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현주씨
맥킨지에 있을 때에 client인 칼라일에서 일하셨던 제현주씨.
어떻게 사시나 했더니. 기사에 나왔네.
생각해볼만한 이야기들.
<저자와의 만남> ‘미생’ 탈출 꿈꾸는 ‘노마드’ 제현주씨
연합뉴스 | 기사입력 2014-12-08 07:00
유수 직장 나와 자신만의 ‘일 조합’ 구성…경험 담아낸 책 발간
변화의 계기는 인문독서모임…공동의 협동조합으로 발전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기자 =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높은 인기를 누리며 드라마화를 통해 더욱 주목받고 있는 웹툰 ‘미생’의 주요 인물중 하나인 ‘오상식 차장’은 직장에 충성을 다하는 전형적인 ‘샐러리맨’으로 그려진다.
늘 붉게 충혈된 눈과 피로에 찌든 모습. 일과 자신을 동일시하며 열정을 다 바쳤지만, 직장으로부터 버림받은 그가 “난 왜 일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일일 뿐인데”라고 내뱉는 대사는 우리 시대 직장인들이 느낄 법한 자괴감을 가슴 저릿하게 보여줬다.
열정만으로도 다 채울 수 없는 게 직장생활이다. 그러나 그 같은 열정도 없이 하루하루 일상에 찌들어가는 ‘미생’들도 적지 않다.
숱한 자기계발서들이 내놓는 교과서 같은 말들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당신이라면 일의 의미에 대한 자기 고민과 도전, 실천의 여정을 꼼꼼히 담아낸 ‘내리막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어크로스)가 하나의 지침이 될 수 있다.
저자 제현주(38) 씨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일을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다면 최선이겠지만, 그러기 위해선 조건들이 갖추어져야 한다”며 “일이 괴로움을 준다면, 왜 그러한지 구체적인 질문들을 정교하게 자문하는 동시에, 일상과 거리가 둔 환경에서 타인들과 고민을 공유하는 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산업디자인과 94학번인 제 씨는 2000년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 글로벌 컨설팅 업체 맥킨지와 사모펀드 칼라일 등을 거쳤다.
그러나 남들의 부러움을 살만한 직장 생활은 정작 그에게 행복감을 주지 못했다. 맥킨지 입사 3년 만에 이직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이후 10년 간 다른 직장 생활들을 이어오면서도 자신과 동일시할 수 있는 한 가지 일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일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건 이 사회의 구조 탓이라고 말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 또한 공허하다고 생각해요.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마음, 그 일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 그 일에 밥벌이 이상의 의미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이미 내 마음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죠. 이런 마음이 어리석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이 같은 마음을 손쉽게 접을 수 있었다면 애초에 문제가 그리 심각했을 리도 없겠죠.”
제 씨는 직장을 그만둘 수 있겠느냐를 컨설턴트 식으로 자문했다. 필요와 비용의 높고 낮음에 따라 자신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을 산출했고, 직장을 그만둘 경우 그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를 점검했다. 그 같은 개인 컨설팅을 거치고 나니 막연한 두려움이 사라졌다고 했다. 그리곤 사표를 던졌다.
“어느 하나의 일에서 온전히 만족감을 얻을 수 없었어요. 일 자체가 싫은 건 아니었는데, 직장을 떠나면 일 생각조차 하기 싫었죠.”
제 씨는 방황의 과정에서도 꾸준히 독서모임 등 활동을 병행했다. 한 출판사가 이벤트로 진행한 철학 독서 모임이 그 삶을 결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여러 독서모임에 참여했지만, 이번엔 달랐어요. 다들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별로 없고, 배경도 제각각인 이들이었지만, 15명가량으로 출발한 모임이 지속적으로 이어졌죠. 그렇게 모임이 2년 반 가량 진행되다보니 다들 모임에서 이직 등 중요한 개인의 의사결정을 상의하는 등 서로간의 친밀도도 높아졌어요.”
제 씨는 독서 모임을 하면서 각자의 생각을 듣고 나누는 동안 스스로 삶의 자세가 바뀌는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제게는 존 에이브럼스가 쓴 ‘가슴 뛰는 회사’가 큰 울림을 줬어요. 또 미셸 푸코의 주체해석학을 함께 끙끙대며 읽었던 것도 많은 도움이 됐죠. 혼자 읽었다면 아예 읽는 것 자체를 포기했겠지만, 함께 읽고 서로 생각을 나누었기에 끝까지 읽어내릴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가슴 뛰는 회사’는 그에게 곧 현실이 된다.
프리랜서 컨설턴트 일을 하던 제 씨는 이들과 함께 별도의 부업을 함께 만들어보자는 제안을 주도적으로 내놓았고, 2012년 6월 9명이 함께 협동조합을 결성해 대표를 맡았다. ‘롤링다이스’란 이름의 협동조합은 그간 십수권의 전자책을 펴냈으며, 최근에는 협동조합 결성 등 사회적 경제 활동 컨설팅으로 영역을 넓혔다.
“일은 여러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는 수단이 되죠. 제겐 컨설팅과 롤링다이스 일이 때로는 생계유지의 수단이, 때로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즐거움이나 인정받고픈 욕구를 충족하는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전보다 훨씬 만족스럽죠. 무엇보다 더 많은 자기결정권을 누릴 수 있다는 게 굉장히 좋아요.”
롤링다이스는 현재 2명이 조합에서 나가고 3명이 들어와 모두 10명으로 꾸려지고 있다. 대부분 제씨보다 연하인 이들은 출판과 웹서비스 기획, 대학생(결성 당시), 디자이너 등 각자의 일을 병행하는 상황이다. 협동조합 일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엿보고 있는 이들은 향후 협동조합의 운영방식을 각자의 부업이 아닌 보다 본격적인 형태로 발전시킬지를 고민하는 기로에 서 있다.
제 씨는 “일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게 목표라면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하는 사람들은 극소수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각자가 능동적인 고민을 통해 자신만의 일의 모델과 목표를 만든다면 행복에 도달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생’에서 오 차장이 애초의 직장 ‘원인터내셔널’을 나와 또 다른 일에 승부를 걸듯이 제 씨와 롤링다이스 구성원들도 스스로의 의지에 따라 ‘미생 시즌2’에 도전하고 있다.
각자에게 맞는 최적의 조합에 하나의 모범답안은 있을 수 없지만, 어떤 답을 구하든 스스로의 모색과 진통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사실엔 이론이 없어 보였다.
jbkim@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