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없는 직장인

토요일에 일을 한다고 일을 잘하는게 아닌데…
한심한 발상들

그냥 “일을 시키고 싶다”는 것 외에 토요일에 근무를 해야하는 이유가 무엇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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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들어 ‘주말 없는 직장인’ 늘었다
정원석 기자

입력 : 2015.07.11 06:00
포스코 재무실의 A팀장은 최근 두달동안 휴일인 토요일에 출근하고 있다. 지난 5월 14일 회사가 비상경영쇄신위원회를 출범시키며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에게 ‘자율근무’ 형태로 토요일에 출근할 것을 지시했기 때문이다. 토요일에도 오전 9시까지 출근해 오후 6시까지 근무하며 평일에 챙기지 못했던 각종 검토 사안들을 챙기고 있다.

LG그룹의 주력사인 LG전자는 전략 스마트폰인 G4의 판매가 부진하고, TV 등 가전사업 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되면서 국내영업 조직의 주요 임원들이 한달 전부터 주말에도 출근, 회의를 하고 있다. 긴장의 끈을 놓지 않겠다는 차원에서 일부 임원들은 토요일에도 정장 차림으로 출근하고 있다. 임원들이 출근하면서 팀장급 간부와 주요 보직자들도 휴일 근무를 자처하고 있다.

국내 1위인 삼성그룹은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은 물론 삼성전자 등 주요 계열사 임직원 상당수가 휴일에도 출근해 회의 준비 등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올해 들어 국내 주요 대기업 팀장급 이상 임직원들이 ‘주말이 없는 삶’을 살고 있다. 경기침체가 장기화되고 주요 기업이 실적 부진이 예상보다 오래 지속되면서 주요 대기업들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출근해 업무를 하는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했기 때문이다.

비상경영 체제는 위기 극복을 위해 불가피한 처방이라는 평가를 받지만, 장기화할 경우 오히려 신사업 추진을 뒷받침할 다앙한 아이디어가 나오는 것이 가로막을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근무기강 강화해서 위기의식 높인다”

주요 대기업에서의 비상경영 체제는 조직 내 긴장감을 높이겠다는 의도에서 출발했다.

SK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창립 37년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한 이후 올해 초부터 야근을 부활시켰다. 전임 CEO(최고경영자)인 구자영 부회장 재임기에만 해도 SK이노베이션은 오후 6시 강제퇴근제가 시행됐다. 하지만 이 같은 느긋한 근무기강으로는 저유가에 따른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야근을 부활했다. SK이노베이션은 또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등 구조조정에 박차를 기하고 있다.

서울 서린동 SK 본사 전경. /조선일보 DB ▲ 서울 서린동 SK 본사 전경. /조선일보 DB
현대차그룹도 근무기강 강화 등을 통해 분위기 다잡기에 나서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전 계열사에 ‘오전 8시부터 업무개시, 점심식사는 오후 12시부터’라는 근무시간 규정을 준수하라는 지침을 내려 보냈다. 최근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자동차 사옥 지하 1층 구내식당에는 ‘근무시간 준수와 기초 질서 지키기는 그룹 위상을 높이는 초석이 됩니다’는 안내표지판과 함께 디지털카메라가 설치됐다. 점심을 일찍 먹기 위해 식당에 입장하는 직원을 색출하기 위해서다.

재계에서는 내수 불황과 수출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조직 전체에 자극을 주기 위한 방안으로 대기업들이 근무 규정 강화와 근무시간 연장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팀장급 이상을 대상으로 한 포스코의 ‘토요일 자율 근무’ 역시 대내외 악재에 대응하기 위한 긴장감 조성이 주된 목적이다. 검찰 수사 장기화가 직접적인 계기가 됐지만, 내부적으로는 권오준 회장이 취임 직후 추진한 구조조정의 성과가 부진한 것이 원인이 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구조조정 성과 도출에 전사(全社)적인 역량을 투입하겠다는 권 회장의 의지가 토요근무에 반영됐다는 얘기다.

◆ “장기화되면 신성장 동력 창출에 도움 안될 수도”

문제는 근무 기강 강화를 통한 비상경영의 효율성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시행 초기에는 성과가 일부 나타나기는 하지만 장기화하면 조직원들의 피로가 쌓여 부작용이 더 크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회사 분위기 때문에 주말에 나와서 근무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평일에 밀린 잔업 일부를 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업무에 크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오히려 할 일이 많지 않아 인터넷 검색만 하다 들어가는 경우가 빈번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이 같은 ‘짜내기식’ 비상경영은 신성장동력 창출을 통한 국내 제조업의 경쟁력 강화에 역행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기찬 카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의 어려움은 주요 기업들이 세계 시장 흐름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주말근무와 같은 비상경영을 하는 것은 조직원들의 시선을 기업 내부에 갇히게 만들어 고립을 강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