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

햇볕에 쉽게 타는 얼굴을 보면서

피부 자체가 하얀 편은 아닌데다가
햇볕에 쉽게 검게 변하는 얼굴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여행가면 항상 조심을 하는데
선크림 바르는 것을 좋아하지도않지만 이제는 필수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이번에 실수를 하나 하면서 여행 초반부터 얼굴이 검게 변했다.
섬에 도착해서 선크림을 안바른 상태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고 숙소로 갈 때에
오토바이 뒷자석에 앉아 약 20여분간 구름 하나 없는 햇볕을 받았기 때문이다.

2-3일이 지나서야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절망했다.

따지고보면 나도 몸이 불만족스럽다.
키카 큰 것도 아니고
피부는 쉽게 타는 스타일인데다가
턱관절은 벌써 마모되어버렸고
치아중 임플란트는 이미 3개가 있고
선천적으로 목구멍이 작은 편이라 기도가 좁아 코골이가 있고

하지만 그래도…
지난 40년간 딱히 수술하거나 다친 적이 없었던 점과
강인한 정신(?)과 좋은 두뇌를 주신 것은 부모님께 감사하고 싶다. 그나마 위안이다.

2017-02-09T21:49:16+09:00Thu 09 Feb 2017 9:49 PM|

사업과 관련하여 요즘 느끼는 점

요즘 사업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주변에 사업 하는 사람들 보면서
얻은 작은 발견/깨달음은

사업에는 인내, 끈기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내 상식에는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사업들이
버티고 또 버티고 또 사업모델을 변경해가면서
사업이 성공은 아니더라도 망하지않고
그럭저럭 유지되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렇다.

2017-02-07T22:13:54+09:00Tue 07 Feb 2017 10:13 PM|

코 팡안에서의 일주일

1.
코사무이 바로 옆에 있는 코 팡안이라는 섬에 온지 6일차다.
여기에서 2주 머물기로 했는데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지나가는 것 같다.

이 조용한 섬에서도 더 한적한 구석으로 와서
코워킹 스페이스가 있어 하루종일 머물고 있다.

2.
바다는 깨끗하다.
예쩐에 태국도 사람들이 적게 갈 수록 덜 오염되고 깨끗한 바다를 볼 수 있다는데
그 말이 실감난다.
태국 음식도 3천원이면 배불리 먹을 수 있다. (더 저렴하게 먹으려면 2천원 이하도 가능하다)

깨끗한 공기에 평화롭다. 맑은 날 밤에는 별이 반짝이는 하늘이 좋다.

지난 일주일이 최고다 말할 것은 아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않고 만족스럽다할 수 있다.

3.
이전의 여행들과 달리
어떤 활동을 하거나 목적을 가지고 온 것이 아니고 말 그대로 “머물기로”한 것이어서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고 더 많은 것을 관찰하게 된다.

4.
6일째 숙소는 물론 지나가다 또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도
(태국 현지인을 제외하면) 동양인 자체를 볼 수가 없다. 일본, 한국, 대만, 중국 할 것 없이…
코워킹 스페이스에도 나 빼고 다 서양인들이다.
그린란드에서도 중국인들 천지였던 것과 대비하면 신기할 따름이다.

5.
며칠전에는 내 평생 가장 희한한 점퍼를 봤다.
부산 교육감 선거에서 나눠준 파란색 (2번) 후보의 선거홍보용 자켓을 외국인이 입고있더라
파란색에 2번, 교육감 선거, 후보 이름까지
그들 눈에는 타이포그래피였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신선했다.

6.
코워킹 스페이스가 섬의 서쪽 해변 바로 앞에 있어서
해질 무렵 6시 20분부터는 해변에서 해지는 풍경을 본다.

5.
책도 읽고 그동안 정리에 소흘했던 것들도 정리하고
저장만 해놓고 읽지않은 글들도 챙겨서 읽고 있다.

6.
숙소(8인실 도미토리 호스텔)와 코워킹 스페이스 사이의 거리가 대략 4km정도 된다.
하루에 왕복 8-9km를 걷는다 대략 13,000~15,000보 인 것 같다.. 거의 왕복 1시간 40~50분 거리라 걷기엔 다소 지루하긴 하지만, 언덕도 있어서 유산소 운동에 도움이 된다. 오토바이를 하루에 8천원씩 빌리는 것도 낭비인 것 같아서 그냥 걷고 있다.

하루에 숙박비 14,000원 + 식비 및 간식 10,000원 = 합계 25,000원 안팎으로 막아보려고 노력중이다.

7.
왜 은퇴자들이 태국을 선호하는지 이해가 된다.
물가가 여전히 저렴하고 인터넷 등 기반시설이 양호한 것이 큰 장점으로 보인다.

8.
코워킹 스페이스에는 하루에 대략 10-20여명이 모인다.
해변 앞에 있기에 수영하다 돌아오기도 하고
남자들 상당수는 상반신은 옷을 입지않고 수영복차림으로 돌아다니곤 한다.
이들중 일부는 휴가차, 나머지 대부분은 말 그대로 디지털 유목민 (노매드)다. 물어보면 고향은 있지만 집은 없다 한다.
어느 나라에선 돈 벌고 또 이렇게 일하다가 쉬었다가를 반복하며 떠돈다고 한다.
노매드라고 말만 들었지 실제로 꽤 많은 사람들이 거처없이 그렇게 떠돌아다니면서 일하고 살아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발상의 전환을 나만 못한 것 같아 잠시 반성도 해본다.

2017-02-06T23:46:32+09:00Mon 06 Feb 2017 11:46 PM|

KBS 고민정 아나운서

This will turn out to be a totally wrong decision.
문재인에게 가는게 문제가 아니라
정치에 발을 디디겠다는게 잘못 되었음

수많은 앵커, 아나운서들이 신념을 가지고 정치판에 뛰어들었으나
모두가 권력에만 탐하는 쓰레기가 되었다.

***

‘문재인 캠프 합류’ 고민정 “작은 지남철 되어 함께 갈 것”

고민정 아나운서가 최근 KBS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문재인 선거 캠프에 전격 합류했다.

고 아나운서는 4일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북콘서트에서 사회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문 전 대표를 도울 계획이다.

고 아나운서는 캠프 합류 전 문 전 대표에게 몇가지 당부를 전했다.

그는 “바라는 것은 딱 하나다. 나침반이 되어달라는 것이다. 나침반 속 지남철은 늘 여윈 바늘 끝을 떤다. 그 전율이 멈춘다면 더는 나침반이아니다. 돈이나 권력이 아닌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되어달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저 또한 작은 지남철이 되어 그 길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캠프 합류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는 고 아나운서는 “가정 경제를 책임진 저에게 가족 생계가 달린 문제였다. 하지만 가슴 뛰는 곳에서 살고 싶었다. 하루를 살아도 스스로에게 자랑스럽고 싶었다”고 캠프 합류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언론의 자유를 위해 정권교체를 이루겠다는 각오도 남겼다.

2017-02-05T12:27:00+09:00Sun 05 Feb 2017 12:27 PM|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맥킨지 출신의 제현주씨가
몇년전에 펴낸 “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라는 책을
예전에 1/3정도 보다가 그만 두었는데

태국에서 머물면서 다시 읽어보려고 가져왔다.

기억해봄직한 문구들을 아래와 같이 계속 정리해볼 생각이다

– 문제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면 뭉뚱그려진 불행의 감정에 휩싸여 표류만을 거듭할 뿐이다. 서로 어긋나는 욕망들 사이에 우선순위를 따져보고, 타협할 지점들을 확인해나가야 한다.

– 모든 욕망을 해결해주는 단 하나의 일자리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내가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언제나 세상에 의해 제한받는다.

– 세상을 바꾸지 않고서는 개인이 내릴 수 있는 선택이 뻔하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바라는 세상을 향해 행동에 나서는 것 역시 개인이 내려야 할 선택이요, 일상의 한 부분이다.

– 그들은 세상이 좋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좋은 것을 이해했고 그것을 향해 움직였다.

– 돈을 잘 벌려면 도시에 사는 것이 유리하겠지만 그런 삶이 자신을 황폐하게 한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 스스로 만들어낸 방식으로 즐겁게 일하기

– 많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일하기 싫다’고 말하지만, 싫은 것은 대개 일 자체라기보다 일이 놓인 조건이다.

– 목표는 심플하고 분명해야 한다.

– 하나만을 맹목적으로

2017-02-03T19:39:58+09:00Fri 03 Feb 2017 7:39 PM|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사람들이 치러야하는 대가가
면역력 약화 (면역 체계 손상)이라는 것을 보면서,

믿기지도 않았을 뿐더러 글을 읽으면서 무척 슬펐다.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

***

원문 제목은 Why Succeeding Against the Odds Can Make You Sick

[칼럼] 존 헨리이즘: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한 사람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
2017년 2월 1일  |  By: eyesopen1  |  건강, 세계, 정치, 칼럼  |  댓글이 없습니다
1997년, 피츠버그의 지역 신문에 감기 관련 임상시험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실렸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찾아온 지원자들은 코를 통해 감기를 일으키는 바이러스를 주입받고 며칠간 호텔 방에 갇혀 코를 풀며 시간을 보낸 후 800달러를 받았습니다. 이 실험의 목적은 “왜 어떤 사람들은 더 쉽게 감기에 걸리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었죠.

조지아 대학의 진 브로디 박사는 최근 당시 실험에 참여했던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배경과 성격을 분석하고 “충격적인” 결과를 얻었습니다. 더 부지런하고 성공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타입이 훨씬 더 병에 쉽게 걸린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죠. 힘겨운 상황을 견뎌내 버릇하면 면역 체계가 손상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결과였습니다. 브로디 박사의 연구팀은 계속해서 이 가설을 뒷받침할 수 있는 연구들을 진행했습니다. 2015년에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백혈구가 동년배에 비해 조기 노화한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심장혈관과 대사 건강 부문에서는 불편한 상관관계가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고, 성공에 대한 의지가 강한 흑인 청소년들이 당뇨병에 걸릴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밝혀진 것입니다. 반면 백인들의 경우, 성공에 대한 의지나 근면한 성격이 면역 체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이 적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브로디 박사는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학업, 직업, 재정 면에서 성공을 거둔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역경에 굴하지 않는 자질을 “탄력성(resilience)”이라 부르며, 이는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브로디 박사가 연구 대상으로 삼은 이들 역시 “인내심이 강하고 목표를 설정해 이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며, 실수를 돌아보고 멀리 내다보며, 집중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는” 이들입니다. 자기계발서에 나올 것 같은 모범적인 인간상이죠.

미국의 빈부 계층 간 건강 격차는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니 계층의 사다리를 올라간 사람이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것이라는 기대는 자연스러운 것이죠. 하지만 이는 복권에 당첨되어 하루아침에 사회경제적 입지가 상승한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나 해당하는 얘깁니다. 수십 년에 걸친 연구 결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현실을 보여줍니다.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받지 못한 사람이 개인의 노력으로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고 성공하면 오히려 건강이 나빠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존 헨리이즘(John Henryism)”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80년대, 젊은 연구자였던 셔먼 제임스는 존 헨리 마틴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존 헨리 마틴은 1907년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소작농으로 태어났습니다. 평생 자신을 둘러싼 시스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력을 다했고, 40세가 되자 농지 75에이커를 소유하게 되죠. 하지만 40대부터 고혈압과 관절염, 위궤양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제임스는 그를 “구조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동시에 패배한 사람”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일이 내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오히려 더 열심히 노력한다”, “인생은 내가 노력하기 나름이다” 등의 말에 얼마나 동의하는지를 기준으로 “존 헨리 척도”를 고안해냅니다. 그리고 이 척도를 적용한 결과, 빈곤 노동자 계층의 흑인들 사이에서 높은 점수를 얻은 사람들의 건강 상태가 더 나쁘다는 사실이 드러났죠. 브로디 연구팀과 마찬가지로, 제임스 박사 역시 노력하는 성향과 건강 간의 상관관계가 백인 노동자 계층에서는 그다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렇다면 불리한 조건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구체적으로 건강에 어떻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일까요? 우선 DNA에 영향을 줍니다. 브로디 박사의 연구팀은 DNA 메틸화 패턴이 사회경제적 지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알아냈죠. 또한, 어릴 때부터 노력하는 성향을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솔과 아드레날린 분비가 높다는 사실도 밝혀냈습니다. 평생 몸의 세포들이 스트레스 물질에 절여져 있다 보니 당뇨병과 같은 자가면역 질환에 취약해진다는 게 브로디 박사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아드레날린이나 DNA 메틸화가 피부색의 영향을 받지 않는데, 왜 백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는 것일까요?

이미 우리 사회에는 내가 사는 곳의 주소를 입력하면 예상 수명을 알려주는 웹사이트가 존재합니다. 의사로서 돈을 걸어야 한다면, 저는 한 사람의 수명을 가장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는 변수가 바로 주소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이에게 건강과 정의를”이라는 모토를 걸고 있는 이 웹사이트에 따르면 우리의 건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유전자가 아니라 우편번호입니다.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 안에서는 나란히 붙어있는 두 지역 간 평균 수명 차이가 무려 10년 가까이 나는 것이 현실입니다.

UC버클리의 공공보건 연구자 마하신 무자히드 박사는 이런 차이가 존재하는 원인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치안, 체육관의 분포 등 다양한 요인이 있겠지만, 항상 그림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달, 무자히드 박사는 핀란드인(즉 피부색이 창백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사회경제적 지위와 심장혈관 질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으며, 이런 상관관계는 존 헨리 척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 즉 노력으로 불리한 환경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더 강하게 나타났다는 내용이었죠. 무자히드 박사는 이번 연구가 존 헨리이즘이 흑인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님을 보이고, 보다 보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잣대임을 증명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말합니다. 즉 흑인들 사이에서 존 헨리이즘이 뚜렷하게 나타났던 것은 1980년대 미국 동남부에서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명백한 구조적 차별의 대상이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즉, 불리한 조건과 노력하는 성격이 조합을 이룰 때 이것이 건강에 확실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보면 피부색과 수명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이는 매우 미국적인 현상이죠. 의대에서 우리는 흑인 남성이 고혈압에 걸릴 위험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배웁니다. 그리고 이를 마치 생물학적인 팩트인 것처럼 받아들이죠. 하지만 서아프리카와 카리브 지역 흑인들의 고혈압 발병 데이터를 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80년대에는 흑인들이 압도적으로 차별과 수난을 겪었기 때문에 존 헨리이즘이 흑인들 사이에서 두드러졌지만, 이제는 거시경제의 강력한 힘이 모든 이들에게 경제적, 심리적 압박을 가하면서 다른 인종 집단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게 제임스 박사의 조심스러운 예측입니다. 기독교적인 근면과 각자도생의 가치에 매달린 채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존 헨리이즘도 널리 나타난다는 것이죠. 기계화로 인해 농장에서 일하던 흑인들이 북부 공장 지대로 밀려났던 것처럼, 자동화와 기술 발전으로 인해 교육수준이 낮은 백인, 특히 남성들이 비슷한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는 게 그의 지적입니다.

무자히드 박사는 트럼프 집권이 공공보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 우려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의료보험을 앗아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회 분열과 집단 간 갈등 및 불확실성 고조, 차별 강화 등은 많은 미국인의 면역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브로디 박사 역시 “악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성공의 결과물을 즐길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하는데, 지금 미국은 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우려합니다. 물론 애초에 극복할 차별이 없는 사회라면 더 좋겠지만, 미국 경제의 양극화는 점점 더 심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무자히드 박사의 말처럼 미국은 현재 공공보건 부문의 거대한 실험을 앞두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뉴욕타임스)

2017-02-03T18:48:00+09:00Fri 03 Feb 2017 6:48 PM|

반기문 대선 불출마 선언

반기문씨를 지지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의외로 반기문이라는 사람을 잘 모른다. 그것은 다른 대선후보들도 모르는건 마찬가지지만)

정치 초보가 큰 뜻을 품고 나서려했다가
배신감과 씁쓸함에 상처만 받고 중도포기하는 것 같아
마음이 좀 씁쓸했다.

그의 “정치를 바꾸자”는 호소는 난 공감했지만
기존의 부패하고 무사안일 정치인들이 건재한 상황에서
그런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세상을 바꾼다? 정치를 바꾼다?
아무리 그 뜻이 순수했다 하더라도
그건 순진한 상상, 공염불에 불과한 일이라 생각한다.

***

[반기문 전 UN사무총장 대선 불출마 선언 전문]

갑자기 요청한 기자회견에 대해서 여러분 많이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1월 12일 귀국한 이후 여러 지방 도시들을 방문하여 다양한 계층의 국민들을 만나고 민심을 들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한 종교 사회 학계 및 정치 분야의 여러 지도자들을 두루 만나 그분들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모든 분들은 우리나라가 정치 안보 경제 사회의 모든 면에 있어서 위기에 처해 있으며 오랫동안 잘못된 정치로 인해서 쌓여온 적폐가 더 이상은 외면하거나 방치해둘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들을 토로했습니다. 여기에 최근 최순실 사태와 대통령 탄핵 소추로 인한 국가 리더십의 위기가 겹쳤습니다.

특히 이러한 민생과 안보, 경제 위기, 난국 앞에서 정치지도자들은 국민들이 믿고 맡긴 의무는 저버린 채 목전에 좁은 이해관계에만 급급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데 대해 많은 분들이 개탄과 좌절감을 표명했습니다.

제가 10년 간 나라밖에서 지내면서 느껴왔던 우려가 피부로 와닿는 시간이었습니다.

전세계를 돌면서 성공한 나라와 실패한 나라를 보고, 그들의 지도자를 본 저로서는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는 데 미력이나마 몸을 던지겠다는 일념에서 정치에 투신하겠다는 것을 심각히 고려해왔습니다. 그리하여 갈갈이 찢어진 국론을 모아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협치와 분권의 정치문화를 이루어내겠다는 포부를 말씀드린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제 몸과 마음을 바친 지난 3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저의 순수한 애국심과 포부는 인격 살해에 가까운 음해, 각종 가짜 뉴스로 인해서 정치교체 명분은 실종되면서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만 남기게 됨으로써 결국은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하고 편협한 이기주의적 태도도 지극히 실망스러웠고, 결국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저는 제가 주도하여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 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는 결정을 했습니다. 저도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저 자신에게 혹독한 질책을 하고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제가 이러한 결정을 하게 된 심경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서 너그러이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의 결정으로 그동안 저를 열렬히 지지해주신 많은 국민 여러분과 그간 제게 따뜻한 조언을 해주신 분들, 그리고 저를 도와 가까이서 함께 일해온 많은 분들을 실망시켜 드리게 된 점에 대해 깊은 사죄의말씀을 드리며 어떤 질책도 달게 받겠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루고자 했던 꿈과 비전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현재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서 ‘나 아니면 안된다’는 유아독존식의 태도도 버려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우리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각자 맡은 분야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저도 지난 10년간에 걸친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과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헌신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가정에 부디 건강과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02-02T19:14:38+09:00Thu 02 Feb 2017 7:14 PM|

너와 나는 다른 시간을 달린다

brunch에 올라온 글인데
상식적인 것 같으면서도 놓치고 있는 문제
즉, 실제 일을 하는 아래 직원 (maker라 표현)과 지시를 하고 미팅을 하는 위 직원 (manager로 표현)의 차이와 시간배분에 대해서 적고 있다.

100% 공감하며,
예전 회사 다닐 때의 그 비효율이 떠올랐다.

언젠가 내가 회사를 차리게 되면
그때 꼭 명심하기로.

***

너와 나는 다른 시간을 달린다

Y Combinator의 Paul Graham 블로그에 재밌는 글이 있다.

Maker’s Schedule, Manager’s Schedule

(http://paulgraham.com/makersschedule.html)

Maker’s Schedule이란 개발자가 실제 코딩을 하는 시간처럼 무언가를 만드는 시간이다. 실제 업무, 말 그대로 실무의 시간이다. Manager’s Schedule은 관리하는 시간이다. 아무 때나 치고 들어오는 ad hoc 보고들을 비롯해서 일일보고, 주간회의, 월말 워크숍 같은 정기 보고들이 모두 Manager’s Schedule이다.

Schedule, Not Time

그런데 시간을 왜 time이라 표현했을까? 그것은 단순히 시간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시간들이 어떻게 배치되어 있는지(일정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또한 매우 중요하다.

경험상 Maker의 집중력 혹은 생산성은 일하는 시간 대비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인다.

일을 처음 시작할 때는 이 일을 왜 하는 것이고, 언제까지 어떻게 해야 하고, 무엇이 필요한지 등 일에 몰입하는데 필요한 시간(transition time) 이 있다. 이 시간이 지나면 비로소 집중해서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오는데 당연히 이때가 생산성이 가장 높다. 그런데 너무 오래 일하게 되면 집중력에 한계가 오고 몸이 근질근질 해지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야근을 많이 하는 대신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는 사실 당연한 이야기다.

이 그래프를 보면 알겠지만, Maker가 결과물을 제대로 만들려면 transition time이 아니라 실제 일하는 시간이 길어져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한번 일을 시작했다가 중간에 흐름이 끊기면 – 점심시간이든, 상사가 불렀든, 중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한잔 했든 – 다시 일을 시작할 때 또 transition time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뒷부분엔 일종의 cool down time이 존재하는데, 이 시간은 너무 오래 일해서 지쳤을 때도 오지만, 곧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끝날 것임을 알고 있을 때도 발생한다. 예를 들어, 30분 후에 미팅이 있다는 것을 알면 보고서를 작성하던 사람은 새 페이지를 그리기 시작하지 않을 것이고, 개발자도 새 모듈을 코딩하기 시작하지 않을 것이다. 중간에 끊길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다음 미팅 준비도 머릿속에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듣고 “아 그럼 미팅 시간을 미리 정해놓지 않고 갑자기 부르면 되겠구나”하는 또라이 Manager는 없길 바란다. 저런 짓을 하면 무슨 결과가 발생할까? 당신이 아무 때나 치고 들어오는 것을 알기 때문에 Maker는 당신이 존재하는 한 항상 일에 집중할 수 없다. 만약 당신 주변 사람들이 “나는 회사 사람들 다 퇴근하고 나 혼자 남았을 때(or 아무도 출근하기 전 새벽) 그때부터 일이 잘되요”라고 말하고 다닌다면 당신 또라이 당첨이다. 축하한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Maker는 방해받지 않는 덩어리 시간이 필요하다. 피터 드러커가 지식근로자에게는 덩어리 시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과 마찬가지 이유다.

그리고 Maker에게 일정 변경은 쥐약이다. 만일 두시에 상사와 미팅이 있었다고 해보자. Maker는 점심시간부터 일에 집중하지 못한다. 그런데 한 시반쯤 되어 상사가 갑자기 이전 일정에 문제가 생겼다며 네시에 보자고 연락이 온다. Maker에게 두 시간 반 남짓한 시간이 새로 주어졌지만 아마 제대로 무언가를 작업하지 못할 것이다. Transition과 cool down 시간을 빼고 두 시간도 채 안될 이 덩어리는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도 애매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기껏해야 밀려둔 경비 정산 같은 행정잡무를 처리하거나, 자기가 해야 할 일 중에 아주 작고 마이너 한 덩어리 하나를 작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시간에는 자기가 해야 할 일 중 가장 어렵고, 혁신이 필요하며, 동시에 가장 중요한 그런 일은 손도 대지 못한다. 이렇게 귀중한 반나절이 또 지나간다.

반면 Manager의 시간표는 대략 이렇게 생겼다.

Manager는 업무의 대부분이 보고 받은 자료를 리뷰하거나 특히 사람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하는 것이다. Paul Graham은 이를 Schedule of Command라 표현했다. 남에게 시키고, 결과물을 보고 받는 사람들이다. Manager는 시간을 최대한 잘게 쪼개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미팅을 가지는 것이 자신의 시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들에게는 일정의 변경이 수시로 있는 일이고, 그리고 일정이 바뀌는 것에 별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데, 그저 일정표의 한 미팅을 빼서 다른 미팅과 교체하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직급이 좀 올라가면 이런 세팅마저 비서나 부하직원이 알아서 다 해준다)

그리고 이런 일정표에 적응이 된 사람들은 transition time도 거의 필요하지 않다. 본인은 보고자가 아니고 듣는 입장이기 때문에, 일단 만나서 들어보고, 생각은 들으면서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냥 듣고 ‘잘했어’ 하고 끝내면 없어 보이기 때문에 칭찬도 하면서 뭔가 꼬투리를 잡아 한두 가지 지적질을 한다. Cool down도 필요 없다. 미팅 시간이 끝나면 서둘러 마무리하고, 또 다음 미팅으로 바로 이동한다.

시간 관리에 대한 자기계발서나 여러 가지 플래너들이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꼈다면, 아마 관리 skill의 문제보다 우선 schedule의 차이 문제일 수 있다. 경험상 자기계발서나 플래너들은 Manager’s Schedule을 사는 사람을 위한 경우가 많다. Maker는 우선 관리할 일정이 그리 많지 않다. 자기가 해야 할 task의 수는 그리 많지 않지만, task 하나하나가 진득이 앉아 시간을 들여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Maker가 연초부터 삼십 분 단위로 일정이 쪼개진 플래너를 새로 사서 그 칸을 촘촘히 채우며 시간관리를 하려고 하면, 곧 “내가 하는 일이 이렇게 없나”하며 자괴감에 빠질 것이다.

Maker와 Manager로 분류해 놓았지만, 갓 입사한 신입사원이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에서 Maker이자 동시에 Manager로 일한다. 결국 시간관리의 첫 시작은 내가 업무 시간의 몇 퍼센트를 Manager’s Schedule로 보내고 있으며, 몇 퍼센트를 Maker’s schedule로 보내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혼돈의 서막 – 다른 시간의 만남

Maker가 Maker와 같이 일할 때는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Manager가 Manager와 미팅을 하는 것도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Manager가 Maker들을 모아놓고 미팅을 벌일 때 일어난다. (보통 Manager가 직급이 더 높다)

Maker는 덩어리 시간이 필요한 존재다. Manager는 시간을 분단위로 쪼개 쓰는 존재다. Manager는 미팅 순서를 자유자재로 바꾼다. Maker는 미팅 시간이 바뀌면 돌아버린다. Maker는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서 아웃풋을 내야 한다. Manager는 미팅 그 자체가 본인의 아웃풋이라 생각한다.

대부분의 조직들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Manager가 된다. 따라서 경영진 차원에서 무언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 놓지 않으면, 시간이 흐를수록 엔트로피가 증가하듯이 회사에 미팅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냥 횟수만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주간 영업회의, 월간 마케팅 회의 등등 정례화되어버리는데, 이런 정기 미팅을 주최한다는 것 자체가 Manager의 성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미팅이 늘어갈수록 Maker가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시간은 없어진다. Maker들에겐 단순히 업무시간 – 미팅 시간 = 일할 수 있는 시간의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 아무리 짧은 미팅이어도 무언가 내 일할 시간의 중간에 치고 들어오는 순간 그날 내 아웃풋은 반토막 난다. 여기서부터 회사가 관료화되는 최악의 순환고리가 시작된다.

이 상태로 일 년 정도 지내고 나면 아마 실력 있는 Maker는 다 회사를 떠나고 Manager들만 남아 서로를 비난하며 사내정치에 열심인 회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미팅에 대한 원칙

요즘은 그래도 많은 회사들이 미팅 규칙을 만들어 놓고 (실제론 그렇게 안 하고) 있다. 미팅 전에 미리 내용을 보고 참석하자, 꼭 필요한 사람들만 참석하자, 미팅 시간을 정해놓고 타임키퍼를 두자 등등. 그런데 잘 안 지켜진다. 그 이유는, Maker가 Maker와 하는 회의와 Manager가 Maker와 하는 회의, Manager와 Manager가 하는 회의는 그 성격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회사에 한 가지 회의 규칙을 정해놓고 일률적으로 맞추라고 하니 회의 규칙을 도저히 지킬 수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런데 사실 더 중요한 것은 미팅을 시작 한 뒤에 벌어지는 일들이 아니라 애초에 그 미팅을 왜 해야 하느냐이다. 미팅을 아무리 효과적으로 해도 미팅을 했다는 사실 자체가 Maker의 능률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이 관점에서 Paul Graham의 조언을 잘 들어야 한다. Manager가 Maker와 미팅을 잡으려거든 최대한 업무시간의 앞이나 끝(출근 시간쯤 or 퇴근 시간 가까이)에 잡고 중간에 치고 들어가는 미팅이 있으면 안 되며,

미팅은 될 수 있으면 특정 요일에 몰아서 잡고 가급적 한 번도 미팅이 없는 날의 비율을 높여줘야 한다. 하루에 한 시간씩 미팅하는 것보다 차라리 미팅을 하루에 몰아서 그 날을 날려버리고 4일의 미팅 없는 날을 만들어주는 것이 Maker에게는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 차원의 원칙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Manager들은 자기 직급을 믿고 자기 시간표 빈칸에 아무렇게나 미팅을 잡아버린다. 이런 만행은 회사 차원에서 막아야 한다. Manager가 언제 Maker들과 미팅할 수 있으며 언제 할 수 없는지, Manager의 일정이 갑자기 바뀌면 Maker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으면 Manager는 끊임없이 Maker들과 간섭한다.

사람에 대한 원칙

Paul Graham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사람에 대한 이슈를 고민해야 한다.

Maker : Manager 비율

우리 회사에는 Maker와 Manager의 비율이 어느 정도 될까? 아까 말했듯이 대부분은 100% 어느 한쪽이라기보다는 자기 시간의 일정 비율을 양쪽으로 나눠서 쓴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시간 사용을 Maker’s Schedule과 Manager’s Schedule로 나눠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걸 진짜 측정한답시고 전 직원의 일주일 시간표를 제출하라고 한다면 아마 거짓말로 가득 찬 표만 모일 것이고 당신은 또라이 Manager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스타트업은 거의 100%에 근접하게 Maker’s Schedule의 비율이 높을 것이고, 중견기업, 대기업으로 갈수록 Manager’s Schedule의 비율이 높아질 것이다. 정답은 없고, Manager’s Schedule이 있으면 안 되는 죄악 같은 시간도 아니다. 실적에 대한 관리도 분명 필요하고, 사람에 대한 관리도 필요하다. 다만 관리를 위한 관리, 미팅을 위한 미팅의 시간이 늘어나는 것을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Manager’s Schedule이 과도하게 높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Manager’s Schedule이 50%를 넘어간다면 이 회사는 아웃풋을 내는 것보다 성과를 관리하는 것으로 돌아가는 회사가 되어버리며, 기존 사업에서 최대한 짜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신사업이나 혁신은 기대하기 어려운 조직이 된다.

그리고 이 논의를 라인 : 스탭 인원수 비율로 너무 간단하게 생각해서도 안된다. 내 이전 직장에서는 저 숫자를 한동안 관리하면서 스탭 인원을 줄이고 라인 인원을 늘리려고 했었는데, 문제의 본질은 라인이고 스탭이고 몇몇 Manager들이 Maker들의 시간을 다 쪼개 놓는 것이었다. 스탭이 관리라는 명목 하에 라인 일하는 것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스탭 인원을 줄였는데, 당연히 스탭은 Manager(윗사람)의 비율이 높아져 버리고 애꿎은 대리 과장 Maker들만 라인으로 팔려갔다. 관리해야 하는데 손발이 없어진 Manager는 뭔가 성과를 내야 하니 라인에 있는 Maker들을 불러 모으며 들볶기 시작한다. 라인은 라인대로 원래 있던 실적 미팅들이 있었는데, 스탭 Manager의 지적질까지 대안을 세워야 하니 미팅이 점점 길어진다. Maker들만 죽을 맛이다.

100% Manager?

자기 시간 전부를 Maker’s Schedule로 보내는 사람(100% Maker)들은 존재하며 필요하다. 그런데 반대로 100% Manager들은 회사에 따라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스타트업은 단언컨대 100% Manager는 필요 없다. 그런데 중견기업, 대기업을 보면 100% Manager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직급이 올라갈수록 실무에서는 점점 멀어지며 자기 밑의 사람관리, 성과관리만 하면 된다고 믿으니 어느 선을 넘으면 본인이 스스로 만드는 아웃풋이 0이 되는 것이다. 조직마다 다르겠지만 임원은 상당수 이 부류에 속하며, 부장 중에도 꽤 있다.

이 100% Manager들에게 본인의 과업, 혹은 아웃풋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아마 “조직관리”,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나 “대외 네트워크 관리” 같은 것을 댈 것이다. 맞을 수도 있고, 조직에 따라 그 일이 (혹은 그 사람이) 정말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람만의 문제를 떠나서, 100% Manager가 우리 회사에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직원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크다. 어떤 사람은 “나도 때가 되면 저렇게 편하게(?) 회사 생활해야지” 큰 꿈(?)을 가질 수도 있고, “저 양반은 대체 뭘 하면서 월급을 받는 거지?” 하며 불만을 가질 수도 있다. 사람관리, 성과관리, 중요하다. 그런데 관리는 일종의 전염성이 있어서, 남들이 관리만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관리만 하고 아웃풋이 없어도 된다고 생각할 수 있다. 경험담이다. 나도 잠깐 나는 관리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100% Manager는 관리 천국을 만드는데 파급력이 크다.

그래서 Manager’s Schedule이 대부분인 사람, 혹은 100%인 사람을 회사에서 허용할 것인지에 대한 정책적인 판단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 판단을 하려면 CEO 본인이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닌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Manager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큰 기업에 100% Manager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인데, Manager의 평가 이슈가 있다. 성과가 명확하다는 영업직군도 어느 레벨이 되면 본인이 직접 영업하지 않고 자기가 맡은 조직의 숫자가 곧 자신의 숫자가 된다. 이 상황을 방치하면 밑에 사람을 쪼기만 해도 자신의 성과가 달성되는 상황이 되며, 곧 이 사람은 정기/비정기 실적 미팅들을 잡을 것이다.

Manager’s Schedule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포지션을 인정하기로 했다면, 이 사람이 회사에 주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당사자와 조직 전체에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정말 C-level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지는 사람인지, 회사 내부의 아웃풋은 적어 보여도 어떤 외부 이해관계자와의 관계에 핵심이 되는 사람이라든지, 적어도 이 사람이 하는 일이 밑에 직원들을 쪼아서 조직의 숫자를 맞추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그 부분을 조직의 실적과 별개로 놓고 판단이 필요하다. 조직의 성과에 Manager의 성과가 묻어가게 만들어 놓는 것은 관리 천국을 방치하는 지름길이 된다.

공간에 대한 원칙

사무실이 이사 갈 때마다 문제가 되는 “파티션 있는 독립적 공간” vs. “개방형 오피스” 논란도 사실 이 Schedule들과 관련이 있다. Maker’s Schedule과 Manager’s Schedule 축에 혼자서 일하는지 팀이 같이 토론하며 일하는지의 축을 더하면 다음과 같은 모양이 된다.

Maker가 혼자: 보고서/자료 준비, 코딩, 디자인하는 시간 등

Maker가 같이: 팀의 아웃풋을 공유하고 각자의 역할을 나누는 시간, 그렇게 작업한 내용을 합치는 시간 등

Manager가 혼자: 보고자료를 혼자 리뷰하는 시간

Manager가 같이: 보고 받는 시간

Maker든 Manager든 혼자 일할 때는 독립적인 공간이 좋다. 문제는 Maker는 혼자 일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고 Manager는 위에서 보았듯이 이런 시간이 짧다. 관리해야 할 Manager가 자기 방에만 처박혀 있는다? 일 안 한다는 소문 돌기 딱 좋다. Maker가 혼자 일할 때는 파티션이 처져있는 공간이 좋고, 너무 적막한 수준만 아니라면 조용할수록 좋을 것 같다. 눈 앞에 사람들이 자꾸 왔다 갔다 거리는 것이 보인다든지 하는 distraction 요소들을 줄이는 것이 포인트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회사는 독립 공간이 절실한 Maker들을 오픈 공간에 풀어놓고, 혼자서는 하는 일이 별로 없는 임원들에게 방을 준다. 대우의 의미이긴 하지만 딱 봐도 반대가 되어야 맞다.

Maker가 여럿이 같이 일할 때는 개방형 오피스처럼 오픈된 공간에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좀 큰 테이블, 프레젠터나 모니터가 있으면 적당하다. 작업 초반 브레인스토밍 같은 단계에서는 카페 같은 분위기의 조금은 시끌벅적하고 BGM도 살짝 깔려있는 분위기도 괜찮다. Manager가 같이 일하는 경우는 보고 회의 같은 미팅을 진행할 때이다. Manager의 미팅을 위한 공간은 Maker의 미팅과는 달리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실적회의용 회의실 딱 그 모양을 상상하면 된다.

즉, 각 공간마다 여기가 누가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공간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공간별로 어떻게 디자인하고 어떤 분위기로 꾸며 놓을지, 배경음악이 필요한지, 어느 정도 크기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지 금방 답이 나온다. 독립적 공간과 개방형 오피스는 어느 한쪽을 선택할 이슈가 아니라 짬짜면처럼 공간 배분의 최적화 문제다. 문제는 칸막이가 없는 그릇에 짬뽕과 짜장면을 같이 붓는 것이다. 이건 개밥이다. Maker의 공간 바로 옆으로 사람들이 끊임없이 지나다니며 브레인스토밍을 하게 만들어 둔다든지, 회의 공간이 너무 없어서 Manager들이 오픈된 공간에서 회의를 하게 (그리고 그 소리가 일하고 있는 Maker들에게 들리게) 방치해 둔다든지, 회사 전체에 BGM을 깔아서 Maker가 일하는 공간에서도 계속 노래가 나온다든지 하는 이도 저도 아닌 공간 배치는 Maker의 능률 감소로 귀결된다.

물론 회사가 재정적인 이슈(혹은 리더의 사고방식)로 공간들을 구분해서 운영할만한 여유가 없을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위에서 언급한 시간의 구분이 더욱더 중요해진다. 공간을 구분할 수 없으면 최소한 Making의 시간과 Managing의 시간이라도 확실히 구분해 놓아야 Maker가 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유가 확보되는 것이다.

Maker와 Manager, 우리는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서도 서로 다른 시간을 달린다. 될 수 있으면 우리 업무시간엔 서로 만나지 말자.

2017-02-02T18:39:54+09:00Thu 02 Feb 2017 6:39 PM|

Koh Pha Ngan

2월 한달 태국은 코팡안 (Koh Pha Ngan)과 코란타 (Koh Lanta)라는 2개의 섬에서 약 2주씩 지내게 된다.

어제 제주항공 (국내 저가항공사 비행기는 처음 타봤다)을 타고
내 평생 가장 기억에 남는 경착륙 (착륙 때 앞바퀴가 부서지는 줄 알았음)도 해보고

방콕에서 다시 코팡안으로 가기 위해 비행기, 버스, 배를 타고
서울집에서 출발한지 18시간이 다 되어서 결국 도착했다.

코팡안은 코사무이 바로 옆에 있는 섬인데
풀문 파티로 유명하다 하고
한국인은 물론 중국인도 잘 안오는…서양인 위주로 풀문파티때만 잠시 북적이는 비교적 조용한 섬이었다.
북극 근처 그린란드 까지도 가본 나지만, 중국인이 없는 동네는 처음 와본다.

젊은 서양인들과 가족단위로 조용히 놀다 가는 곳인 것 같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다. 테스코 로터스 (대형마트)도 있고, 타이 마사지도 1시간 1만원 수준으로 저렴하더라.

섬에서도 다소 외진 곳에 조용히 있을 생각이다.
책도 6-8권 정도 가져왔다.

2017-02-02T00:53:41+09:00Thu 02 Feb 2017 12:53 AM|

10월은 아이슬란드

10월은 다시 아이슬란드로 간다.

서울->도쿄 저가항공사로 11만원에 발권했고

도쿄->(아부다비 경유)->베를린
레이캬비크(아이슬란드 수도) -> (뒤셀도르프, 아부다비 경유) -> 인천
항공권을 60만원에 발권했다.

이 항공권을 거의 일주일동안 지켜보고 있었는데
도저히 놓칠 수 없었다.

하루 잠깐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땅을 치고 후회하다가
다시 나타난 것을 보고 결정했다.

2017-01-27T04:14:01+09:00Fri 27 Jan 2017 4:1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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