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기념 글꼴
네이버에서
2019년 한글날 기념하여 손글씨 폰트를 배포하였는데
종류가 무려 109개이다.
92세 외할머니의 글씨체부터
초등학교 1학년인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
무서운 인상이 고민이라는 사람이 쓴 예쁜 글씨 등등
참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네이버에서
2019년 한글날 기념하여 손글씨 폰트를 배포하였는데
종류가 무려 109개이다.
92세 외할머니의 글씨체부터
초등학교 1학년인 다문화 가정의 어린이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
무서운 인상이 고민이라는 사람이 쓴 예쁜 글씨 등등
참 좋은 시도라는 생각이 든다.
부산에서 머리를 주로 자르는데
초반에는 저렴한 로컬 헤어샵을 다녔는데
하나같이 실력/결과물이 형편없고
내 머리를 자르기전에 ‘손님 머리는 자르기 어려운거에요’라고 말하고 시작해서
(도대체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부산 특성인가)
도저히 안되겠다싶어서 할 수 없이
서울에서도 다니던 비싼 준오헤어를 가고 있는데
별 말 없이 알아서 확연한 차이가 날 정도로 잘 자른다.
그런데 몇달전부터 머리를 자르면
2,000원 상품권을 준다. 2만원 이상 지불하면 준다고 하는 것 같은데
기억을 떠올려봐도 예전에는 그런게 없었다.
왜 일까 생각해보니
여기도 결국 불경기에 몸부림치는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이 2,000원 상품권을 주어서
다음에 다시 오게 하려고.
그 콧대높은 준오헤어도 이런 프로모션을 하는구나 싶어서
잠시 마음이 무거웠다.
어느 커뮤니티에 올라온 편의점 사장의 글인데,
“가난은 인간을 낡게 한다”
“가난한 사람 대부분은 이미 몸과 정신 역시 어느정도는 가난에 의해 ‘낡아’진 상태라고 보는게 타당하다”
는 주장은 약간 과격하다 느끼다가도, 막상 부인하기 어렵게 한다.
나는 낡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지.
다시 다짐을 해본다.
자영업자가 본 고용시장에서의 가난요인
https://pgr21.com/freedom/82712
저는 편의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족끼리 하는 부업이긴 하지만요. 주업으로는 회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현재 가진 자산은 없지만 젊은 나이 + 노동소득이 가져오는 기대소득을 포함하면 극빈층에 떨어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적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부자는 못 되겠지만 애슐리는 가겠죠. 잘 하면 빕스도 가고.
편의점을 시작하고 나서 사람을 뽑아 쓰면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리고 때로는 가난이 그들의 책임이라는 생각이 드는 사람도 많이 보지요. 일하면서 하는건 오로지 불법 토토 사이트라거나, 조금의 성실성도 없는 사람이라거나, 업무지시를 거의 기억하지 않는(못하는건지 않는건지) 사람이라거나, 허구한날 지각하고 결근하고 손님이랑 싸우고.. 지금의 상황에서 조금의 장래성도 기대하기 힘든 사람들. 심지어 돈을 빼돌리거나 소소한 절도를 저지르는 사람들도 써 보고, 그 사람들이 술과 담배값에 얼마 안되는 벌이를 (최저시금+주휴수당 주고 주 40시간 조금 넘게 일하면 그래도 150은 넘깁니다만) 탕진하는 것도 많이 봅니다. 모바일 게임에 월급 받아서 쏟아 부으면서 고시원 사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반대로 얘는 가난을 이겨내겠다, 혹은 앞으로 뭘 해도 열심히 하겠다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그치만 제 경험상, 이런 일자리에 오는 사람들 중에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정말 소수입니다. 제 생각에 몸과 정신이 건강하다는건 질병이나 보험에 대한 비용부담이 거의 없고, 적당히 식단관리가 되지 않은 인스턴트 음식들과 저가의 탄수화물 중심의 식사를 해도 아직 몸이 탈이 안나고, 일 8~9시간의 노동을 건강한 마음 상태로 ‘성실히’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정말 드뭅니다. 설령 그렇게 건강한 사람이 하루만, 일주일만, 한달만, 세달만, 반년, 일년은 유지될 지언정 기간이 지날수록 가장 건강하던 사람도 조금씩 ‘닳아’갑니다. 게다가, 몸과 정신이 건강한 사람은 애시당초 최저임금 주변의 일자리에 잘 나타나지 않습니다. 10대후반 20대 초중반의 아르바이트 생들을 제외하고, 생업으로 이 일을 하려는 사람중엔 더더욱이요.
문제는 한가지 더 있습니다. 몸과 정신이 좋은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어떤 사회적 / 개인적 요인에 의해 성장과정에 있어서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그것은 교육사회와 가정의 무관심이나 폭력, 방치, 가난, 혹은 개인적 일탈 등 아주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사실 스스로 건강함을 자신하는 사람들조차 이런 성장과정에서 한두가지의 아주 예민하고 비정상적인 감정이나 트리거는 갖게 마련이죠. 그것은 폭력성일수도 있고 우울함일수도 있고 이상성욕일수도 있고 폭식이나 나태일수도 있고 과소비나 도박, 중독일수도 있습니다. 어느쪽이든 사람마다 대부분 약간의 비정상성은 갖고있다는 거죠. 그래서 가난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보다도 더욱 더 물질적 빚 만큼이나 몸과 정신이 좋은 상태이기 어렵습니다. 정확히는, 가난한 사람 대부분은 이미 몸과 정신 역시 어느정도는 가난에 의해 ‘낡아’진 상태라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유머게시판의 ‘몸 정신 말짱한데 왜 가난하냐’는 명제가 처음부터 틀린 이유겠죠. 지금처럼 빠른 변화와 고도화된 사회에서는 역설적으로, 몸 정신이 말짱해도 경쟁에서 이기기 쉽지 않은데 멀쩡한 몸 정신마저 낡게 하는것이야 말로 가난의 무서움이니까요.
게다가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대부분의 영세 사업자들이 그러하겠지만, 30대를 훌쩍 넘은 사람들을 잘 쓰지 않습니다. 30대 중반을 넘어가기 시작하면, 이전의 이력을 ‘고작 편의점이라도’ 한번쯤 확인하기 마련입니다. 누군가에겐 고작 편의점이지만 업주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성실하고 똑똑한 사람을 뽑고 싶으니까요. 사실 편의점 일이라는게 생각보다 복잡한 부분도 있습니다. 최신 전산시스템의 다양한 기능들을 활용해야하고, 주, 월마다 바뀌는 행사를 숙지해야하고, 상품의 위치와 유통기한을 살펴야하고, 다양한 결제수단을 고려해야해요. 이런것들은 교육수준이 낮거나 나이든 분들이 습득하기 좀 어려워 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러니 같은 가격이면 가장 리뷰가 좋고 제품설명과 보증이 확실한, 디자인이 예쁜 상품을 고르는 것처럼 편의점 직원 마저 어느정도의 기준을 갖고 사람을 뽑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30대 중반을 넘어가기 전에 가난에 의해 이 일 저 일 이것저것 하다가 이렇다 할 숙련도도, 경력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그것은 개인의 성실함 문제일수도있고 환경의 문제일수도 있지만) 이런 저임금 시장에서조차 굉장히 빠르게 도태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가게 되는 곳은 보험판매원, 경비용역, 주차용역, 미화용역, 건설용역, 주방보조, 방문판매원 등입니다. 늘 사람이 필요하고 항상 저임금일자리를 제공하는 곳들이죠. 문제는 이런 직업일수록 육체적 정신적 노화를 가속화시키고 건강을 빠르게 해친다는 점입니다. 숙련과 동시에 몸은 깎여나가기 시작하고, 임금 상승폭은 무척 낮습니다. 심지어 고용 불안정성은 높고, 미래는 아무리 아끼고 저축을 해도 깜깜합니다. 일자리가 없어지지 않는 것, 그리고 내 몸이 어떤 고통이 있더라도 버텨주는 것. 이러한 모순된 막연한 기대속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허나 30대 후반에서 40대를 넘어갔는데 변변찮은 기술도 이력도 없다면 이런 직종조차 구하기가 어려워집니다. 행여나 그동안 가난에 의해 몸이 상했다면, 정말로 ‘법이 보호하지 않는’ 일자리조차 감지덕지하게 됩니다. 이마저도 모자라 잔고와 빚에 허덕이기 시작하면, 지엄한 법률은 종이쪼가리만도 못합니다. 그 때부터는 빈곤이 빈곤을 불러온다는 말과, 삶이 죽음보다 무겁다는 것이 무엇인지 뼈저리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이 늘 불운과 불행으로만 가득하진 않을겁니다. 대한민국은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 중 하나로, 저런 저임금 노동조차도 운과 성실성이 바탕이되면 어느정도의 생활수준을 구사할 수 있게 만들어주지요. 위에서 언급한 직업군에 들어서서 꾸준히 일을 하고, 어찌어찌 가난한 사람끼리라도 만나 가정을 이루고, 아등바등 열심히 살면 월세가 전세되기도 하고, 반지하가 1층으로, 2층으로 가기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될 때 즈음, 그 동안 전혀 호사와 여유를 부리지 못한 사람들이 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하면, 단 한 순간에 그동안 쌓아온 빈곤과의 벽이 허물어집니다. 빈곤은 마치 얇은 문풍지로 바람을 막아왔던 것처럼 세차게 들이치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낡게 하지 않는 노동이 없다지만, 특히나 저임금 고위험일자리들은 더 빠른 속도로 사람을 마모시키고, 그렇게 빠르게 낡아가는 사람들을 빈곤은 마구 잡아먹습니다.
이런 사회의 모습을 보며 어떤 사람들은 그럼 공무원 시험이라도 죽어라 했어야지, 라거나. 경력을 쌓았어야지. 뭘 배웠어야지. 라고 쉽게 말합니다. 그러나 제가 최저임금 일자리를 도는 20대부터 60대 사이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을 배우고, 익히고, 노력하는것 조차 개인의 재능과 사회적 요건 없이는 발휘하기 무척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명백한 희망과 노력에 대한 긍정적인 피드백이 있는가, 당장 가난과 노동에 의해 스스로의 선택을 강요당하지 않는가, 날로 피곤해지고 힘들어지는 신체를 의지로 끌어당길 수 있는가. 이 과정 모두에서 그 개인의 열정, 의지, 노력등으로 이야기되는 정신적 요소들은 그가 가진 ‘배우고 익히는 데’ 필요한 재능과 신체적 건강, 적절한 영양등이 받쳐주는지에 따라 결과가 극적으로 달라집니다. 같은 시간을 살고 비슷하게 나이를 먹어도 어떤이에게는 판타지 소설조차 잘 이해가 안가서 이세계 깽판물 아니면 안본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사람은 원어로 된 논문을 손쉽게 읽어냅니다. 그 극단적 차이에서 사람의 지능이나 노력으로 행하는 행동들이 그 사람의 성장과정과 환경속에서 대부분 만들어져 온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가난했던 사람중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은 적어도 무언가는 ‘타고 나’ 있어야 합니다. 조금은 머리가 영민하다거나, 조금은 끈기가 있다거나, 조금은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라거나.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가난은 아주 빠르게 풍화시킬 수 있습니다. 게다가 풍화의 속도만큼이나 우리는 빠르게 나이를 먹지요. 이 모든 노력이 무용해지는 나이가 정말 금세 찾아옵니다.
제 생각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처지에서 타인의 빈곤을 상상할 수 없는 것은 그것이 절대적으로 빈곤하다는 것을 모른다기 보다, 우리가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시도하고 유지하는 당연한 것들이 남들에게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정말 상상 이상으로 사람간에 많은 능력 차이를 보입니다. 행동능력, 지능, 판단력, 외모, 체력.. 가난하지 않다는 것은 이 부족한 것들을 부담없이 채워나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이것을 타고나더라도 채우긴 커녕 있는 것을 깎아 써서라도 살아남아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마저도 빠르게 대처하지 않으면, 30대, 40대가 되어서는 정말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으로 추락합니다. 아무도, 당신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하지 않아한다면, 빈곤을 벗어날 시도조차 불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저는 이게 어떻게 해소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최저임금의 상승을 찬성하지만(돈주기 개빡셉니다 저는 시급으로 치면 5천원쯤 벌겁니다) 이 혜택을 많이 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현재 정말로 노동시장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다수인건 아닐수도 있습니다. 차라리 정말로 기초소득같은걸 주는게 절대빈곤에서 구제할 방법일수도 있지요. 노동시장에서는 빈곤에 오래 노출된 사람들이 더욱 더 빈곤해지기 딱 좋습니다. 그래서 ‘몸과 정신이 멀쩡한데’ 가난한 사람이 있겠냐, 애슐리 못가는게 말이 되냐는 말은 전제부터 틀렸습니다. 가난한테 몸과 정신이 온전히 말짱하긴 어렵습니다. 긴 시간 그렇게 유지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애슐리를 한 번 가자는 마음가짐을 먹기 전에, 몸과 정신이 깎여나가거나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거나. 정말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삶을 ‘버티고’있습니다. 저 역시, 얇은 문풍지로 막아놓은 빈곤의 바람을 앞에두고 문풍지가 찢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필사적일 뿐입니다.
이 명절에도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 가족들 얼굴을 못 보고, 인스턴트 음식을 먹으며 일하는 노동자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명절에, 그 일자리조차 없어서 한 숨을 안주삼아 소주 한 잔에 의탁하는 사람들은 더 많습니다. 그 소주 한 병을 살 돈이 아까워서, 늙은 몸뚱이를 방바닥에 눕힌 채 홀로 추석이 아닌 9월 13일을 보내는 사람도 더러 있습니다. 한국의 빈부격차는 세계에서 무척 높은 수준이며, 한국의 청년실업률 역시 상당히 높고, 한국의 노인빈곤률 역시 세계 최고수준이며, 자살인구 역시 세계 최고 수준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서 노력할 수 있는 사람이란, 우리가 바라보는 것 보다 훨씬 적을지도 모릅니다. 노력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있는 것은, 아마 노력할 수 있는 사람만이 우리 주변에서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지요. 이미 도태되어 가는 사람들은, 도시의 변두리로 숨고, 소리도, 냄새도 지워집니다. 그 지워져 가는 곳에도 사람이 있습니다.
조수용씨라면
예전에 네이버 그만두고 나와서
일호식 이라는 밥집을 차렸을 때 가보았던 기억이 난다.
말 그대로 백반집이었는데
비싸기만 하고 맛도 별로라서
뭐 이런게 다 있냐 하고 떠났던 기억이 있다.
즉, 외부의 이미지만 그럴싸하게 포장했지
실질은 형편없는.
인터뷰를 읽어보니
신선하고 배울 점이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나같이 작은 사업을 시작한 사람에게도
시사점이 많은 그런 인터뷰였다.
실제로 카카오가 그렇게 가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겠으나.
“선한 직원이 안전하다고 느끼는 게 중요…자율이 헌신 부른다” 조수용
입력 2019.10.05 07:00 | 수정 2019.10.05 11:00
카카오 대표 조수용 “선한 직원과 골칫덩이? 딱 보면 알아”
“누가 승진하고 떠나는가가 조직 문화의 전부”
“여민수와 닮아… 숫자보다 우정이 더 중요, 사심 없어.”
“카카오는 공기업 수준의 미션… 혁신 기회, 사명감 높아”
“믿어주는 사람 있었기에 능력 폭발… 똘끼로 버텼다”
“브랜드의 핵심은 빼기… 명상과 요가로 자기객관화 훈련”
조수용을 처음 만난 건 2016년 가을, 디자인 총괄 부사장으로 카카오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였다. 당시 나는 호텔, 잡지, 식당, 가방, 부동산 개발 등 손을 대는 것마다 히트시키는 그의 감각에 강한 호기심을 느꼈다. 애초에 크리에이티브 집단 JOH의 대표로 조수용을 조명하고자 했으나, 시기상 카카오를 향한 그의 계획과 그림까지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2003년부터 창립 멤버로 네이버 최연소 임원이었던 그는 2010년 한창 잘 나갈 때 사옥을 짓고 나왔다. 이후 지독하게 아날로그적인 자기 사업에 집중했다.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B’나 영종도의 네스트호텔 등은, 그가 네이버 시절에 만든 초록 검색창이나 사옥 그린팩토리만큼이나 ‘조수용’이라는 이름에 가치를 더했다.
왜 조수용이 손을 대면, 온라인 세상도 오프라인 세상에도 새길이 생기는 걸까. 아날로그의 최고 시민권자이자 동시에 디지털의 권력자인 조수용. 양 대륙에 다리를 걸치고도, 버거운 기색이 전혀 없는 그는 확신에 차서 말했다.
우리는 몇 세기 만에 한번 올까 말까 한 놀라운 혁신과 기회의 시대를 살고 있다고. 기술의 힘으로, 리얼 월드의 삶을 건강하게 바꿀 수 있다고.
“IT기술과 네트워크의 힘이 진짜 사람의 삶을 바꿔야 하는 거잖아요. ‘진짜 세상에서의 삶은 폐인인데, IT에서만 풍족하다’ 그러면 그 패러다임은 끝난 거예요. ‘진짜로 건강하게 살고 있나? 진짜 삶이 편해졌나? 그래서 행복하고 즐거운가?’ 이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완성이 되는 거죠.”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카카오 공동대표 2년 차를 맞은 조수용은 그가 말했던 당시의 ‘밑그림’을 정확하게 실현하고 있었다. 신대륙을 정비하듯 플랫폼과 콘텐츠 투 트랙으로 디지털시티의 교통정리를 끝냈고, 온라인의 끝에 맞닿은 실제 세상과의 협업도 나날이 늘고 있다.
두 세계의 끝을 경험했던 조수용의 삶이 비로소 화사하게 정리되는 것처럼 보였다. 조수용을 만났다. 명상과 요가로 단련된 디지털밸리의 리더는 외모도 말투도 군더더기 없이 말끔했다.
-엘리베이터도 직원들과 함께 줄 서서 타더군요.
“네. 저도 김범수 의장도 다 한 줄로 서서 타요.”
-보통은 CEO 전용 엘리베이터가 있거나 그 앞에서 직원들이 홍해처럼 갈라지는데요.
“전용은 있을 리가 없고요(웃음). 제 방도 얼마 전에 만들었어요. 그전까진 누구나 예약해서 쓰는 회의실을 예약해서 사용했고요.”
-여기선 주로 무슨 일을 합니까?
“이야기를 합니다.”
-하루종일 어떤 이야기를 하지요?
“경영이라는 건 여럿이 같은 일을 이뤄가는 거예요. 공감이 가장 중요해요. 동료, 파트너들에게 ‘이 일이 맞다’라고 느끼도록 서로를 설득하는 거죠. 어떤 상황을 나와 비슷하게 느끼도록, 시야의 각도가 비슷해지도록… 자발적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정말 많은 대화를 합니다(웃음).”
-‘신뢰, 충돌, 헌신’이라는 카카오의 사훈이 참 좋더군요. 신뢰에 기반해 충분히 논쟁하고 부딪히며 나온 결론에 대해 모두가 한 방향으로 헌신하자는 뜻이라고요.
“네. 그런데 사훈은 아니고 핵심 가치예요. 김범수 의장이 가장 경계하는 게 자율성을 해치는 거예요. 카카오톡 개편도 다 알아서 하라고 맡겨두는데, 문화가 경직되는 조짐이 보이면 바로 뭐라고 하세요. 자율성이 없으면 카카오의 분방한 문화를 지킬 수 없어요.”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라는 책을 쓴 대니얼 코일을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가 말한 구글과 픽사의 기업 문화가 연상됐습니다. 창의성은 어떤 말이든 나눌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에서 나온다는 거죠.
“동의해요. 물론 통제가 안 되고 제멋대로인 사람도 있겠죠. 어찌 보면 회사가 수직계통이 확실해야 빨리 전진할 수 있는 거 아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자율적으로 결정하면 헌신도가 높아져요. 100% 동의가 안 돼도 미련이 안 남죠. 저도 제가 반대한 결정에 미련 없이 따릅니다.”
-직원들이 카카오를 안전하고 계층이 없다고 느낄 거라고 확신하나요?
“천차만별이겠죠(웃음). 저는 수천 명의 직원, 노조까지 있는 대기업을 경영하고 있어요. 다만 중심은 확실해요. 우리 인재상은 유능하고 열정 있고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에요. 저는 ‘좋은 친구들’이 안전하고 계층이 없다고 느끼는 게 중요해요. 그걸 전체 직원으로 확장하진 않아요. 우리가 고마워하는 친구들이 우선이지요.”
-중요한 포인트네요.
“조직에는 좋은 정책을 악용하는 골칫덩이도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저는 선량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을 기준으로 정책을 펼쳐요. 스스로 룰을 정하는 자율 근무제도 그렇게 나왔고요.”
카카오 직원들은 근무 시간표를 직접 짠다.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 한 달 동안 160시간만 일하면 된다. 오늘 12시간 근무하고, 내일 1시간만 일해도 된다. 출퇴근 시간도 따로 없다. 개인의 자율이 극대화된 시스템이다. 만약 고의로 자율시스템을 악용하면? 해고에 가까운 중징계가 기다린다.
-선량한 직원과 골칫덩이 직원을 어떻게 구분하나요?
“저는 보면 딱 알아요(웃음). 회사의 오너가 누구를 CEO로 선임하는가가 그 기업의 컬처잖아요. 그 컬처가 팀장과 리더를 선임하는 방식으로 내려오죠. 능력, 열정, 커뮤니케이션 능력 등 꼼꼼하게 평가하는 시스템은 설계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이미 직감적으로 알죠.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알아보거든요. 그래서 누가 승진하고 누가 회사를 떠나는가가 기업 문화의 전부예요.”
-누가 남고 떠나는가가 기업 문화의 전부다…핵심이군요.
“네. 그래서 지금 저와 여민수 대표, 우리 성향에 근접한 사람들이 힘을 내고 있겠지요(웃음).”
-그렇다면 조수용과 여민수는 어떤 성향의 사람들입니까?
“하하. 일단 우린 서로를 너무 잘 알죠. 네이버 시절, 같이 일을 했으니까요. 여대표는 광고 영업을 하던 분이고 저는 디자인 브랜드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 사실은 둘이 한 편이 되기 힘들어요. 광고에서 돈 벌려는 순간 제품의 모습이 일그러지기 쉽고, 제품을 너무 고고하게 하면 수익이 떨어져요. 어쩔 수 없이 서로 경멸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우린 친했어요(웃음). 저는 그런 사람 중에서 비즈니스적이었고, 여대표는 감각적이었죠. 저희는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카카오의 새로운 캐릭터 니니즈. 세련되기보다는 약간의 ‘병맛’이 있는 정감 있는 친구가 콘셉트다.
카카오의 새로운 캐릭터 니니즈. 세련되기보다는 약간의 ‘병맛’이 있는 정감 있는 친구가 콘셉트다.
-또 어떤 면이 비슷하죠?
“의외로 인간적이에요. 하하. 숫자를 쫓지만 숫자보다 의리나 우정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너무 진지하기보다는 재밌는 걸 좋아하죠. 일에 너무 목매달지도 않고요. 가장 비슷한 건 사심이 없다는 거예요.”
-사심이 없다?
“의사결정 상황에서 개인의 욕망을 앞세우지 않아요. 사심을 빼면 의견을 내는 데 자유롭죠. 계열사가 많은 카카오식 경영에서 어느 한 회사가 ‘나의 이익’만 추구하려는 순간, 공동체엔 균열이 일어나요. 이때 누군가는 손해를 감수해야죠. 이해관계의 수식에서 가장 먼저 ‘나를 빼면’ 사안은 심플해져요.”
-3년 전 카카오 부사장으로 옮기기 직전 인터뷰에서 제게 말했던 카카오의 밑그림이 착착 현실화하고 있더군요. 예컨대 플랫폼과 콘텐츠로 트랙을 나누는 것이나 글로벌로 가겠다는 것이나, 이미 그때 나온 큰 그림이었어요. 마치 CEO가 될 걸 예상이라도 했듯이(웃음).
“절대 아니고요(웃음). 당시에 김범수 의장이 ‘네가 도와줘야겠다’고 했을 때, 이미 밖에서 했던 생각이었어요. 저는 사업을 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브랜드적인 생각의 정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컨설팅을 맡겨도 최우선으로 듣는 게 기업의 정체성이잖아요.”
-카카오의 정체성은 무엇이지요?
“첫째는 오리진이고, 둘째는 사회적 임무예요. 최초에 모바일 세상이 열렸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의 고민이 메신저로 나왔어요. 카카오톡이죠. 그런데 지금은 카카오톡이 전 국민이 쓰는 소통 수단이 되면서 거의 공기업 수준의 미션을 요구받고 있어요(웃음).
예컨대 카카오뱅크처럼, 국가적으로 혁신해줬으면 하는 일상의 바람이 저희 안으로 들어오고 있죠. 그래서 저는 카카오라는 정체성을 원래 있던 사업에서 얼마나 혁신이 일어났는가로 판단해요. 은행이나 택시 호출은 원래 있었던 거지만 그걸 어떻게 바꿨는지. 거기에 혁신의 유전자가 있는지 없는 지로 카카오라는 이름을 붙이는 거죠.”
-비단 은행이나 택시 호출뿐 아니라 사이버 세계에 길들여진 우리가 IT 경험으로 부동산, 제조업 등 이전 세대의 하드웨어 사업을 재해석하면서 폐쇄적인 사업 경계가 무너지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런 역동적인 시대의 최전선을 살고 있어요.
“행운이죠. 역사상 두 번 다시 오기 힘든 기회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카카오는 상속으로 넘어온 대기업이 아니잖아요. 다들 젊고 혁신을 이룰 수 있을 만큼 지분구조도 탄탄해요. 시장 기반은 메신저지만 자본과 사람과 전 국민의 삶에 다가갈 수 있는 힘을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뭘 하든 제대로 하자는 사명이 곧 정체성이 되는 거죠.”
-모델이 있습니까?
“없어요. 사실상 시장에서 이런 모델이 불가능해요(웃음).”
-왜죠?
“플랫폼 사업은 유통업이에요. 무엇이든 다 품어야 해요. 반면 콘텐츠 사업은 그 콘텐츠를 어디든 거침없이 내보내야죠. 한 회사가 두 가지를 같이 하면 사실상 충돌이 생겨요. 넷플릭스도 플랫폼 기반이지만, 자기가 만든 콘텐츠는 독점해서 다른 데 안 줘요. 내가 나를 가두는 거죠. 저희도 음악 플랫폼이 경쟁력이 있는데, 우리가 만든 아이유 음원을 외부에도 공급해야 하나? 이런 딜레마에 부딪히죠.
그런데 저희는 과감히 분리해서 가기로 했어요. 경쟁사에도 저희 콘텐츠를 풀고 경쟁사의 콘텐츠도 품는 거죠. 콘텐츠 전략은 카카오페이지, 카카오M, 카카오게임즈로 짜고 플랫폼 전략은 (주)카카오, 멜론, 카카오페이지도 포함해서 투 트랙으로 가요. 논리적으로는 안 맞아요. 하지만 이렇게 파이를 키우지 않으면 글로벌에 문제가 생겨요. 콘텐츠는 국경을 넘어야 해요.”
-크고 작은 인수합병도 많습니다. 기준이 있나요?
“굵직한 건 오래전에 ‘다음’, 최근엔 ‘멜론’ 정도예요. 인수가 많은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회사 안에서 에너지가 큰 기업을 스핀 오프해서 키운 후 외부 투자를 유치하는 방식이죠.”
-배우 이병헌 씨 소속사인 BH 엔터테인먼트, 숲 엔터테인먼트 등도 카카오가 인수했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돈이 많아서 사들인 게 아니에요. 흩어진 엔터 크리에이터들을 모으는 역할을 한 것뿐이죠. 작은 나라에서 각자 플레이하지 말고 모여서 같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제안이었어요. 카카오M의 주식을 소유하는 방식으로 함께 스크럼을 짠 거죠.”
-기존의 수직구조 방식의 인수합병과는 매우 다르네요.
“머리로는 ‘맞다’고 생각하지만, 많은 분이 실천하지 못했던 걸 저희는 해요(웃음). 무모하다 싶은 일도 과감하고 빠르게. 창업자가 맨몸으로 시작했고, 사심이 없어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조수용이 카카오로 들어오기 전 운영했던 크리에이티브 컨설팅 회사 JOH도 카카오 인베스트먼트를 통해 자회사로 들어왔다. 비슷한 방식의 지분 공유였다.
-큰 회사를 운영하면서 바뀐 생각이 있습니까?
“더 철이 든 것 같아요. 한때 무서울 것 없이 펄떡펄떡 뛰던 때가 있었어요. ‘왜 사람들이 이걸 안 하지?’ 의아해하면서요. 에너지가 엄청났고 거침이 없었고 설치고 다녔고 욕도 먹었죠. 그래서 지금 저 같은 친구를 만나는 데 시간을 쏟아요(웃음). 그런데 또 그때의 나와 지금이 나를 두고 선택하라면 전 지금의 제가 좋아요.”
-충분한 자원이 확보되어서 그런 것 아닐까요?
“부정할 순 없죠. 하지만 그만큼 걸림돌도 많고 책임도 무겁습니다.”
-당신의 힘을 최고로 끌어올리는 결정적인 엔진은 무엇인가요?
“제가 인정하는 사람이 저를 믿어줄 때, 계산이 없어져요. 두려움은 사라지고 불필요하게 머리 쓰지 않고, 오직 맞는 것만 생각해요. 네이버 시절엔 제일 중요한 사람이 이해진 의장이었어요. 당시에도 디자인하던 미술 전공자에게 마케팅 전략 임원을 맡기는 건 파격이었어요. 그런데 이해진 의장이 믿어준 거죠.
그때 썼던 순수한 힘의 느낌이 있어요. 그 힘의 여운으로 나와서 제 사업을 한 거죠.
JOH를 경영할 때도 내가 인정하는 동료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큰 기쁨이 없었어요. 광고 없는 브랜드 잡지 ‘매거진B’도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런데 동료가 “최고다!” 해주면 그게 최고의 보상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에게도 일을 시작할 때 너무 재지 말고 일단 해보라고 해요. 젊을 때 힘을 못 쓰면 영원히 못써요. 한 번이라도 힘을 썼던 경험이 있으면 또 꿈을 꿀 수 있어요.”
조수용에게 브랜드는 곧 정리와 빼기를 의미한다. 고수일수록 무엇을 남기느냐로 캐릭터를 드러낸다./사진=남강호 기자
조수용에게 브랜드는 곧 정리와 빼기를 의미한다. 고수일수록 무엇을 남기느냐로 캐릭터를 드러낸다./사진=남강호 기자
공인이 되는 두려움이 컸던 조수용이 카카오의 CEO를 맡게 된 것도 김범수 의장 때문이라고 했다. “제가 인정하는 김범수 의장이 저를 인정해줬기 때문에 힘을 내서 잘하고 싶어요(웃음).”
-지금 젊은이들에겐 40대 후반의 리더 조수용이 어떻게 다가올까요?
“제가 30대일 때는 제 나이 또래의 40대 후반 아저씨들을 보면 말이 안 통했어요(웃음). 인터넷은 할 줄 아나? 내 말은 알아듣나? 지금의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이지 않을까? 두렵죠. 할아버지들이 종종 ‘다 알아’ 종종 그러시는데, 그런 모습을 경계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억지로 젊은이들과 어울리려고도 안 해요(웃음). 나 스스로가 사실 30대 초반 시절과 다름없이 살고 있거든요. 다만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은 염두에 두죠. 무엇보다 카카오 CEO를 하는 동안은 세대 차이를 떠나 ‘내가 유저가 되는 게’ 핵심이에요.”
-과거엔 잘나가는 디자이너, 브랜드 건축가, 지금은 한국에서 가장 핫한 스타 CEO… 왜 당신이 하면 다 주목받고 잘 풀리는 걸까요?
“저는 일을 할 때 사명감을 가장 앞에 세우는데, 그걸 비즈니스로 잘 풀었던 것 같아요. 과거 프리챌에서 일할 때도 디자인 파트장이면 그냥 예쁘게 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저는 회사가 돈 버는 데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물이 인터넷 홈페이지 최초의 배너 광고예요. 전 세계 어떤 포털에도 그런 광고 형태가 없었어요(웃음).
중요한 건 매번 그런 파격적인 저의 제안을 조직의 최고 경영자가 받아줬어요. “오버하지 말라”고 누르지 않고 “이 친구가 말한 걸 의사결정에 반영하겠다”는 거죠. 생각이 트인 CEO들이 혁신을 만들어요. 네이버 초록 검색창이나 네스트호텔, D타워 설계도 다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들이고요.”
-실패 경험은 없나요?
“많아요. 매거진B도 수익이 좋지 않았지만, 버텨낸 힘이 크고요. 가방도 좋아해서 만들었는데, 잘 안 돼서 접었어요(웃음).”
-당신이 늘 말해왔던 ‘조수용 키워드’가 있어요. 장난기, 똘끼, 모험, 버티기… 이 키워드를 관통하는 공통점이 뭐지요?
“일단 남의 시선이 안 중요해요. 나 스스로의 시각으로 나를 자각한다는 거에요. 그런데 나를 객관화하는 힘은 명상에서 와요.”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유발 하라리가 생각나는군요(웃음).
“하하. 유발 하라리의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는 명상 챕터가 따로 나옵니다. 나를 가볍게 두면 뇌의 주변이 말끔해져요. 다른 사람이 비난한다고 영향받지 않고 나답게 판단할 수 있달까요. 수시로 나를 수술대에 올려놓는 거죠. 요가도 마찬가지예요. 맨몸으로 내 피지컬을 극한대로 몰면서 객관적으로 나를 대하는 거예요. 명상과 요가로 정신과 육체를 객관화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장난기, 똘끼, 버티기 정신이 생겨요.”
-문득 ‘수련’으로 유명한 종교학자 배철현의 말이 떠오릅니다. 새벽에 앉아서 ‘오늘 무엇을 안 할까?’를 명상하면 ‘무엇을 해야 할 지’가 명료해진다고요. 가만 보면 매사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하. 아니에요. 저를 모르는 분은 무섭다고 하지만, 오래 본 분들은 “알고 보니 허술한 놈이었어”라고 해요. 완전무결한 사람은 매력 없잖아요(웃음). 프로다운 친절함과 아마추어 같은 허술함, 이 두 가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좋다고 봐요.”
‘알고 보니 허술한 놈이었다’는 말에 친밀감이 들었다. 조수용은 올해 4월, 가수 박지윤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매거진B’ 팟캐스트 현장에서 만나 친분을 맺었다고 알려졌다. 내가 그 만남이 매우 지적이라고 말하자, 그는 소리 없이 웃기만 했다. 더는 뉴스거리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의지가 강했다. 두 사람은 취향이 잘 맞고 지금도 서로 잘 도와주며 잘살고 있다고 짤막하게 언급했다.
매거진B의 발행인으로 세계적인 성공 기업을 탐구한 경험은 그에게 큰 자산이 되었다. 깨달음은 의외로 간단했다. 건강한 자본이 강력한 브랜드를 만들고, 그게 진짜 돈이 된다는 것. 경영주도 직원들도 소비자도 함께 행복한 기업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것. 그런 신념으로 JOH를 경영하면서 건강한 현미 밥집 ‘일호식’, 동네 개발 사업인 ‘사운즈’를 성공시켰다.
-선한 기업에 대한 생각은 여전한가요?
“더 깊어졌죠. 그런데 카카오가 대기업으로 분류되면서 사람들은 시장에서 삼성, LG, 네이버와 대등한 규모로 생각하세요(웃음). 사실상 체구 차이가 많이 나요. 거인과 꼬맹이죠. 아무래도 저희는 비즈니스보다 사회적인 역할에 치중했던 시기가 길었고, 지금은 밸런스를 맞추려고 해요. 우선은 시장에서 건강하게 살아남아야죠(웃음).”
-하라 켄야, 정구호처럼 당신도 브랜드를 이야기할 땐 ‘뺄 것’을 주장했습니다. 더하기보다 빼기, 늘어놓기보다 정리하기, 채우기보다 비우기라는 반전의 통찰은 왜 항상 유능한 크리에이터의 몫일까요?
“오랫동안 고객을 상대하면서 깨달은 거죠. 여러 개의 공을 던지면 받지 못한다는 걸. 물리적 세상의 논리로 보면 돈을 많이 주면 양이 많아야 해요. 하지만 크리에이티브 세상은 달라요. 돈을 많이 줄수록 복잡한 걸 간결하게 만들어줘요.
당연한 듯 보이지만 희소성이 큰 작업이에요. 특히 빼는 건 굉장한 용기에요. 일단 돈을 댄 사람들이 안 좋아해요. 흰 티셔츠에 점 하나 찍고 디자인했다 그러면 당황해요. 보도자료를 예로 들어봐도 그래요. 많이 내야 노동량이 보이잖아요. 하지만 때로는 보도자료를 안 내는 것도 전략이에요. 분량을 ‘컷’하는 것도 대단한 주인의식이에요(웃음).”
조수용은 예전에도 주인의식에 관한 생경한 정의로 나를 놀라게 했다. 진짜 주인의식은 나를 내려놓는 거라고. “일하는 건 어렵지 않아요. 오히려 어떤 일을 안 하기로 결정하거나 열심히 했는데 빠지게 될 때 나의 이익을 빼고 조직의 방향을 앞세우는 사람이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이죠.”
일에 나의 감각은 더하지만, 일에서 나의 이익은 빼는 사람. 조수용은 브랜드를 세우는 일도 같은 비유로 설명하곤 했다. 중심을 잡고 군더더기를 빼는 일, 불필요한 걸 빼면 남다른 캐릭터가 생긴다.
-빼기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나요?
“그렇게 했을 때 결과가 좋았어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때 덜 머뭇거리는 편이에요. 스스로 비겁해지는 걸 못 참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웃음).”
그는 유년기부터 대학생이 될 때까지 성장기 내내 가난했다. 결핍이 낳은 건 우울이 아닌 자율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1년에 딱 한 번 옷을 사주셨다. 시험 보기 전날, 잘 보라고. 어머니는 모든 결정 권한을 어린 조수용에게 일임했다. 소년은 시장을 샅샅이 돌며 모든 제품을 다 비교한 후, 마지막 순간에 다 빼고 한 벌을 골랐다.
어머니는 딱 한 마디만 하셨다. “그 옷의 어떤 점이 제일 좋으니? 후회하지 않겠니?”
그게 큰 훈련이 돼서 당시 영등포 옷가게 브랜드를 다 외우고 로고까지 그릴 정도였다. 그때부터 브랜드를 보는 직관이 생겼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책 한 권 허투루 사는 법이 없었다. 수많은 물건 중 최고로 좋은 하나를 골라내는 구체적인 안목, 습관의 힘이 자리 잡았다.
-생각할수록 어머니께서 남다르신 분입니다.
“그렇죠. 제 유년 이야기의 중심 테마도 가난이 아니라 어머니예요. 어머니의 겸손함이죠. 가난해서 1년에 한 벌 밖에 새 옷을 못 사면 보통 현명한 판단은 어른이 해요. ‘아이는 분명 이상한 걸 고를 테니, 부모가 구슬려서 필요한 걸 사줘야지.’ 그런데 어머니는 정반대의 생각을 하셨어요. ‘1년에 한 번이니 네가 원하는 걸 사라.’ 그리고 제가 그런 결정을 하는 데 같이 시간을 쓰고 결과물을 인정해 주셨어요.
그 경험이 제게 다른 자아를 만들어줬죠. “네가 결정해. 네가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신뢰받은 경험은 대단한 힘을 발휘해요. 선한 마음, 자기 신뢰, 잘하고 싶은 마음이 동시에 솟구치죠. 말씀드렸듯이 저는 인생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 성장했어요. 대기업의 리더가 된 지금은, 그 신뢰와 자율의 경험을 나누려는 거고요.”
-트라우마는 없습니까?
“없어요. 제로에서 시작해서 그런지 움켜쥐고 사회생활을 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잃을 게 많지 않다고 생각해요.”
“네가 결정해. 네가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신뢰받은 경험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 조수용./사진=남강호 기자
“네가 결정해. 네가 했으니 괜찮을 거야.” 신뢰받은 경험은 대단한 힘을 발휘한다고 믿는 조수용./사진=남강호 기자
-마지막으로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은가요?
“제 아이한테도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아빠는 평생 가치를 만들고 세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가치를 만드는 건 한정된 금을 캐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에요. 세상에 없던 좋은 광물을 합성해내는 일이죠. 전에 없던 모바일이 세상에 드러난 것처럼, 앞으로도 인간 행복에 가치를 더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찬 기운이 들 정도로 텅 빈 사무실 안쪽으로 가을 아침 햇살이 비쳐들었다. 민머리에 안경을 끼고 새하얀 면티를 입은 모습이 매끈한 이모티콘처럼 보였다. 문득 반팔 소매 끝에 삐죽이 나온 문신이 눈에 들어왔다. 정사면체의 선과 점을 기호화한 그래픽이었다. 공중에 올라선 한 개의 ‘점’이 브랜드 철학이라고 했다.
“브랜드에 철학이 더해지면 소비자들은 물건이 쓸모없고 못생겨도 사요. 그 생각에 공감하기 때문이죠.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생각을 곧게 세우면 부족한 게 많아도 그 사람은 잘살아요. 그게 바로 밸런스죠.”
늘 사물과 생각의 에센스를 찾아 간결하게 중심을 세우는 조수용. 살면서 혹 잊을까 하여 제 몸에 검은 문양으로 새겨넣었다고 했다. 지구가 매트릭스 세상이 되지 않으려면 진짜가 존재하고 버텨줘야 한다. 그 중심의 한 점에 조수용이 있어 다행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04/2019100401314.html
유명한 성형외과중에서 BK성형외과라는 곳이 있다.
사람마다 다른 코 모양을 만들어주는
코 수술로 유명한 김병건 원장이 있는.
그냥 그런 사람이 있는구나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우연히 기사를 보다가 이 사람이 가상화폐 거래소 빗썸의 지분을 인수하려고 한다는 기사를 봤다.
성형외과와 가상화폐의 연결고리가 잘 상상이 안되어
기사를 읽어봤다.
재미있는 분이네.
수천억 자산가일텐데
집 없고, 차 없고, 자전거 타고 다니고…
그런데 이렇게 똑똑한 분이
어쩌다가 가상화폐에 정신을 팔렸을까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빗썸 인수한 김병건 CEO “손정의 컨소시엄 참여說, 사실 아니다”
2018.10.29.
“제 꿈은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입니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세상, 자본 이득을 취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나의 목표입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국내 1위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빗썸’의 대주주가 싱가포르 BK글로벌컨소시엄으로 바뀌었다. 이 컨소시엄을 이끄는 김병건 BK메디컬그룹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의 등장은 한국 블록체인 업계 최대 화제였다. 김 CEO는 BK글로벌컨소시엄을 통해 빗썸(비티씨코리아닷컴) 대주주였던 비티씨홀딩컴퍼니 지분을 50%+1로 4000억원에 사들였다. 개인적으로 빗썸 지분을 가진 5대 주주이기도 하다.
한국 성형외과 ‘빅(Big)5’에 들어가는 BK성형외과 설립자 겸 원장이자 족집게 투자로 수천원 자산을 보유한 투자의 신(神)인 그에게 ‘몽상가(夢想家)’ 같은 발언을 들을 줄은 몰랐다. 한때 BK성형외과는 탈세 의혹을 받을 정도로 강남에서 잘 나갔다.
지난 27일 수많은 성형외과와 피부과 불이 꺼지고 맞은편 가로수길이 가로수 조명으로 환해지던 시각, 서울 강남구 신사동 사거리에 위치한 BK성형외과에서 그를 만났다. 빗썸의 새 대주주 그룹을 이끄는 수장은 매주 토요일, BK성형외과 진료를 위해 한국에 온다. 기자가 인터뷰한 날에도 그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진료를 했다.
그는 ‘BK메디컬그룹 설립자 겸 CEO’라는 명함을 건넸다. 하늘색 수술복 상의에 남청색 ‘BK’ 마크가 적힌 흰색 가운, 슬리퍼를 신은 ‘의사 김병건’은 ‘투자의 귀재’라는 표현에 손 사래를 쳤다. 키는 180cm가 훌쩍 넘었다
김 CEO는 “10년 전 싱가포르에 이주한 싱가포르 영주권자로, BK메디컬그룹은 싱가포르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 증권 투자 사례를 얘기할 때보다 블록체인, 탈중앙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나눌 때 표정이 한층 밝아졌다. 그는 싱가포르에 매료돼 있었고 집도 자동차도 소유하지 않고 있으며 블록체인은 나의 신념과도 같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CEO는 증권가에서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2004년 코스닥 상장사 비트컴퓨터 투자로 20억여원의 차익을 거뒀고, 코스닥 상장사인 바이오 업체 휴젤에 2007년 투자한 1억3000만원은 현재 160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5월 국내 첫 가상화폐 공개(ICO) 프로젝트 보스코인에 개인 투자자 중 최대 금액을 투자하면서 블록체인 업계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김 CEO가 투자 대상을 주식에서 가상화폐로 돌린 걸까? 그는 “투자목적이 아니라 궁금해서 비트코인, 이더리움은 물론 여러 종류의 가상화폐를 보유했다”며 “여러 ICO 프로젝트도 참여했다”고 말했다.
김 CEO는 BK글로벌컨소시엄을 통해 빗썸(비티씨코리아닷컴) 대주주였던 비티씨홀딩컴퍼니 지분을 50%+1로 4000억원에 사들인 것 외에 개인적으로 빗썸 지분을 가진 5대 주주이기도 하다. 김 CEO는 “외국 거래소는 거의 다 써봤고, 국내 거래소도 사용환경과 편의성을 살펴보기 위해 빗썸 외에 다른 거래소도 써봤다”고 말했다.
김 CEO는 가상화폐를 등장하게 한 블록체인에 대해 ‘사랑한다’는 표현까지 쓰며 강한 신뢰를 보였다. 김 CEO는 “블록체인이 그 어느 것보다 유망하고, 세상을 바꿀 것이라 믿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정의했다.
김 CEO는 “탈중앙화라는 개념을 굉장히 사랑한다”며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데 블록체인이 큰 역할을 할 것이라 믿는다”라고도 했다. 김 CEO는 자신이 세운 BK성형외과 지분을 직원들에게 무료로 나눠준 것 역시 탈중앙화에 대한 사랑을 반영한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3년 6개월 동안 BK성형외과에서 월급을 받지 않았다. 다만, 그는 “싱가포르 고용 원칙에 따라 1000달러는 받아야 하기 때문에 싱가포르 병원에서 한 달에 1000 싱가포르 달러, 80만원 정도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반인 가상화폐 투자에 대해선 “블록체인과 가상화폐 미래를 믿는다면 가상화폐의 작은 부분에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하지만 모든 사람이 말할 정도로 (가상화폐 투자에는)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항간에선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 BK글로벌컨소시엄에 참여한다는 소문이 돈다. 김 CEO는 “손정의 사장이 포함된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니고 일본이 포함된다는 말도 있는데 이 역시 사실과 다르다”며 “컨소시엄 참여와 관련한 의논조차 한 적이 없다. 실제로 참여하지 않는 분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 자체가 미안할 따름”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꼭 기사에 담아 피해가 발생하지 않길 바란다”는 말도 덧붙였다. 김 CEO는 “손정의 사장이 빗썸 코인, BXA토큰을 판다는 헛소문도 돌고 있어 우려스럽다”며 소문의 진위를 빗썸에 직접 확인하라고 요청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했다.
BK성형외과는 비트코인 결제를 받는다. 실제로 비트코인으로 결제를 하는 환자도 있다. 김 CEO는 “비트코인 결제기만 있기에 가상화폐 중에선 비트코인 결제만 받는다”며 “외국인 중 현금을 가져오기 힘든 환자들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한다”고 말했다.
한국 사람이 비트코인으로 결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게 김 CEO의 말이다. 그는 “한국인은 가상화폐가 오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결제로 이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ICO에 개방적이며 가상화폐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는 곳이 많은 싱가포르에 살고 있는 김 CEO는 어떨까? 김 CEO는 “나는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져도 다시 오를 것이라고 믿는 바보라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영주권자다. 싱가포르에 이민을 간 이유는 무엇인가.
“싱가포르를 아주 좋아한다. 싱가포르는 안정된 나라이기도 하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구성돼 있다. 누구도 거짓말을 하지 않는 정말 신기한 나라다.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싱가포르 초등학교를 졸업한 딸들을 보면 무엇 하나 규칙에 어긋난 것을 할 생각을 안하도록 교육한다. 전 국민이 올바른 생활을 하는 나라는 전 세계적으로 많지 않다.”
―미국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 짐 로저스와 친분이 있다고.
“짐 로저스는 세계적인 투자자다. 펀드를 만들어서 거액을 벌고, 오토바이를 타고 전 세계 여행하고, 세계에서 배운 지식을 갖고 다시 성공한 분이다. 나이는 70세 이상이다. 나와 친구라기보다 제 딸과 짐 로저스 자녀가 같은 학교에 다녀서 교장 선생님이 소개해줬고, 학교에서 자주 봤다. 집도 근처다. 싱가포르에선 가까운 거리에 사는 사람도 다들 차로 자녀 통학을 돕는데 자전거에 아이들을 태워서 통학시키는 건 나와 짐 로저스, 둘 뿐이었다. 짐 로저스는 앞에 둘, 나는 앞뒤로 두 명의 자녀를 태우고 통학시켰다.”
―쌍둥이 딸은 지금 몇 살인가. 자전거로 통학시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중학교 1학년이다. 초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자전거로 통학시켰지만, 중학교는 집에서 멀어서 버스로 간다.”
김병건 BK성형외과 원장, BK메디컬그룹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 ICO 플랫폼 대표. / IT조선 정미하 기자
―차가 없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집도 소유하지 않는다. 자동차는 한국에도 싱가포르에도 없다.”
―차도 집도 소유하지 않는 이유는.
“한국에는 어머니, 나, 여동생, 남동생이 같은 아파트 같은 통로에 산다. 최근에도 어머니한테 집을 팔겠다고 했더니 같이 살아야 한다며 못 팔게 하셔서 갖고는 있지만, 내가 싱가포르에 가면서 비어있다. 싱가포르에서 10년째 살고 있지만 집을 사본 적이 없다. 월세만 4번 옮겨 다녔다. 차도 물론 산 적이 없다. 항상 지하철이나 자전거를 탄다. 내가 기름을 태워서 자동차를 이동시킬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동차를 사지 않는다.”
―블록체인 개념은 언제, 어떻게 접했나.
“4~5년 정도 됐다. 싱가포르는 새로운 학문을 빨리 받아들이고 개방적인 나라다. 전 세계로부터 훌륭한 서적이 가장 많이 들어온다. 싱가포르 오차드로드(Orchard Rd)에 가장 임대료가 비싼 건물인 니안 시티(Ngee Ann CIty) 4층에 키노쿠니야(Kinokuniya)라는 대형 서점이 있다. 그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이 바로바로 들어와서 전시되고 팔린다. 싱가포르에 살다 보니 좋은 책도 빨리 접할 기회가 있었고,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블록체인을 의논하기도 했다. 세계적인 블록체인 서밋은 싱가포르에서 열리기에 공부할 기회가 많았다.”
―개인적으로 빗썸에 30억을 투자한 5대 주주다. 언제 투자했나. 빗썸에 투자한 이유는 뭔가.
“아주 오래된 건 아니다. 훌륭한 사람들이 있다면 얼마든지 발전할 수 있는 회사라 믿었다. 개인적으로 블록체인을 신봉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싱가포르에 회사(김병건 회장은 2018년 8월 싱가포르에 ICO 컨설팅 업체 ‘ICO플랫폼’이라는 회사를 세웠다)를 세워 영업했고, 점점 블록체인에 빠져들었다. 블록체인에 빠진 사람으로서는 빗썸만큼 훌륭한 회사는 없다.”
―다른 거래소 지분도 가지고 있나
“빗썸 외에 다른 거래소 지분은 없다.”
김병건 BK성형외과 원장, BK메디컬그룹 설립자이자 최고경영자(CEO). ICO 플랫폼 대표. / IT조선 정미하 기자
―빗썸 5대 주주에 그치지 않고 경영권까지 인수한 이유는.
“일단 빗썸은 저처럼 블록체인에 미쳐있는 430만명이 가입해 있다. 자신의 전부를 건 사람도 있고, 블록체인을 정말 믿기 때문에 참여한 경우도 있다. 이런 회사가 세상에 어디 있나. 지금 가치를 인정받는 미국 블록체인 업체 중에서도 순이익이 마이너스인 회사가 상당히 많다. 물론 순이익이 조금 나는 회사도 있고, 영업을 열심히 하려는 계획을 세운 회사도 많다. 그런데 빗썸처럼 브랜드 가치와 블록체인 역량을 가지고 있으면서 현재도 순이익이 나는 회사는 찾을 수 없다. 그렇게 좋은 회사가 있는데 왜 인수를 하지 않겠나. 빗썸에 투자하면서 주주와 대표를 접할 기회를 가지게 돼 영광이었고, 직원 중에도 아는 사람이 많다. 밖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지만, 빗썸 자체가 훌륭하든 훌륭하지 않든 열심히 일하는 회사라는 걸 잘 알고 있다.”
―빗썸은 국내 거래량 1위 가상화폐 거래소이기도 하지만, 해킹도 당했다.
“일이 많다 보니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있다고 믿는다. 빗썸에는 엄청나게 많은 고객이 있고, 갑자기 어느 날, 어느 시각에 거래량이 늘어나면 시스템이 멈출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할 수 있지만, 잘 안 되었다면 그런 일이 없었을 거다. 그렇게 많이 사람이 이용해줬기에 시스템이 버티지 못했던 거다. 시스템을 보완하면서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빗썸을 써보니 어떤 부분이 좋던가.
“빗썸은 국내 암호화폐 거래량의 50%를 차지하고 있는 거래소이기에 풍부한 유동성을 제공할 수 있다. 암호화폐 거래소 최고 덕목은 유동성, 안정성, 투명성인데 이런 점에서 빗썸이 나를 포함해 430만명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빗썸 안에 벤처캐피털 조직을 만들 계획은.
“이미 빗썸 안에서 벤처캐피털 연구를 하고 있다.”
2018년 10월 27일 저녁, 서울 신사동 사거리 BK성형외과에서 IT조선과 인터뷰 중인 김병건 BK성형외과 원장 겸 BK메디컬그룹 설립자이자 CEO(좌). / IT조선 정미하 기자
―비티씨홀딩스 지분 인수 주체인 BK글로벌컨소시엄 구성은 끝났나. 누가 참여하나.
“싱가포르와 홍콩 쪽에선 아주 유명한 분과 논의 중이다. 또한, 유럽 쪽과도 의논 중이며 이분들 외에 참여를 원하는 곳이 많아 파트너를 추가로 모으려고 한다. 단, 한국 기업 중에선 BK글로벌컨소시엄 참여사가 없다. 한국 기업도 참여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지금은 외국에서 영향력이 있는 기업만으로 컨소시엄 구성이 끝날 듯하다.”
―빗썸 주주구성이 투명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었다. 빗썸 대주주인 BK글로벌컨소시엄 구성원은 공개할 예정인가.
“확정된 건 없다. 아직 컨소시엄 구성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컨소시엄 구성은 인수 대금 지불 기한인 2019년 2월 전까지 마칠 것이다. 다만, 모든 것을 공개할 것이기에 경영 투명성 우려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블록체인 기술은 탈중앙화를 추구하지만, 거래소 중심으로 중앙화된다는 비판이 있다.
“나는 전 세계 10개국에 거래소를 설립하려고 한다. 또한, 글로벌 최고 거래소와 함께 ‘글로벌 거래소 연합(BEA·Blockchain Exchange Alliance)’도 만들려고 한다. 글로벌 거래소 연합(BEA)에서 쓰일 BXA토큰을 만들어 BXA토큰을 가진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더 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BXA토큰를 가진 사람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도입하면 탈중앙화된 방식으로 경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 거래소 중에선 빗썸이 참여하고, 다른 한국 거래소와 BEA를 할 계획은 없다. 협력하는 거래소는 모두 외국계다. (중국계) 후오비는 현재 논의 중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빗썸 사용자들이 거래소에 상장할 코인을 선정하는 `픽썸(PickThumb)`이라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예를 들어, 빗썸 담당 직원이 상장할 코인을 혼자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빗썸 사용자나 BXA토큰을 가진 사람들이 투표해 새로운 코인 상장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다. 이에 따라 코인 상장을 결정한다면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취지에 가장 맞는 의사결정 도구가 되리라 생각한다. 외국 거래소 일부는 시도하고 있는 곳이 있다. 한국에서는 빗썸이 최초로 도입하게 될 거다.”
―BXA토큰 외에 한국에서 ‘빗썸 코인’ 발행 계획은 없나.
“우리는 한국 정부 규제를 무조건 따를거다. 한국에서 가상화폐 공개(ICO)를 금지하는 만큼, 빗썸이 더 안전한 생태계를 만들자는 게 내가 추구하는 방향이다. 그렇기 때문에 BXA토큰은 한국에서 판매하지 않고, 외국에서만 판매한다. BXA토큰은 외국 기관투자자만 살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물론, 나중에 빗썸 안에서 일반인이 접할 수는 있다.”
―가상화폐 거래소 운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거래소 경영상 중요한 것은 안정성과 투명성이다. 이는 너무도 기본적인 사항이다. 이 외에 또 다른 것을 열심히 해야 한다.”
―블록체인 업계에서 최종적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제 꿈은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다. 모든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세상, 그렇게 세상을 바꾸는 것이다. 앞으로 ‘마이오운닷컴(myown.com)’이라는 이름 아래 식당 주인이, 미용실 원장이 자본 이득을 취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나는 BK성형외과 직원들에게 마이오운닷컴에 대해 설명한 뒤, 3년 반 동안 BK성형외과에서 1원도 받지 않았다. 이 병원을 세운 자본가, 바로 내가 자본이득을 포기했다. 나는 근로자가 아침에 눈을 뜨고 밤에 잠들때까지 전혀 모르는 자본가 배를 불려주지 않은 채로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를 위해선 블록체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정산을 하기 위해선 수정할 수 없는 분산화 된 장부, 블록체인이 있다면 마이오운닷컴을 더 확실하게 이룰 수 있다.”
―휴젤, 핑거 대주주다. 여기 경영에는 직접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우선 공부를 하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배워야 하는 상황이다. 전 직원 중에서 아마 제일 부족할 테니, 내가 경영을 한다는 건 맞지 않는다.”
―재산은 어떻게 할 생각인가.
“살아있는 동안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저택에 사는 등 생애를 실컷 누리고 아들딸을 자신이 만든 재단에 일하게 한 다음 ‘죽을 때 내 재산 99%를 재단에 환원하겠다’ 하는 건 기부라고 생각지 않는다. 죽을 때 기부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과 똑같은 보통 시민 삶을 살면서 기부를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정말 열심히 일했고 성형외과를 선택해서 많은 보상을 받았지만, 나는 한번도 나를 위해서 (돈을) 쓴 적이 없다. 만약 명품 브랜드 허리띠를 선물받으면 내가 쓰지 않는다. 더 훌륭한 분에게 드린다. 돈이 많다고 차를 10대씩 사서 주차장에 세워두는 건 맞지 않다. 그래서 나는 지하철에 몸을 싣고 다닌다.”
―재단 설립 가능성은
“BK장학재단을 설립해 지금까지 장학금으로 11억원을 기부했다. 일부는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 유학생에게 장학금을 줬다.”
―앞으로 좀 더 한국에 머무를 생각인가
“아직 모르겠다. 빗썸 헤드쿼터가 싱가포르에 있으니 좀 더 일을 많이 해야할 듯하다. 싱가포르에도 훌륭한 직원이 많다.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르는 내가 미안하다. 빗썸 에이스들이 중국 상해, 싱가포르, 홍콩 등에 파견 근무 중이다. 아주 훌륭한 인재들이 빗썸에 모이고 있고,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이들이 핵심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지켜봐주시면 열심히 한 만큼 기대를 져버리지 않겠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오랜만에 일탈적인 문화 생활을 해보기로 하고
개천절 밤에 혼자 영화 Joker를 봤다.
굉장히 무겁고 우울한 영화다.
이동진 평론가는
“자신의 삶이 비극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세상을 비극으로 만드는 이야기”
라고 했는데 이 영화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예전 직장 때에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지금보다 훨씬 짧은 데드라인에
지금보다 훨씬 높은 퀄리티로
해왔기에
일 자체로 인한 스트레스는 없는데
나를 괴롭히고 상처주고 공격하는 최소 열몇가지의 일들이
나를 멍들게 하려한다.
이것들을 마음에 다 담아두면 내가 병이 나기 때문에
그냥 잊어버리고 해결할 방법을 찾는다고 계속 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이런 일들을 겪으니
마음이 괴롭고 힘이 든다.
결국은 (지금껏 그래왔듯) 시간이 해결해줄까.
이 악물고 버텨보자
회사에서는
직원들은 징검다리 휴일은 쉬고
연말에도 쉬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물론 연차 소진)
나는 할 일이 산더미보다도 많아서
서울에 가지 않고 그냥 부산에 남았다.
평일인 오늘 직원들이 없는 아침을 이용하여
느긋하게 9시즈음 일어나서 사우나를 다녀왔다.
점심에는 폼나게(?) 밥 다운 밥을 먹어보고자
신세계 백화점 식당가를 갔는데
오후 1시인데도 줄에 줄을 서서 포기하고 돌아왔다.
나에겐 이런 날이 필요했다.
개천절 다음날인 금요일에 직원들은 쉬고
나는 주말에 서울에 가지 않기로 했다.
목~일요일 4일간 정비의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지난 추석 때에는
정말 일이고 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서 쉬었었다.
일은 쌓여가고 빨리 빨리
재활용 쓰레기통을 비워내듯 해결해야한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주체하지않고 먹었더니
몸무게가 내 인생 최고치로 상승하고 있더라.
그래서 굳게 다짐하고 샐러드 + 연두부를 점심에 먹고
저녁에 가볍게 먹거나 안먹거나 하는 형태로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다이어트의 핵심은 식단이라더니
2일만에 2kg가 빠져서 예전 체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에 다이어트를 해봤는데
기분이 좋다. 적당히 배고프고 욕심이 적어지니 마음도 편해지고
목표는 10kg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스트레칭도 유튜브 보면서 해보려고
요가매트도 사놨다.
p.s.
보통 외부에서 샐러드라고 해서 사먹으면 6-7천원 하던데
회사 앞 대형마트에서는 1~2천원이면 살 수 있다.
신세계백화점 식품코너에서도 3팩에 6천원에 판다.
식사대도 절약할 수 있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