 그는 신부를 찾아가 “배우를 해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가톨릭 신자로서 부끄럽지 않은 배우가 되라”는 답을 듣고 오디션을 봤다. 그가 나타나자마자 다들 “쟤가 되겠다”고 수군거렸다. 윤정희는 “영화 촬영을 시작하면서 기도를 많이 했다. 배우가 되더라도 화려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이름에 고요할 정(靜)을 넣어 정희(靜姬)로 이름을 바꿨다”고 했다.

―영화판이 본래 화려한데 혼자만 고요하게 살 수 있나요.

“가능해요. 남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으면 되죠. 영화 촬영 중에도 나는 틈나면 ‘사상계’나 ‘문학사상’ 같은 책을 읽었어요. 대기 시간이 길어지면 차에 들어가서 바흐나 슈베르트 음악을 들었고요. 그땐 LP판이나 카세트 테이프도 워낙 귀한 시절이었는데, 일본 로케이션 촬영을 가게 되면 클래식 음반을 잔뜩 사가지고 왔죠.”

―우아한 척한다고 주위에서 싫어하진 않았습니까.

“글쎄… 누가 뭐라고 한 적은 없는데? 아, 이런 적은 있어요. 누구네 집으로 영화 촬영을 하러 갔는데 그 집 거실에 아주 근사한 전축이랑 음반이 있는 거예요. 그만 그 전축에 맘을 뺏겨서 잠깐 쉴 때 클래식 음악을 틀었죠. 그걸 듣고 현장에 있던 선배 하나가 ‘너는 왜 촬영에는 신경을 안 쓰고 딴짓을 하느냐’고 뭐라고 했어요. 그 이후로는 음악을 차에서 혼자만 들었네요.”

―그런 새침한 문학소녀가 연기는 유독 잘했다죠.

“소설책을 한번 쥐면 밤을 꼴딱 새우는 게 기본이었는데, 연기도 비슷했던 것 같아요. 어떤 상황에도 집중을 꽤 잘했다고 생각해요. 김수용 감독님처럼 문학적인 분들이 유독 저를 아껴주셨죠. 영화 ‘안개'(1967), 황순원 선생님 작품을 영화로 옮긴 ‘독짓는 늙은이'(1969) 같은 작품을 많이 한 것도 그 덕일 거예요.”

윤정희 팬클럽 회장이자 영화평론가인 안규찬씨는 “윤정희가 등장하기 전 한국 영화 속 여자 주인공 캐릭터는 무척 전형적이었다. 남자를 뺏거나 남자를 빼앗기거나, 아이를 뺏거나 아이를 빼앗기는 역할이 전부였다. 윤정희가 데뷔하면서 비로소 한국 영화에도 팜므파탈부터 지적인 여성까지 복잡하고 미묘한 캐릭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신성일씨와 커플 연기를 무려 99번이나 했죠.

“꽤 괜찮은 콤비였어요. 지금도 신성일씨는 저를 ‘미스 윤’이라고 불러요.”

윤정희의 인기가 빠르게 치솟았다. 혈서를 집에 두고 가는 남성 팬이 속출했고 어딜 가도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외출조차 자유롭게 할 수가 없었다. 염문도 많아졌다.

―높은 분들이 종종 저녁식사 자리에 오라고 했는데 끝끝내 안 갔다면서요.

“하루는 위(청와대)에서 연락이 왔어요. 외국에서 손님이 왔는데 제가 영어를 좀 한다는 말을 들었으니 자리에 나와달라고. ‘죄송하지만 저는 기생이 아니니 나갈 수 없다’고 했죠. 화를 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나중에 제게 사과 궤짝을 보내왔어요. 제 마음을 이해해주셔서 감사했죠(웃음).” 배우로서 뜨거웠던 7년을 보낸 윤정희는 돌연 활동을 접고 프랑스 파리 3대학(소르본대)으로 유학을 떠났다.

윤정희의 데뷔작 ‘청춘극장’의 한 장면. 가운데 젊은 여성이 윤정희, 오른쪽 끝에 선 이가 신성일이다(왼쪽 사진). 2010년 카이로 국제영화제에서 평생공로상을 받은 윤정희(오른쪽 위). 쥘리에트 비노슈, 오마 샤리프와 함께 섰다. 2011년 윤정희가 프랑스 문화예술 공로훈장 오피시에를 받는 모습(오른쪽 아래). / 영화평론가 안규찬 제공

―왜 프랑스로 가신 거죠.

“여기선 도통 자유롭게 움직이기가 힘들었고, 공부를 무척 하고 싶었어요. 원래는 미국으로 가려 했는데 1972년도 뮌헨올림픽에 갔다가 신상옥 감독님하고 파리에 들르면서 그곳 분위기에 반해버렸어요. 파리로 가야겠다고 맘을 고쳐먹게 된 거죠.” 당시 윤정희는 프랑스 대사에게 “파리 가서 공부를 하고 싶으니 장학금을 달라”고 요청했고 프랑스 대사관은 “장학금 제도는 없지만 에어프랑스 1등석을 내줄 순 있다”고 대답했다. 윤정희는 “1등석 타고 파리로 날아간 여배우는 내가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나의 또 다른 主語, ‘건우 백’

1973년 파리로 간 윤정희는 1976년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결혼했다. 신혼 살림은 몽마르트르 언덕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차렸다.

―비밀 연애를 3년쯤 하신 건가요.

“뭐 그런 거죠. 뮌헨올림픽 때 오페라 ‘심청’을 보러 갔다가 뒤풀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어요. 나중에 파리에 있는 중국집에 갔다가 우연히 재회했고요. 둘 다 이름이 알려졌으니 남들 몰래 만났죠. 그러다 결혼한 거고요.”

―청혼은 어떻게 하시던가요.

“그이도 나도 형식에 별 관심이 없었어요(웃음). 우린 여러모로 삶을 바라보는 방식이 비슷했어요. 둘 다 뭔가를 억지로 계획하지도 않고, 특별한 순간을 만들어내는 법도 없었지요. 아주 자연스럽게 서로의 곁에 남기로 한 거죠.” 윤정희는 결혼식 때 웨딩드레스 대신 한복을 입었다. 신부 화장도 직접 했다. 예물은 실반지 한 쌍이 전부였다. 화가 이응노 선생 같은 가까운 이들 몇을 불러다 놓고 프랑스 시골 한 작은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당대 최고 여배우의 결혼식은 조촐하고 소박했다.

―여자로서 아쉬웠을 법도 한데요.

“전혀요. 결혼하고 나서도 나는 메이드(가정부) 한번 쓴 적이 없어요. 도배도 우리 둘이 직접 했고요, 지금도 우린 자동차도 식기세척기도 없이 살아요(웃음). 하나부터 열까지 다 내 손으로 했는데 그게 오히려 편하고 좋았어요. 그 탓에 지금 손이 이렇긴 하지만요.” 윤정희는 세월에 거칠어진 손을 내보였다. 옆에 있던 백건우가 말을 보탰다. “둘 다 물질에 큰 관심이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종종 불러놓고 대접할 수 있는 만큼만 벌면 그만인 거죠.”

윤정희는 이후로 20여 편의 영화를 파리와 서울을 오가며 찍었다. 김수용 감독의 ‘화려한 외출’(1977)과 ‘야행’(1977), 엄종선 감독의 ‘만무방’(1994) 같은 걸출한 작품도 이때 나왔다. 1987년엔 파리3대학에서 영화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학위를 받기까지 14년이 걸렸네요.

“딸아이(바이올리니스트 백진희)를 낳아 기르고, 중간중간 영화를 찍으면서 공부했으니까요. 대충 모양으로 학교를 다닌 게 아니라 제대로 배우고 제대로 논문을 썼어요. 이두용 감독님 영화 ‘물레야 물레야’를 바탕으로 한 한국 영화 속 여자 주인공의 모습에 대해 연구를 했거든요. 오래 걸렸지만 그만큼 자부심이 크죠.”

윤정희는 영화 촬영 시간을 빼면 늘 백건우와 함께 있었다. 그가 연습할 때 옆에서 지켜봤고 연주회를 위해 전 세계를 따라다니며 그를 챙겼다. 윤정희는 “지금도 남편의 연주를 듣기 위해 객석에 앉을 때가 제일 긴장된다”고 했다.

―어떤 국제영화제에서 공로상을 주겠다고 했는데 남편 연주 일정과 겹쳐서 사양한 일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네. 그땐 남편 연주회 일정이 워낙 중요해서 어쩔 수가 없었어요. 상이란 건 나중에 또 받을 수도 있고요. 제겐 자연스러운 선택이었죠.”

―아무리 남편을 사랑한다지만 늘 함께 다니는 게 힘들 수도 있을 텐데요.

윤정희가 고개를 갸웃했다. 동그란 눈동자가 더 커졌다. “왜 힘들죠?” 윤정희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글쎄요, 미안하지만 잘 모르겠어요. 나는 남편의 연주를 들으며 사는 게 좋아요. 음악을 워낙 좋아하니까요. 남편이 새로운 곡을 연주할 때 그 변화를 매일같이 지켜보는 건 남들이 알 수 없는 큰 행복이에요. 첫날엔 남편이 곡이 잘 안 풀리는지 한숨을 쉬곤 하는데, 하루 이틀 지나면 표정이 점점 밝아져요. 피아노 소리도 점점 달라지고요. 그가 그렇게 실타래를 푸는 걸 매일 지켜볼 수 있으니 행운 아닌가요? 반대로 남편은 연주하는 스트레스를 늘 영화로 푸는데 내가 영화배우이니 함께 늘 영화를 보고 영화 얘기를 할 수 있지요. 우린 운이 참 좋아요.”

―백건우를 뺀 윤정희는 어떤 사람입니까.

윤정희는 다시 고개를 갸웃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굳이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지금의 내 모습은 건우 백과 함께 만든 거예요. 우린 사치를 피곤해하고 산책하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겨요. 남편이 스페인, 이탈리아, 이스라엘 같은 곳에서 연주를 마치고 나면 같이 손을 잡고 곳곳을 보러 다니죠. 둘이서 함께 아름다운 장소를 정말 많이 다녔고, 눈부시게 근사한 장면들을 참 많이 봤어요. 그런 순간들을 그렇게 평생 함께하며 살았으니 건우 백의 삶과 내 삶은 어느덧 같은 것이 되었겠죠.”

윤정희는 휴대전화 한 대를 남편과 같이 쓴다. 늘 함께 다니니 굳이 전화기 두 대가 필요 없다고 했다.

―사생활이 전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럴 필요가 있나요(웃음). 남편 친구가 내 친구이고, 내 친구가 남편 친구인 걸요!”

두 사람은 얼마 전 결혼 40주년을 맞았다. “기념일에 어디를 갔느냐”고 묻자 백건우는 “그동안 둘이 함께 안 다녀본 데가 없어서 어딜 가야 할지 한참 고민하다가 처음 파리에서 우연히 만났던 그 중국집을 찾아가봤다. 놀랍게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음식을 나눠 먹었다. 샴페인조차 필요 없는 완벽한 순간이었다”고 했다.

지금처럼 마지막까지

2011년 윤정희는 영화 ‘시’에서 치매 노인 ‘미자’를 연기했다. 윤정희는 “갈수록 좋은 영화를 찾기가 힘들어서 기다리고 또 기다렸는데, 그런 나를 위해 마치 선물처럼 그 영화가 다가왔다”고 했다.

―당시 노출 장면을 찍을 때 고심을 많이 하셨다죠.

“한창 활동할 때도 노출 장면은 안 찍었거든요. 그땐 대역이 있었어요. 남편하고 한참 의논하다가 뒷모습을 보여주는 걸로 합의를 봤죠. 내가 옛날 사람이라서 그럴 수도 있어요. 반면에 요즘엔 다들 참 용기 있어요. 후배들을 보면 대단해 보여요.”

―요즘도 시나리오를 계속 고르고 계신가요.

“맞아요. 2~3개 받아놓은 게 있는데 기다리던 그 작품이 아닌 것 같아서 계속 보고 있어요. 죽을 때까지 영화를 찍다 죽고 싶어요. 남편이 악기를 두들겨 인생을 그려내는 사람이라면, 나는 몸을 움직여 삶을 그리는 게 직업이니까요. 이것보다 근사한 게 어디 있겠어요. 죽을 때까지 배우를 하다 갈 거예요.”

―‘그 작품’이라는 게 어떤 걸까요.

“우리 나이 때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삶이라는 게 젊을 때도 아름답지만 나이 들어도 근사한 거 아니에요? 추하지 않고 의연하고 건강한 늙음… 그걸 담아낼 수 있는 영화를 기다리고 있어요.”

―삶의 마지막 모습을 스스로 고를 수 있다면 어떤 모습입니까.

윤정희는 백건우를 조용히 바라보며 “여보” 하고 불렀다. “당신이 내게 늘 그랬잖아. ‘평생 꿈만 꾸면서 사는 사람’이라고. 나는 그런데 계속 꿈만 꾸다가 가고 싶은데 어쩌지.” 백건우가 윤정희 말에 느릿느릿 답했다. “응. 가끔 당신을 보면 고무풍선 같아. 내가 손을 뻗어서 현실이라는 땅으로 끌어내려도 당신은 다시 둥실 떠오르지. 근데 나는 그렇게 살 수 있는 순수한 당신이 좋아. 당신이 부러워.”

윤정희가 웃었다. “들으셨죠. 나는 마지막까지 자잘하고 세속적인 문제들로 지지고 볶고 살기보단 이렇게 아이처럼 근사한 꿈을 꾸면서 살다 갈래요. 돈이 얼마나 있는지, 얼마나 더 성공할 수 있는지는 생각하지 않을래요. 그저 더 멋진 영화, 더 아름다운 음악, 더 멋진 인생만 생각하다가 떠날래요. 건우 백이랑 그렇게 예술적으로 살다가 갈래요. 괜찮지 않아요?”

그의 말이 문득 시(詩)처럼 들렸다. 어쩌면 지금껏 윤정희는 줄곧 그렇게 낭송을 해온 건지도 모른다.

2016-07-24T16:19:06+09:00Sun 24 Jul 2016 4:19 PM|

오랜만에 자전거

거의 3~4년만인 것 같다.
토요일 밤 12시에 집에 있는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한강대교 남단->여의도-> 마포대교 건너서 강북->잠수교(반포대교) 건너서 강남->동작대교->한남대교 남단

대략 20km정도 되지않았나 싶은데
주말이었지만 밤 12시의 한강 자전거 도로는 꽤 한적해서
추월, 부딪힘 조심안해도 되어서 나같은 자전거 초보가 다니기엔 좋았다.

앞으로도 가급적 자주 자전거를 탈 생각이다.

2016-07-24T02:29:58+09:00Sun 24 Jul 2016 2:29 AM|

항공사 마일리지 중간 체크

별로 신경 안쓰고 있다가
신용카드 포인트 유효기간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어서 점검 해봤다.
거의 1년만이네

1. 대한항공 합계 2,230,161 마일
– 대한한공 663,408 마일
– 외환카드 1,339,064 마일 (크로스마일로 보유)
– 신한카드 3,643,037P = 227,689 마일 (16:1로 전환 가정)

2. 아시아나 합계 663,798 마일

대한항공 2,230,161마일이면
세계일주 비지니스 클래스가 25만 마일이니까
혼자서 9번 정도, 부부동반으로 4번 정도 돌 수 있다.

인천-뉴욕 비지니스클래스는 대략 혼자 18번 정도, 부부동반으로 9번 갈 수 있다 (비수기 기준)

2016-07-21T19:12:29+09:00Thu 21 Jul 2016 7:12 PM|

중요한 질문

칼라일을 퇴사한 후에 책을 쓰고 조합을 만들어 책 읽기 모임을 주도해온 제현주씨가

“여성의 일 새로고침”이라는 제목의 행사를 여는데

일하는 여성으로서 한번 되짚어볼만한 질문을 놓고
오픈테이블로 서로 자유롭게 생각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것 같다.

이것은 비단 여성 뿐 아니라 남자도 곱씹어볼만한 질문이다.

2016-07-20T23:08:33+09:00Wed 20 Jul 2016 11:08 PM|

잘 버려야 행복해진다

우선순위를 제대로 해야할 것 같다.

***

삶이 벅찬 당신, 잘 버려야 행복해진다

1.

지난해 여름이었다. 요즘처럼 습하고 무덥던 날, 매거진 <킨포크>를 읽다가 눈이 확 뜨이는 문장을 만났다. 정신이 또렷해졌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방식과 추구하는 삶의 방향성이 명료하게 압축된 문장이었다.

“에센셜리즘(Essentialism·본질주의)의 핵심은 얼마나 적게 소유하고 살 수 있는지 자문하는 게 아니라, 없으면 살 수 없는 것들을 가려내는 데 있다. (중략) 삶을 갈고닦겠다며 검은 옷만 입고, 크림을 넣지 않은 커피만 마시고, 중고 책을 모조리 내버릴 필요는 없다. 간소하게 사는 것도 나름 장점이 있지만, 사실 에센셜한 삶을 살기 위해 해결해야 하는 중요 과제는 내게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2.

이십 대 초반, 어른들이 공부를 해야 한다고 해서 공부를 하고, 친구들이 같이 놀자고 해서 어울리다가 문득 ‘지금 뭘 하고 있지?’ 생각하게 됐다. 어쩐지 매사에 끌려다니고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런 물음은 곧 나 자신이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며,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사람인지 고민하게 했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찾은 후에는 가장 먼저 버릴 것을 정했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 원치 않는 일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내심 공무원이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글을 통해 먹고 사는 일을 택했다. 내게는 재미있다고 느끼는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졸업 전부터 안정성이나 높은 연봉은 어느 정도 포기할 각오를 했다. 취미도 마찬가지다. 여행과 문화예술을 좋아해 이 부분에 대한 지출이 많은 편이다. 대신, 고가 브랜드의 옷이나 잡화에는 관심을 끊었다. 본래의 성향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노력하기도 했다. 명품 가방을 드는 것보다 좋은 영화나 공연 한 편을 보는 일이 더 가치 있었다.

안정성도 값비싼 가방도 대부분의 사람이 원하고 가지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들 없이도 지금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 오히려 덜 중요한 것을 미련 없이 포기함으로써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만약 모든 걸 가지려고 했다면 어땠을까. 과연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물론 태어날 때부터 가진 것이 많아 아무것도 포기할 필요가 없는 삶도 있다. 또,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아도 남들보다 두 배, 세 배 노력해 많은 것을 이룰 수도 있다. 서점가에 놓인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동경하는 소수의 사람은 그렇게 살아왔고, 살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 죽도록 노력해 모든 것을 갖는 대신, 재밌는 일을 하면서 조금 덜 벌고, 덜 쓰는 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 타인들의 부러움을 사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진 사람으로 평가받는 것보다 가치 있었다.

3.

무언가를 포기하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때때로 사는 것이 너무 고되고 버겁게 느껴진다면, 한 번쯤은 안간힘을 쓰고 성취하려고 하는 것 중에 덜 중요하거나 불필요한 것은 없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어쩌면 그중 일부는 스스로 그리 원하지 않는 일인데도 남들이 다 하고 있어서, 부모님을 비롯한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는 것 자체가 자신에게 정말 중요하다면―그래서 이를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 것 같다면, 어쩔 수 없다.

아니라면, 과감한 포기가 필요하다. 어려운 일이지만, 일단 저지르고 나면 홀가분해진다. 그렇게 얻은 시간과 마음의 여유는 자신에게 정말 중요한 일에 쏟을 수 있다. 이 시간은 고될지언정 대체로 행복하고, 당신이 ‘살아 있다’고 느끼게 만들 것이다.

비교하는 일도 줄어든다. 자신의 삶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을 때는 혼란스럽기 때문에 사소한 것까지 타인과 비교하기 쉽다. 그러나 중요한 것과 버려야 할 것이 정해지면,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오직 당신이 내면의 목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자신에게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가이다. 스스로 만족한다면, 꼭 모든 부분에서 남들과 비슷하거나 나을 필요는 없다.

4.

흔히 삶을 긴 여행에 비유한다. 누군가는 처음부터 크고 튼튼한 캐리어가 있어 노트북이나 인형까지 넣고 다닐 수 있다. 심지어 차나 짐꾼이 있을 지도. 또, 남다른 체격과 체력으로 무거운 짐을 들어도 힘들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하지만, 다수의 평범한 사람에게는 고작 어깨에 멜 수 있는 여행 가방 하나만 주어진다. 노력해서 캐리어를 살 수도, 체력을 기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에게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다면, 짐 중 일부를 버리는 방법도 있다. 당장은 손해를 보는 것 같겠지만, 한결 가벼워진 몸으로 더 많은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중요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무엇을 가지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당신의 삶을, 여행길을 응원한다.

2016-07-17T20:55:11+09:00Sun 17 Jul 2016 8:55 PM|

여행준비

언제가 될 지 모르겠지만

또 떠날 여행을 위해서 하나씩 하나씩 생각날 때 마다 준비하고 있다.

아마존에서 기압 등 센서가 달려있는 손목시계가 세일이라길래 하나 샀고
며칠전에는 야밤에 촬영할 때 편의성/안전성을 더하기 위해서 LED 헤드램프를 하나 샀다.

언젠가는.

2016-07-17T00:34:28+09:00Sun 17 Jul 2016 12:34 AM|

한화 김성근 감독

어제 한화-LG전을 보다가

1회말에 한화의 유격수가 공을 떨어뜨리는 수비 실수를 하니
바로 교체시키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안그래도 그 선수는 미안해하고 있을텐데
그렇게 단호하게 바꾸어버리는 것이 그 선수에게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줄까

나는 그래서는 안된다 생각한다.
한 경기에서 그 실수 하나로 팀이 패배하더라도
리그 경기를 하는 입장에선 그 선수를 믿어야하는게 맞다고 본다.

선수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서 김성근 감독에 대해서 매우 실망했다.

2016-07-13T23:05:01+09:00Wed 13 Jul 2016 11:0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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