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유리 인터뷰

인터뷰 기사를 스윽 읽다가
아 이 여자 생각보다 괜찮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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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리, 이상한 여자 아니에요!

사유리가 책을 냈다. 그러려니 했다. 펼친 자리에서 끝까지 읽었다. 그녀를 반드시 만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엘르>는 책 속에 담긴 후지타 사유리란 사람의 진짜 얼굴과 마주하고 싶었다.

화이트 셔츠는 H&M, 팬츠는 Heich Es Heich, 진주 장식 실버 링과 십자가 실버 링은 Numbering. 체인 브레이슬렛은 metrocity.

오늘 촬영이 마음에 안 드는 것 같았어요 원래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해요. 100장을 찍어도 내가 김태희가 되진 않아요. 웃긴 컨셉트는 보여줄 게 있다고 생각하는데, 예쁜 모습은 부담 돼요. 낯가림도 있고요. 원래 저는 친구도 항상 같은 사람만 만나고, 늘 같은 식당에 가서 같은 음식을 먹는 성격이거든요. 저랑 노는 사람들 대부분 성격이 비슷해요. 그래도 요즘은 일부러 새로운 걸 해보려고 해요. 비슷하지 않은 사람으로부터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해서요.

배우기 전에 처음은 누구에게나 스트레스잖아요. 불편하니까 그래도 그걸 통해서 뭔가 느끼는 게 좋아요. 요즘에 좀 달라진 게 좋은 일이 오든 나쁜 일이 오든 행복하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갑자기 변한 계기가 있나요 나이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욕심이 내려가요. 갑자기 일이 끊길 때가 있어요. 옛날엔 너무 불안해서 잠도 못 자고, 무조건 슬프다, 짜증난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지금은 내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내가 멀리서 지켜봐요. 내가 제대로 열심히 하고 있으면 그걸로 만족하고 아무리 돈 많이 벌어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은 걸요.

지금은 별로 괴로운 일이 없나 봐요 아니에요. 많아요. 고정 수입이 있어야 비자를 받을 수 있어요. 아니면 소속사에 들어가거나. 그런데 소속사 들어가는 거 너무 싫어요. 비자가 없으면 여기서 살 수 없어요. 어떡하지. 그때 택시 타고 가면서 혼자 보름달을 봤어요. 그런데 갑자기 너무 행복한 거예요. 변태인가봐요. 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됐어. 돈이 없어. 그런데 달이 너무 예쁘네. 즐기자, 즐기자. 그렇게 생각하니까 100원도 소중하더라고요. 일이 잘되고 있을 때는 행복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지금이 잘되고 있는 때라고 생각했는데 고정으로 하던 프로그램들이 거의 동시에 다 끝났어요. 그런데 멈춰야 할 때는 멈춰야 하는 것 같아요. 횡단보도랑 똑같아요. 멈추라고 할 때 뛰어나가면 사고 나서 죽어요.

일이 안 풀릴 땐 다 때려치우고 일본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갔던 사람의 이야기를 쓴 책이 있어요.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고 밥도 못 먹는 지옥 같은 상황에서 그 사람이 노을을 보고 ‘왜 이렇게 아름답냐?’고 말했대요. 자기 생각만 다스리면 모든 걸 아름답게 느끼는 거예요. 제가 그 노을을 보지도 않았는데 상상할 수 있었어요. 제가 ‘연예인 할 거야’ 한다고 그냥 되는 게 아니잖아요. 일이 생기면 하고, 안 생기면 백수가 되는 거예요. 어떤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예요.

방송계가 보통 회사나 학교보다 훨씬 힘든 곳 아닌가요 그런데 연예인들 보면, 너무 용감한 사람 있잖아요? 사고 나요. 정말 성공한 연예인들 보면 오히려 너무 소심할 정도예요. 잘되고 있는데도 항상 이렇게 될까 저렇게 될까 걱정을 달고 사는 것 같아요. 자신 있고 난 항상 괜찮다고 생각하다가 오히려 큰 사고를 쳐서 방송에 못 나오는 사람들 많이 있잖아요.

진지하게 자기에 대해 고민한다는 게 책에서 느껴졌어요. 방송에서 보이는 모습과 너무 달라서 놀랐고 성격이 예민해서 그럴 수도 있어요. 예민하니까 뭔가 잘못됐을 때 거기서 끊어버리고 나쁜 결과로 끝나버리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래서 자꾸 의미를 넣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방송은 컨셉트이니까 촬영된 부분과 뒤에서 제가 생각하는 것은 다르죠.

책을 보니 사유리 씨가 부모님에게 받은 영향도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좋은 부모님이시더라고요 그렇지는 않아요(웃음). 좋은 것만 뽑아서 썼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죠.

공부해라, 좋은 대학 가라 하는 강압적인 부모님은 아닌 것 같던데 제가 워낙 남의 말을 하나도 안 들어요(웃음). 그거 큰 문제인 것 같아요. 좋은 뜻으로도 나쁜 뜻으로도 다른 사람한테 영향 안 받아요. 이상한 소문 돌아도 신경 안 써요. 내가 보고 마음에 들면 괜찮고.

어릴 때부터 그랬나요 일본에 살 때, 방송에 일반인 출연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한 번 나간 적 있어요. 졸려진다, 졸려진다, 그거 뭐죠? 아! 최면. 그런데 테스트한 사람 중에 나만 최면에 안 걸렸어요. 최면술사가 그러는데 내가 남의 이야기를 아예 안 듣는대요. 잘못됐어도 계속 그대로 가는 거죠. 불을 만지면 뜨겁다고 말해줘도 내가 데어서 다쳐봐야 안 해요. 한마디로 바보예요. 자식을 낳아도 그런 성격일 거 같아요. 매니저 없이 혼자 하는 것도 누가 시키는 것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선입견을 가지고 봐서 당황한 경험은 없나요 소문 같은 거 있잖아요, 사유리는 이렇다 저렇다. 솔직히 상관없어요. 사유리 진짜 바보더라. 그건 그 사람이 생각하는 거니까 상관없어요. 대신 저는 그런 뜻으로 말한 거 아니어도 오해받을 수 있으니까 조심스럽게 해요. 단지 일본에서 연예인이었으면 말실수를 해도 사유리가 잘못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잘못하면 어쩔 수 없이 일본 대표가 되는 게, 일본한테도 한국한테도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결혼이나 연애 같은 사유리 또래 여자들이 할 법한 고민을 솔직하게 쓴 부분이 좋았어요. 연애는 어떻게 하나요 소개팅할 때 상대방은 나를 검색해보고 오잖아요. 이상한 사진밖에 없어요(웃음). 미쳐버리겠어요. 그 남자만이 아니라 시어머니 될 사람도 볼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전 불편한 사람이랑 같이 있으면 멍 때리고 있어요. 그러니까 진짜 좋아하는 사람이랑 결혼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티가 나요.

한국 남자와 결혼하면 어떨 것 같아요 한국 남자냐 아니냐가 중요하다기보단 어떤 남자랑 결혼하느냐가 중요하죠. 따지고 보면 그놈이 그놈이에요. 진짜로 나쁘게 말하면 거시기만 있으면 남자는 똑같아요. 이거 써요(웃음).

우리 고급 잡지예요(웃음). 사람을 볼 때 어떤 것을 보세요 저는 소개팅에서나 친구를 사귈 때나 같아요. 남을 무시하지 않는 사람. 모든 사람에게 공평한 사람이 좋아요. 제가 이봉원 씨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분은 정말 누구한테나 똑같아요. 때가 안 묻었어요. 그거는 원래 성격이 그런 거예요. 도박하는 사람은 도박하지 않겠다고 해도 다시 해요. 도박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면 자기 전 재산을 빼앗겨도 받아들여야지 고치려고 하면 안 돼요. 사람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하는 행동이 다 노출되니까, 연예인의 비애 같은 걸 느끼지는 않나요 플러스가 많으면 마이너스도 많다고 생각해요. 마이너스에 대해서만 뭐라고 한다면 플러스도 받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외로움 많이 타나요 안 타요.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외로움을 즐겨요. 아, 나 외롭다. 변태처럼(웃음). 제가 그렇게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면 애초에 외국에서 혼자 사는 걸 선택하지 않았을 거고 혼자가 싫어서 빨리 결혼하려고 했을 것 같아요.

기존에도 책을 낸 적 있지만 한국어로 쓴 건 처음이죠 내가 쓴 것이 그대로 책이 되는 게 좋았지만, 다 쓰고 보니까 표현이 너무 모자란 거예요. 이 정도밖에 안 되나. 우울하고 답답했어요. 이건 마치 요리사인데 혀에 감각이 없는 사람 같이. 요리하는 방법은 아는데 미묘한 맛을 모르는 것처럼. 그런데 다른 작가처럼 아름답게 쓸 수는 없지만 그보다 내가 생각한 내용을 전달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어요.

책을 내고 싶어서 몇몇 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했다고 들었어요 연예인이 책을 낸다고 하면, 사진집 같이 가벼운 것을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연예인 책이라고 무조건 얼굴 사진 많이 나오는 게 싫었어요. 사실 사진은 한 장도 넣지 않으려고 했는데, 표지에 뒤통수만 조금 나오는 걸로 했어요. 그 정도면 얼굴로 파는 건 아니잖아요.

기존에 트위터에서 했던 말에서 좀 더 확장해서 쓴 글들도 있던데요 트위터에 쓸 때 많이 생각해요.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말해야 좋을지 고민해요. 트위터는 짧으니까, 그때 생각한 것들을 책에서 좀 더 말해봤어요.

남들은 SNS를 가볍게 쓰잖아요. 그렇게까지 의미 있게 해야 해요? 의미 있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야 한다고 느꼈어요. 어떤 방송 들어가면, PD나 작가가 ‘이거 트위터에 홍보해 줘!’ 하는 게 부담스러워요. 제가 ‘허락받아야 하는데?’ 그러면, 소속사도 없는데 누구한테 허락을 받냐고 그래요. 나는 나한테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예요. 연예인한테 트위터에 사진 하나만 올려 달라는 전화 많이 와요. 그렇게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싶었어요. 팔로어를 팔아서 하는 거니까,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아요.

책에 철학자나 작가의 말을 인용한 부분이 많아요. 옛 학자들의 진언 같은 것들을 좋아하나요 처음에 썼을 때는 분위기가 더 무거웠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지금은 무거운 거 좋아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고 했어요. 전 가볍게 쓰려면 일부러 애를 써야 하거든요. 그래도 욕심을 부리지 않은 건, 내가 읽는 책이 아니니까.

사는 게 너무 피곤하니까. 심각한 얘기를 일부러 찾아 읽고 싶지 않은 거죠 경기가 안 좋으면 앤티크 가구가 인기 없대요. 만약 전쟁 중인 나라가 있다면, 거기 사람들은 전쟁영화 안 보고 재미있는 영화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사람은 항상 반대 방향을 보려고 하니까요.

<눈물을 닦고>는 어떻게 붙인 제목인가요 저는 처음에 ‘내가 뭔데’로 하고 싶었어요. ‘니가 뭔데’가 아니라 내가 뭔데. 그런데 누군가 약간 건방지게 보인대요. 오해받을 수 있다고 해서 좀 더 부드러운 느낌으로 했어요. 그러다 제 방송 이미지를 좀 써서 ‘뭐든지 긍정’ 이런 얘기가 나왔어요. ‘내가 긍정맨이다!’ 그건 너무 촌스러운 거예요. 내가 웃긴 사람이라고 하면 하나도 웃기지 않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