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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한 무료 서비스 1 – Pocket

홈페이지에 들리는 많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제가 꼭 사용하는 서비스 몇가지를 올려봅니다.
(대중화되어 많은 분들이 쓰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요)

첫번째는 Pocket입니다.

웹서핑을 하거나 하다가 유용한 정보를 발견했을 때에 스크랩/저장해두는 서비스입니다.
Android, iOS, IE, 크롬, 파이어폭스, 오페라 등등 대부분의 기기와 OS를 지원합니다.
다운로드를 하여 오프라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저의 경우 웹에서 기사나 컬럼을 발견하고 시간이 없을 때 나중에 보기로 하고 저장하는 용도로 가장 많이 씁니다.
(저는 쓰지 않지만) tag를 하여 구분을 할 수도 있습니다. pocket 앱이나 사이트에서 검색 기능도 지원합니다.

글을 잔뜩 스크랩해뒀다가 기기에 오프라인 저장시켜놓고
인터넷이 안되는 쿠바에서 책 대신 많이 읽기도 했습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https://getpocket.com/

2017-06-11T13:47:54+09:00Sun 11 Jun 2017 1:47 PM|

통밀빵은 흰빵보다 몸에 좋을까?

이렇게 막연한 상식과 다른 결과가 나올 때는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


 

통밀빵은 흰빵보다 몸에 좋을까?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음식에서 흰색 대신 갈색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정제된 흰색 음식보다는 정제되지 않은 갈색 음식이 몸에 좋다는 얘기를 반복해서 들어서다. 그래서인지 마트에 가보면 예전에는 전부 흰설탕이었지만 지금은 갈색설탕이 거의 비슷한 양만큼 쌓여있다. 필자 집에서도 갈색설탕으로 바꾼 지 꽤 됐다.쌀도 비슷하다. 백미는 몸에 안 좋다며 먹기 쉽지 않은 현미로 바꾼 사람들도 적지 않고 이게 부담스러울 경우 필자 집처럼 백미에 현미를 섞어서 먹기도 한다. 벼를 수확해 얻은 낟알의 왕겨를 벗겨낸 게 현미로 쌀겨 때문에 갈색을 띤다.

참고로 현미는 영어로 brown rice다. 현미를 도정해 쌀겨와 쌀눈(배)을 제거하고 남은 게 백미(배젖)다. 따라서 백미에는 쌀겨와 배에 들어있는 각종 영양성분과 식이섬유가 부족하다.

밀도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속살이 미색에 감촉이 보들보들한 흰빵만 있었지만 지금은 속까지 누런 통밀빵이 진열대의 상당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맛은 좀 거칠지만 풍미가 구수하다며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다. 현미와 마찬가지로 통밀도 겉겨만 벗겨낸 것이다.

밀기울과 배(胚)가 포함된 통밀가루로 만든 통밀빵이 건강식으로 인기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에 따라서는 통밀빵이 오히려 흰빵보다도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 ⓒ 위키피디아

밀기울과 배(胚)가 포함된 통밀가루로 만든 통밀빵이 건강식으로 인기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사람에 따라서는 통밀빵이 오히려 흰빵보다도 건강에 안 좋을 수 있다. ⓒ 위키피디아

현미밥과 통밀빵의 경우는 영양분이 더 풍부하다는 것 외에도 먹었을 때 흰쌀밥과 흰빵에 비해 혈당상승폭이 완만하다는 것도 선호하는 주된 요인이다. 즉 혈당지수가 낮다는 말이다. 혈당지수가 높은 음식을 즐겨 먹으면 당뇨병을 비롯해 각종 대사질환에 걸릴 위험성이 높으므로 현미밥이나 통밀빵을 먹어 그 위험성을 낮추자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갈색 음식은 상응하는 흰색 음식에 비해 더 비싸다. 필자가 ‘흥미롭다’고 말한 건 갈색 음식이 싸면 쌌지 비쌀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사탕수수에서 즙을 짠 뒤 졸여 결정을 얻은 게 갈색설탕이다. 이를 다시 녹여 불순물(영양분)을 제거한 뒤 순수한 자당(sucrose) 결정으로 만든 게 흰설탕이다. 백미 역시 현미를 도정하는 과정에서 중량의 8%를 잃는다.

밀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추가 가공비에 손실분까지 고려하면 정제된 흰색 음식이 더 비싸야하지 않을까. 결국 건강에 좋다는(또는 덜 해롭다는) 이유에 볼모로 잡혀 소비자들은 갈색 음식에 거꾸로 돈을 더 지불하는 셈이다.

흰빵이 건강에 더 좋은 사람들도 있어

학술지 ‘셀 대사’ 6월 6일자에는 통밀빵과 흰빵이 적어도 대사의 측면에서 차이가 없다는 뜻밖의 연구결과가 실렸다. 이스라엘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연구자들은 흰빵과 통밀빵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흰빵이 낫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을 정리하기 위해 정교한 실험을 설계했다.

즉 참가자 20명을 두 그룹으로 나눈 뒤 한쪽은 1주일 간 흰빵을, 다른 쪽은 통밀빵을 먹게 한다. 2주의 휴식기를 보낸 뒤 앞서 흰빵을 먹었던 그룹은 1주일 간 통밀빵을, 앞서 통밀빵을 먹었던 그룹은 흰빵을 먹게 했다.

즉 빵의 종류에 따른 영향과 순서가 미치는 영향까지 본 것이다. 참고로 흰빵을 만들 때는 배양한 빵효모(이스트)를 썼고 통밀빵을 만들 때는 건강 컨셉에 맞게 천연효모와 박테리아(젖사균과 초산균)가 포함된 사워도우(sourdough)를 썼다.

두 차례의 실험 기간 동안 참가자들은 빵 이외에는 밀가루로 만든 음식(면류와 과자류 등)을 먹으면 안 된다. 따라서 평소에는 전체 섭취 칼로리에서 빵이 차지하는 비율이 12%였지만 실험 기간 동안은 22%로 올라갔다.

연구자들은 모두 네 차례(1차 실험 전후와 2차 실험 전후)에 걸쳐 참가자들의 혈액과 분변을 채취하고 체중을 측정해 식단의 변화가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혈당지수를 반영하는 식후당반응(식후 피부아래 당 수치로 혈당수치와 거의 같은 맥락으로 움직인다)을 비롯해 콜레스테롤 수치와 체중 변화 등 20가지 임상 변수를 조사한 결과 일주일 동안 밀가루 음식으로 빵만 먹으면 몇몇 변수가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칼슘과 철, 마그네슘 같은 필수 미네랄의 수치가 떨어지고 간과 신장의 활동도를 나타내는 몇몇 효소의 수치도 변화가 있었다. 다만 변화의 폭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러나 놀랍게도 흰빵을 먹었을 때와 통밀빵을 먹었을 때 유의적인 차이는 없었다. 즉 빵을 더 먹는 게 변수이지 어떤 빵을 더 먹느냐는 상관없다는 말이다.

한편 채취한 분변에 있는 장내미생물의 메타게놈을 분석한 결과 먹은 빵의 종류가 장내미생물의 조성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한 사람의 분변에 있는 장내미생물의 조성은 네 차례 채취한 시료에서 거의 일정하게 유지됐다. 다만 흰빵을 먹었을 때 유박테리움 벤트리오섬(Eubacterium ventriosum)과 아네로스티페스(Anaerostipes) 박테리아가 늘어났는데 둘 다 부티레이트라는 짧은 사슬 지방산을 생산하는 박테리아다. 부티레이트는 대장암과 대장의 염증을 억제하는 작용을 한다.

다음으로 개별 참가자에 대해 흰빵과 통밀빵의 영향을 분석해봤다. 그 결과 놀랍게도 개인에 따라 빵의 종류가 미치는 영향이 차이가 컸다. 즉 참가자 20명 가운데 절반인 열 명은 흰빵을 먹을 때에 비해 통밀빵을 먹을 때 식후당반응 수치가 더 낮았지만(과학상식이 예상한 결과) 나머지 열 명은 반대로 흰빵을 먹을 때 오히려 수치가 더 낮았다.

연구자들은 개별 참가자의 분변을 분석해 얻은 장내미생물 분포와 당반응의 차이를 조사했고 서로 연관성이 있다는 결과를 얻었다. 즉 장내미생물에 따라 내 몸에 흰빵이 좋을지 통밀빵이 좋을지가 결정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특정 음식의 식후당반응, 즉 혈당지수가 그 음식의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개인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은 2015년으로 이번 연구를 진행한 바이츠만과학연구소의 연구진들의 연구결과다(자세한 내용은 과학에세이 147 ‘개인영양학 시대 열린다’ 참조).

즉 어떤 음식의 혈당지수는 개인에 따라 상당히 폭이 넓은 값들의 평균일 뿐이라는 말이다. 앞으로 흰빵에 비해 거의 두 배 돈을 주고 천연효모로 만든 통밀빵을 살 때마다 이번 연구결과가 떠올라 씁쓸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밀가루 음식으로 일주일간 흰빵만 먹었을 때와 통밀빵만 먹었을 때의 식후당반응을 측정한 뒤 그 차이를 나타낸 그래프다. 노란 동그라미는 앞의 일주일은 통밀빵을 먹고 뒤의 일주일은 흰빵을 먹은 사람이고 파란 동그라미는 그 반대다. 순서와 관계없이 개인에 따라 식후당반응의 차이가 제각각이다. 이를 평균하면 흰빵과 통밀빵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 셀 대사

밀가루 음식으로 일주일간 흰빵만 먹었을 때와 통밀빵만 먹었을 때의 식후당반응을 측정한 뒤 그 차이를 나타낸 그래프다. 노란 동그라미는 앞의 일주일은 통밀빵을 먹고 뒤의 일주일은 흰빵을 먹은 사람이고 파란 동그라미는 그 반대다. 순서와 관계없이 개인에 따라 식후당반응의 차이가 제각각이다. 이를 평균하면 흰빵과 통밀빵 사이에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 ⓒ 셀 대사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 저작권자 2017.06.09 ⓒ ScienceTimes
2017-06-11T13:40:54+09:00Sun 11 Jun 2017 1:39 PM|

지혜로운 사람들의 5가지 공통점

“지혜란,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수한 능력이라기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라는 것”
단순한 이야기같지만 뒤돌아보면 정말 맞는 이야기.

나에게도 삶의 위기(?)를 통해 지혜가 생겼으면 좋겠다.

http://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913774&memberNo=22739642


지혜로운 사람들의 5가지 공통점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혜, 현명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지혜로워지기 위해
책을 읽고, 강연을 듣고 멘토를 찾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지혜’는 무엇일까?
나이가 들면 가질 수 있는 것인가?
혹은 타고난 몇몇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인가?

이러한 ‘지혜’의 비밀을 연구한
‘지혜 심리학자’들은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지혜를 발달시키는 중요한 요소가
바로 삶의 ‘위기’라는 것이다.

여기서 ‘위기’는 부모님의 이혼이나
친구나 연인의 죽음, 자연재해와 같은
부정적 위기뿐만 아니라

첫 출산이나 결혼, 첫 취직 등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변화시키는
새롭고 긍정적인 사건도 포함된다.

인간의 삶의 태도와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모든 경험들이
바로 삶의 ‘위기’가 되는 것이다.

이런 위기들은
삶을 위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면서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우리가 지금껏 익숙해져 있던
삶이나 가치관, 관점을
근본적으로 바꿔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대부분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려 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단언컨대, ‘삶의 위기’는 당신의 삶, 모든 사람의 인생에서 일어난다.

‘지혜 연구가’ 유디트 글뤼크는 《Weisheit》(《지혜를 읽는 시간》)이라는 책에서, 인생의 위기를 겪고 자신만의 지혜를 터득한 147명을 인터뷰하고 연구했다.

직장 따돌림, 우울증, 연인의 죽음,
출산 등 삶의 ‘위기’를
지혜의 에너지로 바꾼 147명에게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1. 열린 마음(개방성)
그들은 자신의 사고방식을 조금만 변화시켜도 세상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고,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 감정 조절
그들은 자신의 감정이 어떤지 늘 주의 깊게 살폈고, 그렇기에 감정을 억누르지 않으면서도 상황에 맞게 다룰 수 있었다.

3. 공감하는 자세
수많은 갈등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입장을 충분히 고려하기 위해 노력했고, 도덕적으로도 월등한 삶을 살 수 있었다.

4. 성찰
어떤 문제든 깊이 생각하고, 정서적 거리와 균형감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이를 통해 강한 자기 확신을 가지면서도 스스로를 돌아볼 줄 알게 되었다.

5. 통제 환상 극복
삶이 절대 내 뜻대로 통제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이 우리의 삶을 흔들 때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유디트 글뤼크는 이 다섯 가지 ‘지혜의 재료’는 누구나 내면에 가지고 있으며, 인생의 위기를 만났을 때나 일상 속에서 지혜를 연습하고 훈련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지혜란, 몇몇 사람에게만 주어진 특수한 능력이라기보다,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루는 방식이나 태도라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삶에서 맞닥뜨리는
무수한 파고를 유연하게 타고 넘는다.
보다 행복하고 보다 평화롭게 말이다.

2017-06-10T17:14:11+09:00Sat 10 Jun 2017 4:51 PM|

방콕 6일차

방콕도 벌써 6일차다.
처음 2일은 호텔에 있다가 12인실 도미토리로 옮겼는데
비수기라서 그런지 12인실이 다 차지는 않았다.

날씨는 하루에 한번은 소나기가 오고 그 외에는 주로 흐리거나 잠깐 해가 나거나 해서 후덥지근할 망정 못다닐 정도는 아니다. 특히 에어컨이 건물내에 워낙 심하게 틀어져서…(이 나라의 전기 수요는 1년 내내 에어컨 때문에 막대할거같은데 어떻게 전기를 공급하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경비를 가급적 줄이고자 저렴한 식사거리를 찾는다고 찾지만
현지인들이 먹는 길거리 음식은 차마 먹지못하다보니
한끼에 최소 5천원은 넘기고 7~8천원 선을 유지하고 있다.
군것질거리랑 커피까지 고려하면 하루에 1.2~1.5만원은 쓰는 것 같다.

이 지역에 일본인들이 많이 거주하는지 일본 음식점이 유난히 많은데
오늘은 Ramen Tei라는 라멘 전문 음식점에서 볶음밥을 먹었다.
곁들여서 뭘 주지 않는 외국 음식점 답지않게
우리나라 중국집처럼 라멘 국물을 주어서 비교적 만족스럽게 먹었다.
저녁은 한국에서 사온 햇밥을 뜯어서 먹었다. 참치김치밥을 먹어봤는데 생각보다 맛이 나쁘지 않았다.

내년 2월, 4월도 이미 방콕행 항공권을 예매한 상황이라
현지에 보다 더 잘 머무는 방법을 찾아야할 것 같다.

당장 한국으로 전화를 빈번하게 할 것 같아서
이 솔루션부터 좀 찾아볼 생각이다.
지금은 국제전화카드 (450원/분)과 말톡 (20~40원/분) 를 섞어서 쓰고 있는데
스카이프도 고민중에 있다.

인터넷 속도는 거의 100MB/s가 나오고 있어서 만족스러운 수준이다. 역시 방콕.

2017-06-10T00:21:38+09:00Sat 10 Jun 2017 12:21 AM|

편 가르는 이중 잣대

작년 기사인데
해가 가면 갈 수록 심하기만 하지, 나아지지않고 있다.

정말 심각한 사회 문제라 생각한다.
이 기사가 나온 작년 4월 이후 대선을 거치면서 “적폐, 적폐세력”라는 단어까지 등장하여
원래의 뜻과 다른 의미와 의도로 나와 다른 남을 청산하겠다고 나서고 있으니

말 다 했다.


우리편이 때린건 “실수” 상대가 때린건 “폭행”…내편만 감싼다

韓·日 국가대표 축구경기서 훌리건끼리 충돌…심리학 실험해보니

기사입력 2016.04.06 17:09:23 | 최종수정 2016.04.07 15:29:30
◆ 우리 마음속 10敵 / ⑨ 편 가르는 이중 잣대 ◆

`우리`는 한국 사회에서 유독 많이 쓰이는 단어다. `나`라는 표현보다는 `우리`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우리 집, 우리 회사, 우리 동네 등. 나보다는 우리라는 집단을 중요시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로 묶여 있는 집단에 대한 애정을 강하게 표출한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은 과거부터 외부와 접촉이 적은 나라였다”며 “한국인은 외부 사람에 대해 경계심이 강한 반면 내부인과는 결속하는 태도를 보여왔다”고 말했다. 이런 성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배타성이다. 내집단에 대한 과도한 애정은 타 집단에 대한 배척으로 표현돼 집단 간 갈등을 유발하는 시초가 되기 때문이다. 심리학 용어로는 이를 `내집단 편향(In-group bias)`이라고 한다. 자신이 속한 집단은 실제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상대적으로 남은 깎아내리는 이중 잣대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 같은 내집단 편향이 유독 많이 드러난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같은 학교, 같은 지역 출신에게는 관대하다. 학연·지연을 통한 사회적 갈등이 많이 발생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우리 학교 나왔어?` `고향은 어디야?` 같은 질문이 상대방을 객관적이 아닌, 주관적으로 평가하는 주요 잣대가 된다. 매일경제신문은 내집단 편향으로 인한 이중 잣대가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조직·산업심리 전문 연구소인 ORP연구소와 함께 20·30대 직장인 66명을 대상으로 심리학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을 위해 축구 라이벌인 두 나라가 월드컵 본선 진출권을 놓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겨룬다는 상황을 설정했다. A국가가 극적인 결승골을 넣자 B국가 응원단이 A국가 응원단을 향해 비난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에 흥분한 A국 응원단이 상대적으로 소수인 B국 응원단에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둘러 유혈 사태가 발생한다.

공통의 상황을 놓고 가해자가 한국, 피해자가 일본이었을 때와 가해자와 피해자가 바뀌었을 때를 비교했다. 가해자와 피해자 국가를 특정하지 않았을 때 반응도 함께 분석했다. 각각 22명의 실험 대상자들이 세 가지 상황의 실험 대상자가 됐다.

결과는 명확했다. 같은 상황이지만 내집단인 한국인 응원단에 대해서는 과도한 감싸기를 보여줬고, 일본인 응원단이 가해자였을 때는 가차 없는 분노를 표출했다.

`가해 응원단이 폭행을 저지른 데에는 피해 응원단의 책임도 있다`라는 말에 어느 정도 동의(매우 동의 시 10점)하는지 물었다.

한국인이 가해자인 경우 피해 응원단도 책임이 있다는 응답(7.4)이 일본이 가해자였을 때(5.9)보다 높게 나타났다. 한국 응원단이 가해자였을 때는 실수라고 생각하는 응답(6.6)도 높았다. 상대적으로 일본인이 가해자였을 때는 실수라고 생각한 응답(4.2)이 적게 나왔다.

일본인 응원단이 가해자였을 때는 이들에 대해서 일상생활에서도 폭행을 저지를 사람이라고 비난한 응답(4.5)이 한국인 응원단이 가해자였을 때(3.2)보다 높았다.

실험자들의 실험 후 정서에 대해서도 비교해봤다. 일본이 가해자였을 때 화, 약 오름, 역겨움, 신경질 등 부정적인 정서는 6.3이었고, 한국인이 가해자였을 때는 4.2에 불과했다.

분노의 정도는 행동으로도 드러났다. 가해자 응원단을 위한 식사를 준비한다고 가정하고 캡사이신이 포함된 핫소스를 뿌려보라는 지시에 일본인이 가해자였던 실험 집단은 평균 14.4g의 핫소스를 뿌렸다. 한국인이 가해자였을 때(7.8g)보다 두 배가량 많았다. 설문지에 `정량 이상의 캡사이신은 미각을 마비시키고 심한 고통을 줄 수 있다`라는 문구를 넣었지만 일본인이 가해자였을 때는 핫소스를 더 뿌리는 결과가 나타났다.

이명규 ORP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실험에서 한국인들의 내집단 편향이 명확하게 드러났다”며 “동일한 행동임에도 내집단·외집단 여부에 따라 극명히 다른 잣대를 적용하고 있다”고 밝혔다.

내집단 편향 성향은 일상생활 곳곳에서 드러난다. 우리 학교 출신의 유명인, 정치인에 대해서는 평가가 관대해진다. 한국 사회의 해묵은 지역감정도 바로 이와 같은 성향 때문에 심화되고 있다.

스포츠 경기 때도 비이성적 판단이 이뤄진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 왠지 불리한 심판 판정을 받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가정에 대한 차별이 여전한 것도 우리 민족이라는 테두리를 치고 외부 민족을 배척하는 심리에서 기인한다.

이처럼 비이성적 판단이 이뤄지는 내집단 편향을 개선하기 위한 해결책은 없을까.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철저히 외집단을 포용하는 쪽으로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며”서로 차별화된 모습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7-06-08T15:06:09+09:00Thu 08 Jun 2017 3:06 PM|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저 말도 안되는 방향을 상대하는 맞은 편에
그래도 가장 똑똑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있어서 다행이다.
권력의 힘이 커서 얼마나 버텨낼 지 잘 모르겠지만.


박용만 “너무 이르다는 생각 든다”…새정부 정책에 우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정기획위-상의 첫 간담회…”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 찾아야”
김명연 “노동 편향적 절대 아냐…우려 크게 안해도 된다”

(서울=연합뉴스) 김동현 기자 = 문재인 정부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8일 재계와 첫 소통의 자리를 가졌다.

국정기획자문위 사회분과위원회는 이날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챔버라운지에서 대한상의와 간담회를 했다.

사회분과위원회의 김연명 분과위원장과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간사 겸 분과위원, 오태규 자문위원 등이 참석했다.

대한상의에서는 박용만 회장과 이동근 상근부회장과 이경상 경제조사본부장 등이 나왔다.

박 회장은 인사말에서 “큰 그림으로 보면 너무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며 “왜냐면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될 것인가는 서로 이야기를 좀 하면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방안을 찾아가는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그 이야기에 들어가기 전에는 사실 늘 해오던 말의 연장선 밖에 안된다”며 “지금 같이 협의하면서 현실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주안점을 두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무엇이 너무 이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지만,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에 대한 재계의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관측된다.

최근 재계 일각에서는 비정규직 과다 고용 대기업에 대한 고용부담금 부과 검토 등 정부의 비정규직 정책으로 인해 “경영 환경이 더욱 악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국정기획위는 정부가 재계와 소통하지 않는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해명했다.

김 분과위원장은 “차례차례 관련 단체들 의견을 수렴하려고 쭉 스케줄을 짜놨고 당연히 경제단체도 방문하는 스케줄이 있었다”면서 “일정을 공개할 수는 없었고 어떻게 하다 보니 노동계 쪽에 먼저 가서 (국정기획위가) 편향적이 아니냐는 시각이 있었는데 절대 그런 게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박 회장의 우려에 대해 “대통령도 이런 여러 가지 사회적 현안을 풀어가는데 대화와 타협이라는 말을 많이 강조했고 국정 전반의 큰 원칙도 단계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서 가는 것이기 때문에 그런 우려를 크게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bluekey@yna.co.kr
(끝)

2017-06-08T14:19:18+09:00Thu 08 Jun 2017 1:57 PM|

FlowMotion One

Kickstarter.com 에서 FlowMotion One이라는 스마트폰/GoPro 용 stablizer를 주문했다.
DJI에서 파는 것과 비슷한데 노르웨이 형아들이 좀 더 정교하고 가볍게 만들었다.

작년말 즈음에 구매한 것 같은데
제품개발이 계속 늦어져서 8월에나 배송이 될 듯 하다.

동영상을 그리 자주 찍지않지만
조카를 찍어줄 때에 좀 더 재미있는 동영상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2017-06-08T13:50:53+09:00Thu 08 Jun 2017 1:48 PM|

설레고 기특하며 눈부시다

인생의 (아마도) 절반의 반환점을 돌고 있을 나도
이제 중년이라는 단어가 낯설지않게 될 것이다.

다가오는 40대는
지난 20대, 30대에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배우고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나답게(?) 도전하고 창의적인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

더 노력해야한다.


설레고 기특하며 눈부시다

[한겨레21] [정여울의 마흔에 관하여]인류 역사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발명되는 시기 ‘중년’…

내가 꿈꾸는 모양대로 망가지고 미친 듯이 도전해도 괜찮을 나이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여울씨, 시스젠더라는 말 알아요?”

얼마 전 문학상 심사위원으로 한 자리에서 만난 K작가가 물었다. K작가는 나보다 훨씬 윗세대인데 ‘그녀는 알고 나는 모르는 신조어’가 있다니, 질문을 듣는 순간 살짝 위축되고 말았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이 되긴 싫은데, 머릿속에선 어떤 벨도 울리지 않았다. 솔직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 진짜 모르겠는데요.”

‘시스젠더’와 ‘읽씹’을 아느냐

그녀는 ‘딱 걸렸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으면서 시스젠더(sys-gender)는 트랜스젠더의 반대말이라고 귀띔한다. 트랜스젠더는 몸과 마음의 성이 일치하지 않을 때를 가리키니, ‘몸도 마음도 여성’이거나 ‘몸도 마음도 남성’인 보통 사람들이 다 시스젠더라는 것이다. 동성애자가 이성애자를 ‘헤테로섹슈얼’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트랜스젠더도 ‘우리만 일방적으로 대상화당하지 않겠다’는 의미에서 ‘정상인’으로 행세하는 사람을 ‘시스젠더’라 부르는 것이다.

아, 신선한 충격. 이건 정말 멋진 신조어다. 스스로 정상이라고, 보편이라고 믿는 것에 대한 가슴 뛰는 반격 아닐까. 그러면서 동시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정말 시대에 뒤떨어져가는구나!’ 요새 나는 신조어나 줄임말에 급속도로 취약해져버렸다. 예전에는 저절로 대화의 맥락 속에서 이해했는데, 이제는 너무 궁금해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처럼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어본다. 얼마 전에는 ‘피브이’(PV)란 줄임말의 뜻을 몰라 한참 헤맸다. 알고 보니, 페이지뷰(Page View)의 줄임말, ‘조회 수’의 다른 말이란다.

“미안한데, 그 단어 뜻이 뭐예요?”

내가 신조어나 줄임말의 뜻을 물어보면, 상대방은 약간 실망한 얼굴로, 그러나 친절과 애정을 듬뿍 담아 나에게는 너무도 낯선 그 단어를 설명해주곤 한다. 삼십 대 초반의 아주 싱그럽고 통통 튀는 상상력을 가진 N기자에게 며칠 전 새로 배운 단어는 ‘읽씹’이다. 문자를 읽고도 씹어버리고 답장하지 않는 행위를 지칭하여 ‘읽씹’이라 한다는데, 단어를 듣는 순간 가슴에 강렬한 통증이 전해졌다. 단어의 모양새는 다소 경박한데, 풍기는 뉘앙스는 너무도 처절하다. 어떤 신조어는 차라리 몰랐으면 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듣는 순간 남 일 같지 않고, 불현듯 생살을 도려내듯 가슴이 쓰라리니까.

얼마 전 나도 가슴 시린 ‘읽씹’을 당했다. 몇 달 전 너무도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선배의 빈자리를 채우느라 힘겨운 시간을 보내는 친구 M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조만간 만나서 밥 한번 먹자고. 너무 일찍 세상을 떠난 선배의 장례식 때 만난 친구의 뒷모습이 깜짝 놀랄 정도로 야위어서, 뒤돌아서는 내 발걸음이 무거웠다. 따뜻한 저녁이라도 사주고 싶은 마음에 여러 번 메시지를 보냈지만, 친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섭섭한 마음보다는 ‘세상엔 내 힘으로 절대 위로할 수 없는 슬픔이 있다’는 뼈아픈 진실을 힘겹게 받아들이는 중이다. 내가 누군가를 걱정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그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10년 전이었다면 엄청나게 섭섭해하고, 어떻게든 그를 만나 위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내가 결코 어루만질 수 없는 슬픔의 그림자가 있다는 것을 안다. 누군가를 하염없이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이런 내 걱정에 반응조차 하기 힘든 상대방의 슬픔이 더 크다는 것을 안다.

신을 닮은 지혜와 이성 

이렇게 마음속으로 호된 마흔의 신고식을 치르는 요즘, 어떻게든 ‘점점 위축되는 마흔의 멘털’을 회복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중년의 창조성’에 대한 자료를 열심히 모으기 시작했다. 중년이 단지 쇠락과 후퇴의 시기가 아니라 새로운 시작과 창조적 영감의 시기이기도 하다는 점을 알려주는 사람은 없을까.

나는 ‘중년’이라는 키워드로 책을 검색해보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다. “우리는 중년에야 비로소 신을 닮은 지혜와 이성과 기억력을 갖는다!” 눈이 번쩍 뜨인다. 중년이 쇠락기가 아니라 오히려 인생의 전성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뇌과학, 생물학, 심리학, 인류학의 힘을 빌려 설명한 <중년의 발견>(데이비드 베인브리지, 청림출판, 2013)이란 책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책이다 싶어 내 방 책꽂이를 살펴보니 이미 오래전에 사놓고 ‘아직 내가 중년은 아니잖아’라는 안일한 자기방어 때문에 밀쳐둔 책이었다. 다시 읽기 시작한 <중년의 발견>은 기대 이상으로 흥미로웠다. ‘중년’ 하면 ‘빈둥지증후군’이나 ‘폐경기’ 같은 우울한 단어를 먼저 떠올리는 우리에게 이 책은 ‘중년이란 오히려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는 진정한 전성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빠르게 생각하고 민첩하게 행동하는 청년기와 달리, 중년은 ‘천천히, 다르게 생각’함으로써 더 현명한 대답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얼마 전 술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다. ‘중년이 쇠락의 시기만이 아니라, 창조성과 유연성이 극대화되는 시기일 수도 있지 않느냐’라는 이야기를 하니, 주변 사람들 반응이 완전히 ‘흑’과 ‘백’으로 양분되었다.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인식을 중시하는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에이, 네가 속은 거야. 솔직히 중년이 뭐가 좋냐? 중년을 예찬하는 논리가 있다면, 그건 이제 중년에 접어든 사람들을 더욱 알뜰히 부려먹기 위한 술책일지도 몰라.” 그들만큼 냉철하고 현실적이지 못한 나는 왠지 슬퍼졌다. 나는 이왕 맞아버린 중년, 기왕 먹어버린 마흔, 되도록 즐겁고 행복하게 맞이하고 싶다.

심지어 ‘이제 갓 마흔을 넘겼으면서, 마흔에 관해 글을 쓴다는 것이 무섭지도 않냐’며 연재를 만류하는 친구도 있었다. 물론 무섭다. 하지만 이 두려운 프로젝트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먼 훗날 노년기에 접어들어 ‘이미 다 지나온 중년’에 대해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글이 아니라, 지금 중년의 문턱에 접어들면서 생생하게 느낀 싱그러운 감정과 에피소드를 ‘바로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미 아는 것을 정리하고 다듬는 글이 아니라, 매일매일 새로 깨우쳐가는 삶의 진실을 꾸밈없이 생중계하고 싶다. 오래전에 느꼈던 감정을 더듬더듬 찾아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오늘 느낀 것을 여러분께 전달하고 싶다. 그래서 더욱 떨린다. 그래서 더욱 설렌다.

나는 중년을 인생 최고의 전성기로 잡고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모범생 마흔이 되기는 싫다. 가끔은 우울한 감정에 빠져 있고 싶기도 하고, 어울리지 않는 객기도 부려보고 싶고, 아무도 모르는 나만의 실패를 하염없이 곱씹어보고 싶기도 하다. 창조성이나 생산성을 위해 내 소중한 권리, 예컨대 ‘마음대로 망가질 권리’를 포기하긴 싫다. 다만 이제 중년에 가까이 다가왔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에 새롭게 도전하는 삶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바느질하는 중년 남자 

며칠 전에는 ‘중년이 인류의 역사에서 새롭게 발견되고, 동시에 지금도 발명되고 있는 시기’라는 나의 논지에 적극 찬성하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년에 뭔가 새로운 것, 지금까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을 시작한 경험을 고백하는 분도 있었다. 마흔셋에 가죽공예를 시작했다는 S선배는 ‘어느 날 갑자기 바느질하는 남자’가 됨으로써 자신이 새로 태어나는 기분을 느꼈다고 이야기했다. 어릴 때는 방패연도 만들고 썰매도 만들어보았지만, 나이가 들고 나서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 자체와 멀어졌는데, 이제 ‘내 손으로 무언가를, 그것도 세상에 하나뿐인 무언가를 한땀 한땀 만들어간다는 것’의 기쁨을 누려보니, 매너리즘에 빠진 삶을 되돌아보는 여유가 생겼다고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이 직접 만든 지갑이나 가방을 선물하면서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고. 이 이야기를 조용히, 그러나 흥미롭게 듣던, 이제 50대 초반에 접어든 H기자가 갑자기 큰소리로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말 붙이기도 어렵고, 새치름한 인상을 풍기던 그분이 갑자기 얼굴이 환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 가죽이야! 나도 가죽공예를 배워야겠어! 왠지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분위기 그윽하게, 살짝 우울한 침묵을 지키던 그가 어린애처럼 환한 미소로 ‘나도 바느질하는 남자가 될 테야!’라는 굳은 결의를 보였기에.

알고 보니 H기자는 51살에 첫딸을 맞이했다. 이제 갓 돌을 넘긴 딸을 바라보며 그는 얼마나 많은 상념에 잠길까. 그는 고백했다. 딸이 너무 예뻐서 오히려 무섭다고. 남들은 ‘귀여운 딸 좀 자랑해보라’고 부추기지만,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택시를 탔던 에피소드를 전해준다. ‘동대문운동장’이란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옛 이름인 ‘서울운동장’을 이야기했다고. 그랬더니 택시 기사가 이렇게 말했단다. “아유, 선생님. 요새 사람들은 ‘서울운동장’ 모르는데. 서울운동장이라고 하시는 걸 보니, 이제 인생 내려가는 일만 남았네요.” H기자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우울했다고 한다. 나 정말, 내려가는 일만 남은 걸까,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겠는가. 직장에서는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집에서는 어린 딸이 천진난만하게 방긋방긋 웃고, 마음에서는 ‘중년의 위기’라는 단어가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그러다가 갑자기 ‘나도 가죽공예를 배워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그의 표정에는 전에 없던 활기가 피어올랐다. 중년이란 이런 것이구나. ‘내려가야 한다’는 주변의 압박에 괴롭다가도, 뭔가 충분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 어쩌면 예전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활기차게, 무언가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그래, 중년은 노년의 앞 페이지에 살짝 끼워진 부록이 아니다. 어쩌면 가장 지혜롭게 삶을 바꿀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중년이다. 청년처럼 다급하지 않게, 노년처럼 마음과 몸의 거리가 너무 많이 멀어지지 않게. 결코 내려가는 일만 남은 것이 아니다. 사회의 어엿한 구성원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젊은 시절과 달리, 이제 어떤 조직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새롭게 자신을 단련할 수 있는 첫 번째 기회가 열리는 시기다. 높은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기만 하는 시기가 아니라, 우리가 올라온 봉우리의 넓이와 깊이까지 헤아릴 수 있는 시기다. 마음속에서 분명히 들리는 소리를 ‘참, 나이 들어 주책이구나!’라는 식으로 타박하지 말고, 마음이 외치는 대로 따라가보자. 내 방의 공간 배치부터 필요나 습관 때문이 아닌 ‘내가 꿈꾸는 모양’대로 바꿔보고, 혼자만의 여행도 훌쩍 떠나보고, ‘뭔가 내 손으로 만지고, 직접 느낄 수 있는 취미’도 가져보자.

마음의 세포들이 깨어난다

나는 요새 붓글씨를 시작했다. 예전 같으면 눈길도 주지 않았을 취미인데, 붓으로 한자 한자 글을 쓰는 이 순간이 미치게 좋다. 뭔가를 눈에 띄게 잘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마음을 소소하게 다듬고, 내 마음에 차분히 귀 기울이는 시간이 좋아졌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내 방 안에서 잠시 다른 나로 태어날 수 있는 소소한 취미생활을 시작하니, 마음의 세포들이 예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깨어나는 느낌이다. 마흔의 문턱에서, 내 삶은 분명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눈길도 주지 않던 그 무엇이 간절히 그립고, 때로는 미친 듯이 뭔가에 도전하고 싶어진다. 그런 내가 싫지 않다. 그런 마흔이, 무척이나 설레고, 기특하며, 눈부시다.

정여울 작가

2017-06-08T01:52:53+09:00Thu 08 Jun 2017 1:52 AM|

“일독을 권한다”

이왕 시작한거, 듣기 싫어하는 말 하나 더 적어보자.

몇년전부터 SNS, 그중에서도 글자수 제한이 있는 트위터가 유행하면서
링크를 걸어놓고 “일독을 권한다”는 말이 많아졌다.

무책임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정말 듣고 보기 싫어하는 말 중 하나다.

남보고 시간을 내어 전문을 다 읽어보라고 말하기에 앞서
“일독”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어떤 내용이라고 요약하고 자신의 생각을 덧붙일 정도는 되어야하지않을까?

2017-06-08T12:21:02+09:00Thu 08 Jun 2017 1:45 AM|

헛소리

내가 더위와 추위를 잘 참고 나름의 인내심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래의 발언은 나에겐 bullshit 이라고 밖에 안들리고 참기가 어렵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25&aid=0002723788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7일 기자들과 만나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는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며 “사드가 지금 당장 정말 시급하게 설치돼야할만한지, 법적인 투명성과 절차를 생략하면서까지 (설치로) 가야되느냐에 대해선 의문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7-06-08T01:14:50+09:00Thu 08 Jun 2017 1:14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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