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격과 근육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본
아래 글에서 제일 공감이 되고 배운 것은
인격와 배려는 신경쓰고 노력하고 배워나가는 것이라는 점
관성항법은 주변을 관측하지 않고 오직 나 자신의 가속도를 측정하고 적분하여 현재의 위치를 알아내는 항법이다. 관성항법은 외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대신 크게 부정확하여 오차가 쌓이면 전혀 엉뚱한 위치에 있게 된다. 그 때에는 GPS와 같은 외부의 정보를 받아 오차를 수정해야 한다. 물론 대륙간 탄도미사일인 피스키퍼는 고가의 관성항법 장비를 사용하여 엄청난 정확도를 확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항법장치는 공짜로 쓰는 GPS 신호에 비교하지 않아도 지나치게 비싸고 만들기 어렵다. 물론 우리가 GPS를 공짜로 이용할 수 있다고 해서 GPS 체계 자체가 값싸고 쉽게 만들어졌다고 생각할 수는 없다.
직업에 대한 편견은 좋지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향이 어쩔 수 없이 직업을 따라가게 되어 있는 것 같다. 설령 직업 전체 분위기와 반대 방향으로 가더라도 크게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가정폭력을 경험한 아이는 그대로 대물림할 수 있지만, 반면교사로 삼아 정 반대의 사람이 되었다 하더라도 그건 환경의 결과이니까. 반려견 훈련사 강형욱은 아버지가 강아지 공장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 환경이 아니었으면 하필이면 애견 훈련쪽으로 직업을 정할 계기가 딱히 없었을 것이다.
택시를 타다 보면 기사 중 2할 정도는 친절한 사람, 5할은 대화조차 하지 않고 아무 인상도 남기지 않는 사람, 3할은 매우 불쾌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일상 생활 중에 매우 불쾌한 사람들의 8할은 택시기사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앞을 가로막거나 비매너 운전을 하는 다른 차들을 향해 혼잣말로 쌍욕을 하는데, 비록 나에게 하는 말은 아니지만 간접적으로라도 그런 강도의 욕설을 듣는 것은 그 외엔 거의 없다. 어차피 10분만 참으면 다시 보지 않을 사람이고, 평생 그렇게 살아왔으니 고쳐지지도 않고 고칠 이유도 없으니 잠자코 있다가 내린다. 물론 그런 사람들 치고 인사는 커녕, 나의 말에 한마디라도 대꾸하는 사람은 드물다. 택시기사들이야말로 인공지능에 대체되었을 때 아쉬움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다. 차라리 구글 어시스턴트가 대꾸는 더 잘할 테니까.
인격은 타고나길 잘 타고나서 성장기에 바짝 신경써 놓으면 그 후로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 키와 같은 스펙이 아니다. 인격과 배려는 한때 근육질로 우람했더라도 고작 1 년만 손을 놓으면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는 근육질 몸매 같은 것이 아닐까 한다.
직장에선 최고 관리자급이 아닌 이상 늘 윗사람의 생각을 파악하고 그에 맞추기 위해 애써야 한다. 진상 손님들에게 시달리지만 싸울수도 없는 자영업자도 마찬가지다. 한번 화를 내 버리면 속은 시원하지만 손님이 뚝 끊긴다. 반면 택시에는 단골이 없다. 모든 손님은 다시 보지 않을 뜨내기다. 택시기사는 대리운전과 달리 친절함으로 팁을 받을 일은 거의 없는데, 불친절은 불법이 아니다. 직장에 다니다가 명퇴로 새 직업을 찾은 신참 택시기사도, 한해 두해 일의 속성을 깨닫고 나태해지면 신고받지 않을 정도로만 친절과 배려를 놔 버리게 된다. 일부는 자기가 손해를 보지 않을 최소한의 자각조차 잃어버려 신고당해 금전적인 불이익을 받는다. 회사나 요식업 종사자라면 도저히 하지 못할 쌍욕을 해도 아무도 그것을 지적하지 않아 이상한 줄 모르고, 설령 성깔있는 손님이 간혹 지적하면 입을 다문 대부분의 손님에 비해 진상이라고 치고 넘어가면 된다. 손님이 탔는데 내릴 때까지 한마디도 말을 하지 않는 것도 사실은 정상이라고 볼 수 없는 투명한 5할이다.
매일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선생님이 퇴근하자마자 그런 업무적 인격을 꺼 버리고 집에서 돌변하기란 어렵다. 성인대 성인으로 이야기할 때도 아이들을 가르칠 때처럼 조곤조곤하고 상냥한 말투로, 배우자를 가르치려고 하는 습관이 남아 있다. 다른 차 운전자들을 향해 쌍욕을 날리는 다혈질 택시기사가 주차 후에 그런 태도를 전부 꺼 버리고 자상한 아버지로 돌아오는 것도 어렵다. 그는 결국 운전하지 않을 때도 계속 택시기사로 살게 된다. 주변의 보정 없이도 관성항법으로 바람직한 위치를 잘 유지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는 주변이 참견하는 GPS 만치는 못하다. GPS는 수십 개의 위성을 발사하고 통제하는 등 아주 어렵고 값비싼 기술이지만, 일반인에겐 결과적으로 숨쉬듯 쓸 수 있는 손쉬운 길이다. 원치 않지만 늘 느껴지는 사회적 압력이 인류 역사를 통해 짜여진 고도의 구조이며 가장 간단한 방법이듯이.
누군가는 해야 할 택시 운전이다. 영업직 사원이 결국 알코올 중독에 빠지듯, 택시 기사의 불친절은 택시 기사도 원치 않게 얻은 직업병이다. 그러나 가장의 중독과 폭언은 어찌됐든 다른 가족들에겐 고통이 된다. 배우자와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배우자가 집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은 잔업만이 아니다. 월급은 한달에 한 번 들어오지만 배우자는 매일 집에 들어온다. 편견을 거스르는 모험을 하기 어려운 이유다. 집은 모험이 아니라 모험을 끝내고 쉬는 곳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