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리야마 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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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뉴스에 등장하는 분이다.
외교관으로 일하다가 그만두고 우동집을 차리신 분
한번 먹어봐야지하면서도 못먹어보았다.
(아무리 제대로 만들었다 해도…우동 9천원은 좀 비싸긴 하다)
몇꼭지 꼽아보면
– 나에게 맞는 일,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
– “남의 시선이 선택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남들 눈에 그럴 듯해 보이는 나를 선택했죠”
– 불혹의 의미를 다시 새겨봐야함
***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인생의 본질을
고민해보았지요
우동명가 기리야마. 신상목
신상목
1996년 연세대학교 대학원 시절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이 되었다. 16년간의 외교관 생활을 접고 강남역 근처에 우동집 ‘기리야마’를 열었다. KBS <강연 100도씨> 등에 출연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인생 2막을 주제로 강연을 하기도 했다. 한 그릇의 우동에 ‘사람을 위하고 자연을 아끼는 마음’을 담아 세계적인 음식 외교를 꿈꾼다.
우동명가 기리야마’를 찾아갔을 때 신상목 대표는 주방에서 나왔다. 앞치마에 운동화를 신은 편안한 차림새지만 눈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그는 연세대 89학번이다. 고등학교 때 정치외교학과를 가고 싶어 상담을 하니 선생님이 법대를 가면 훨씬 더 넓게 배울 수 있으니 법대를 가라고 했다.
나중에서야 선생님이 정외과를 지원하는 학생들에게 법대를 추천하는 분이라는 걸 알았다.
“1학년 때부터 강의 시작 10분 전부터 앞자리 앉으려 줄서고 하는, 그냥 사법시험 준비하는 곳이었어요.” 그는 법대 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20대는 나 자신에 대한 성찰이 없었습니다.
외교관을 선택할 때도 치열한 고민은 없었지요.
외무고시에 합격하면 사람들이 잘나가는 사람으로 봐줄 것이라는
남의 시선이 선택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남들 눈에 그럴 듯해 보이는 나를 선택했죠.
마흔 살을 불혹(不惑)이라고 하잖아요.
‘미혹(迷惑)되지 않는다’는 의미를 과거에는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 자신에 미혹되지 않는다’는 의미더군요.
산해진미에 비단 옷을 입어도 자신에게 불편하면 소용이 없잖아요?
나에게 맞는 일, 내가 열정을 쏟을 수 있는 일,
자신을 가장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왜 남들이 정해 놓은 기준에 맞춰서 살아야 할까
외교관으로 일하면서, 삶의 양태는 굉장히 다양하며 사람들이 만족을 느끼는 원천은 사회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좋은 대학, 큰 기업에 가야 하고 결혼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남들이 암묵적으로 정해 놓은 기준에 매달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반면 일본에는 별거 아닌 일도 계속 키워 전통으로 만들고, 오랫동안 고집을 갖고 매달려서 대를 이어 키워내는 삶의 방식이 있어요. 자기만의 길을 추구하는 삶이 높이 평가받고, 사회 구석구석이 탄탄하게 짜여지고, 전체적으로 꽉 찬 듯한 느낌이 들지요. 그런 느낌이 갖는 장점을 기리야마 우동집에서 함축적으로 느낀 거고요. 저는 그런 것이 우리나라에도 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가
그러던 2008년 9월 20일, 그의 인생을 바꾼 사건이 일어난다.
일본을 떠나 주 파키스탄 대사관으로 부임한 지 한 달째 되던 날이었다.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호텔 식당에 예약을 했다. 몸이 좋지 않아 10여 분 늦게 가려고 챙기고 있는데 “쾅” 하는 굉음과 함께 천지가 흔들렸다. 곧바로 대사관으로 달려갔다. 한국인 사상자가 없는지 살피고 언론 인터뷰에 응하면서 하루가 정신없이 흘렀다. 폭탄 테러가 일어난 곳은 식사를 하려고 예약한 곳이었다. 호텔은 불바다를 이루었고 수백 명의 사상자가 생겼다. 사망자 명단을 확인하다 섬뜩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제 제시간에 나갔다면 여기 내 이름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죽음이 멀리 있는 남의 일이 아니구나.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인생인데 뭐 그렇게 앞뒤 재고 그러고 있냐? 내가 열망하는 일에 열정을 쏟아붓고,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인생의 본질 아닌가?
왜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안정성을 생각하면서 살아야 해? 그런 것들은 부차적인 것에 불과한 것 아닌가?
용기 내서 한번 해봐! 어차피 후회하는 게 인생이라면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지 않아?’ 하는 생각이 출렁거렸다.
‘맛있게 먹었다’는 그 한마디를 위해서
그해 9월 사직하고 ‘우동명가 기리야마’를 열었다. 비용을 아끼기 위해 수소문하다 지인을 통해 건물주를 소개받아 강남역 1번 출구 앞 지하에 자리 잡았다. 창업비용은 그동안 모은 돈과 사업계획서를 작성하여 투자자들을 찾아가 마련하였다.
‘기리야마 구니히코’ 할아버지는 일본에서 대대로 가족이나 수제자에게만 준다는 노렌(가게나 건물 출입구에 쳐놓는 발)까지 전해주었다.
고객의 입소문으로 명성이 쌓이는 내공이 꽉 찬 집을 꿈꿨기 때문에 홍보도 안 했다. 간판도 1년 후에야 달았다.
외교관 그만두고 어려운 생업현장에 뛰어든다고, 주변 사람들이 ‘또(또라이)사장’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만큼 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해서 추진한 일이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었다.
한번은 저녁 늦게 부부가 와서 우동이 되는지 묻는 거예요.
면이 다 떨어진 시간이었죠.
출산 예정이 내일인데 병원 가기 전에
이 우동을 먹어야 힘이 날 것 같아서 찾아왔다는 겁니다.
어려울 것 같다고 했더니 두 시간을 달려왔다며 애원하시더군요.
박박 긁어 정성껏 끓여드렸더니 가시면서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시는데 제가 다 눈물이 날 것 같았어요.
우동집 사장은 손님들에게 ‘맛있게 먹었다’는 말 한마디를 들을 때 가장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