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고민의 質

고생과 고민,
양과 질은 다르다는 단순하고 평범한듯 하지만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이야기.


[CEO 심리학] 고생을 많이 했다고? 중요한 건 고민의 質

얼마 전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했다. 그런데 거의 모든 후보들이 치열했던 선거운동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자신이 지난 시절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개인사적이든, 동일한 세대면 가질 수밖에 없는 시대적 아픔이든 혹은 가난과 같은 세계 공통적인 것이든 말이다.
좌절과 실패의 역사를 왜 후보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중요한 측면 중 하나로 드러내는 것일까? 당연히, 그러한 좌절과 실패를 거울삼아 많은 고민을 해보았고 그만큼 생각이 성숙해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우리는 대통령과 같은 최상층의 지도자는 물론이고 어떠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든 내게 중요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면 그 사람이 지난날 얼마나 고생을 했는가를 부지불식간에 보게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래서 사람들은 고생을 했는가를 통해서 고민의 양을 가늠해 본다. 그러니 리더들도 사람을 뽑을 때 많이 보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얼마나 고생했는가’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엄청난 함정이 하나 도사리고 있다.

고생의 정도가 반드시 고민의 성숙함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고생은 말 그대로 과거의 어려운 경험이다. 고민은 무엇인가? 그 고생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았느냐다. 더 나아가 그래서 그 고생이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이다. 그러니 기존 연구들을 종합해보고 실제 사례들을 관찰해 보면 한 사람의 심리학자로서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도달할 수밖에 없는 결론이 하나 있다. 고생보다 고민이 중요하다. 더 정확히는 좋은 고민을 했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히틀러는 자신의 고생을 통해 유럽 인구 수천만 명을 학살할 결론에 도달했다. 그에 못지않은 수많은 독재자들도 마찬가지다. 정치적으로 큰 문제가 많았던 리더들이나 기업을 파탄으로 몰아넣은 CEO들 역시 마찬가지다. 고생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고생을 통한 고민이 양적으로는 부족했고 질적으로는 삐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고생의 에피소드들로부터 좋은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예측하는 간편한 방법에 우리가 상당히 경계할 필요가 있다고 늘 말씀드리곤 한다. 일단 고생의 양은 많은데 고민이 별로 없었던 사람은 조심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나마 다행스럽게 낙천적인 사람이 아니라면 모를까 무능한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나 이외의 다른 사람들이 이런 고생을 하게 되면 얼마나 아플까라는 생각도 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야 ‘나는 이런 고난을 이겨냈으니 너희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지 않겠니’라는 식의 막무가내형 사람을 피할 수 있다. 물론 작은 고생에도 지나친 고민을 하는 사람 역시 좋을 리가 만무하다. 더욱 심각한 건 나의 고생과 다른 사람의 고생을 차별하는 사람이다. 남을 무시하고 독선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높으니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적절한 고민과 옳은 방향의 고민을 했느냐이다. 그래서 필자는 지금 우리의 젊은이들이 고생을 해 보지 않아서 문제가 많다고 하소연하시는 분들께 감히 한 번 이런 고언을 드려보고자 한다. 그들이 우리보다 물리적 고생을 덜 했지 과연 정신적 고생과 고민을 덜 했겠느냐고 말이다.

그러니 사람을 뽑는 순간의 리더라면 반드시 ‘고민’을 해 봐야 한다. 어떤 사람의 고생이 포함된 현란한 에피소드에 현혹되고 있는지를 말이다. 그 고생을 통해서 어떤 고민을 했는가를 꼭 물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작은 고생이라도 현명한 고민을 할 줄 알았던 사람이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일 가능성이 가장 크다. 고생과 고민의 차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인재가 좀 더 쉽게 눈에 보이게 된다.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