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

2017년 12월 도쿄 & 방콕

2018. 1. 2. 1am 방콕 돈무앙 공항 라운지에서 쓴다.

벌써 작년, 지난달이 되어버렸구나.
2017년 12월은 도쿄에서 10일, 방콕에서 나머지 22일가량 있었다.

도쿄에서 예기치않은 10일은 꽤 평온하면서도 외롭게 보냈다.
물론 서울에서 온 지인과 도쿄에 사는 일본인 친구 Tomo를 만나는 반가움도 있었고
한번도 가보지않았던 곳들을 다녀보고 일본 현지사람들 사이에 끼어 인디밴드 공연을 보는 등
소소한 즐거움은 있었지만..
결국 그 커다란 고독한 도시에 나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는 않았다.

방콕에서는 이런 저런 분석을 했다.
주인의식이 생겨서인지 농땡이(!)도 덜 피우고
스스로를 채찍질하여 분석에 있어 진전이 있었다.
인터넷 전화까지 가지고 나온 덕택에 한국과의 전화도 원활하게 할 수 있었다.

보통은 한국 들어가기 전 이 시간 즈음이면
기분이 아주 좋아야 정상인데,
지금은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앞으로도 넘어야할 산들이 여럿 보여서…

자신이 없다기 보다는
방법은 있는데 터프해보일 뿐이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려 한다.
마냥 걱정하는 것보다는 부딪혀보고 헤쳐나가는데에서 또 나름의 재미가 있는 것이 인생 아니던가?

2018-01-02T03:03:02+09:00Tue 02 Jan 2018 3:03 AM|

태연 – Fine

발표한지 1년 다 되어가는 태연의 “Fine”이라는 곡이다.
듣자마자 이건 한국 사람이 작곡하지않았겠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작곡은 외국인들이 했다.

노래를 들으면서 아이돌가수들중에서 노래를 가장 잘한다는 태연의 가창력은 확인할 수 있지만,
눈을 감고 잘 들어보면 “영혼”이 없다.

박자와 음정에 맞춰 예쁘게 것은 좋지만
딱 거기 까지다.

본인이 가사에 공감을 하고 그에 몰입하여 부른 느낌이 없다.

그래서 노래가 공허하다.
본인이 그런 경험이나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2018-01-01T18:25:24+09:00Mon 01 Jan 2018 6:24 PM|

2018 Countdown

살다살다 방콕에서 연말을 맞이하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못했다.

Siam의 Centralworld에서 동남아에서 가장 큰 countdown행사가 있다고 해서 가보았다.

우리나라로 치면 코엑스 앞 도로를 막고 차려진 무대에
사람들이 모여 카운트다운 후 불꽃놀이를 하는데
(동남아시아 최대라는 홍보문구를 고려할 때) 대단하다 생각되는 모습은 없었지만 나름 흥미로웠다.

2017년은 혼돈의 시기였다.
1년중 절반을 외국에서 보냈는데,
1년중 4개월은 태국에서 머물렀고 1개월은 뉴욕/쿠바, 1개월은 아이슬란드였다.

내년에도 최소 3달은 태국에서 보내게 된다.

태국어이기에 가사도 들리지않는 가수 공연을 보며 countdown을 기다리다가
2018년 계획도 생각해보았는데
다른 어느 해 보다도 명확하다.

2018-01-01T13:58:05+09:00Mon 01 Jan 2018 1:58 PM|

World’s most expensive cities

서울이 2016년 15위에서 2017년 6위까지 점프했다.

이에 대한 대통령이나 서울시장의 생각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뭔가 잘못 되었다.

기사 출처는 Bloomberg

2018-01-01T13:47:22+09:00Mon 01 Jan 2018 1:44 PM|

싸이버리아 PC방 직원 정재현씨

전국노래자랑에서 전설적인 참가자중 꼭 꼽히는 사람이라고 한다.

싸이버리아 PC방 직원 27세 정재현씨 (지금은 38세일 것 같다)

유튜브에서 이 사람이 부른 동영상은 250만 뷰를 넘었다.

그 부르기 어려운 박완규의 “천년의 사랑”을
박완규의 전성기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이 사람보다 잘 부른 사람이 없다 싶을 정도로 잘 불렀다.

이날 우승해서 100만원 상품권을 받은 후
연말 결선 대회에서 또 불렀는데, 그때는 “취업준비생”으로 표시되었다 (그새 PC방은 그만 두었나보다)
이 때는 장려상을 받았다.

사람들은 “인민 락커”라고 부르는데
수십번을 들어보지만 애잔하다.
이렇게 훌륭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살리지 못하다니.

2017-12-31T15:08:25+09:00Sun 31 Dec 2017 3:00 PM|

2017년 마지막 날

이리저리 정신없이 지내다

어느덧 2017년 마지막 날을 맞이해버렸다.

오늘은 일도 일이지만
한 해를 마무리하는 것으로
그리고 내년 계획 (목표)를 설정하는데에 시간을 보낼 생각이다.

2017-12-31T02:27:00+09:00Sun 31 Dec 2017 2:27 AM|

Nike’s research lab

NYTimes에서 올해 FaceBook에 공개한 동영상중 조회수가 가장 높은 것 중 하나라는데
Nike의 research lab에서 농구화를 디자인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담았다.

막연한 생각보다 훨씬 많은 것들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 놀라웠다.

2017-12-30T19:24:15+09:00Sat 30 Dec 2017 7:24 PM|

Warren Buffett on Bitcoin

2014년에 인터뷰에서 한 말이라는데
역시 이 할아버지의 통찰력은 대단하다.

“You can’t value bitcoin because it’s not a value-producing asset,”

“Stay away from it. It’s a mirage basically. It’s a method of transmitting money. It’s a very effective way of transmitting money and you can do it anonymously and all that. A check is a way of transmitting money too. Are checks worth a whole lot of money? Just because they can transmit money?”

2017-12-30T14:03:19+09:00Sat 30 Dec 2017 2:03 PM|

Peace

“If you cannot find peace within yourself, you will never find it anywhere else.”
Marvin Gaye

(마음의) 평화는 먼 곳에 있지 않다.
지당하신 말씀…

2017-12-29T17:16:33+09:00Fri 29 Dec 2017 5:16 PM|

다음에 만나자

편지를 보자마자
가슴이 먹먹했다.

계실 때 잘하자.


광주에 사는 한 70대 노모가 3남1녀 자식들에게 남긴 가슴 저미는 유서가 엄동 속에 주위를 숙연케하고 있다.

난소암으로 1년 가량 투병하다 이달 중순 생을 등진 나모(78)씨. 나씨는 암말기 진단을 받고 결국 호스피스 병원으로 옮길 때 즈음, 피붙이 몰래 짧막한 유서를 작성했다.

단 14줄. 그러나 노모의 자식사랑은 그 어떤 것보다도 애틋하고 숙연했고, 유서가 공개된 장례식장은 눈물바다로 변했다.

“자네들이 내 자식이었음이 고마웠다. 자네들이 나를 돌보아줌이 고마웠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노모는 장성한 자식들의 갓난 아이 적을 추억했다.

“자네들이 세상에 태어나 나를 ‘어미’라 불러주고, 젖 물려 배부르면 나를 바라본 눈길에 참 행복했다네…” 그러면서 “병들어 하느님 부르실 때, 곱게 갈 수 있게 곁에 있어줘서 참말로 고맙네.”라며 연신 자식들에게 고마워했다.

나씨는 40대 초반, 시청 공무원이던 남편을 암으로 먼저 떠나보낸 뒤 35년 간 수절하며 소천하는 그날까지 자식들만을 바라보며 살아왔다.

유서에서도 “지아비 잃어 세상 무너져, 험한 세상 속을 버틸 수 있게 해줌도 자네들이었네”라고 또 다시 자식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자네들이 있어서 잘 살았고, 자네들이 있어서 열심히 살았네”라는 말도 남겼다.

그런 다음, 노모는 맏딸과 세 아들을 일일이 호명하며, 등을 두드리듯 위로했다.

“딸 아이야, 맏며느리, 맏딸 노릇 버거웠지? 큰 애야, 맏이노릇 하느라 힘들었지? 둘째야, 일찍 어미곁 떠나 홀로 서느라 힘들었지? 막내야, 어미젖이 시원치 않음에도 공부하느라 힘들었지?”

노모는 출산의 기쁨과 사별의 아픔, 자식 위로로 마지막 글을 남긴 뒤 ‘고맙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자. 2017년 12월 엄마가’라며 글을 맺었다.

지난 19일 치러진 장례식에 참석한 한 지인은 “자녀들이 유서를 읽는 동안, 여기저기서 흐느끼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어머니의 한없이 자식사랑, 희생적인 삶에 가슴이 미어졌다”고 전했다.

고씨는 장례식 후 함평군 대동면 선산에, 먼저 떠난 남편의 묘소 옆에서 영면했다.

2017-12-28T12:53:11+09:00Thu 28 Dec 2017 12:5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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