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대 동아리
난 이건 아니라고 봐
이미 반대한 적이 있음
경쟁률 20대 1… 삼성入社 뺨치는 ‘經營(경영) 동아리’
[취업난에 대학마다 인기가입 위해 재수·삼수는 기본]
경영 지식·인맥 쌓을 수 있어… 서류·人性·교수 면접 거쳐야
기업 합동 프로젝트·인턴십 등 방학 때도 동아리 활동
대기업 인사 관계자 “학생 실력 전문화되고 있지만 이런 학생 많아져 또 비슷해져”
지난 15일 오후 서울대학교 경영대 1층 한 강의실 앞에 학생들이 줄을 섰다. 정장 차림 남녀가 ‘리크루팅 설명회’라 적은 팸플릿을 나눠주며 학생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강의실 탁자마다 스타벅스 커피와 비타민 음료, 크리스피 도넛, 치즈케이크와 수제 쿠키가 놓여 있었다. 학생들에겐 ‘경영 전략, 세상과 마주하다’라는 문구가 적힌 노트가 선물로 주어졌다. 곧 불이 꺼졌고 강의실 전면에 프레젠테이션 영상이 상영됐다. 영화 한 편 같은 느낌을 줄 정도였다.
삼성전자·맥킨지 같은 글로벌 기업의 취업 설명회를 뺨치는 이날 행사는 서울대의 한 경영 전략 동아리가 주최한 것이었다. 새 멤버 16명을 뽑는다는 걸 알리는 자리에 40여명이 몰렸다. 복장과 언행이 세련된 동아리 회장은 “우리 동아리 선배들은 이미 각 회사의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고위급 실무진과 실제 경영을 논의하는 인재들의 모임이 될 것”이라는 지도교수의 소개에 박수가 나왔다. 유명 기업에서 일하는 선배가 나와 학생들에게 ‘취업 노하우’를 전수했다. 마지막으로 지원자 모의 인터뷰 등이 이뤄졌다.
하반기 취업 시즌인 9월 중순 경영 전문 동아리 가입 경쟁으로 각 대학 캠퍼스가 후끈하다. 학교마다 신입 회원 리크루팅 설명회가 매일같이 열리고 있다. 서울대 곳곳엔 ‘진정한 최고경영자를 양성한다’ ‘기업들의 Turnaround를 돕는 solution’ 등 문구가 적힌 포스터와 플래카드가 나부꼈다. 연세대 상경대학 본관 건물은 ‘○○○ 리크루팅 설명회. 연사 16기 ○○○(한국은행 거시건전성분석국 ○○팀)…’ ‘6일 전공 면접, 인성 면접’이라는 안내를 담은 포스터로 도배됐다. 고려대 한 경영 동아리가 배포하는 안내서는 대기업 홍보 책자 같았다. 여기엔 선망받는 회사에 들어간 선배들이 기수별로 소개돼 있었다.
경영 동아리 이름은 SMIC, MC SA, YFL 등 언뜻 뜻을 알 수 없는 영어 약자들이다. 마케팅, 투자, 컨설팅, 국제금융, 최고경영자 등 저마다 전문 분야를 내세운다. 기업들의 협조 아래 기업 분석과 산학 협력 프로젝트, 대기업 인턴십, 창업하기, 투자 대회 등 첫 주부터 한 학기 내내 빈틈없는 스케줄을 소화한다고 자랑한다. 경영 동아리에 처음 가입한 학생들은 “동아리 프로그램을 따라가려면 휴학해야 한다”거나 “이번 학기엔 9학점만 들어야 한다”고 말할 정도다.
일반 동아리는 지원만 하면 합격이지만 이런 경영 동아리는 가입 경쟁률이 20대1을 넘기도 한다. 취업에 필요한 실전 경험, 경영 지식, 무엇보다 좋은 회사에 취업한 선배 인맥 등 각종 스펙을 한 번에 얻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자기소개서 등 서류 전형을 거쳐 전공 면접과 인성 면접, 사례 해결, 지도교수 면접, 오리엔테이션 등 5~6단계를 통과해야 ‘합격의 영광’을 누릴 수 있다.
동아리 재수, 삼수생도 흔하다. 작년 경영 전문 동아리 두 곳에 지원했다 탈락한 서울대 사회대 이경민(25)씨는 “‘학교에 있는 나무가 모두 몇 그루냐’는 둥 같은 학생끼리 기업 임원처럼 압박 질문을 하는 통에 당황해 결국 떨어졌다”고 했다. 고려대 경영 학술 동아리 이상윤(25) 회장은 “새로 지원한 학생 중 작년에 떨어진 재수생이 2명, 삼수생도 한 명 있었다”고 했다. 학생들은 여러 경영 동아리에 동시에 지원서를 낸다. 각 학교 인터넷 게시판엔 “오늘 면접 봤는데 연락이 없네. 내일은 잘 봐야지” “어떡하죠. 자정까진 기다려볼래요” 같은 글이 오른다. 연세대 경영학과 4학년 이모(26)씨는 “명문대만 나오면 학벌을 인정받던 시대엔 놀고먹는 동아리가 인기였지만 취업·스펙 전쟁 시대가 되면서부터 경영대 동아리 인기가 치솟고 있다”고 말했다.
경영대 동아리의 인기에 비판적 시각도 많다. ‘모든 문장에 영어를 섞어 쓰는 그들의 허세가 보기 좋지 않다’ ‘같은 학생끼리 면접에서 기업 인사팀처럼 군다’ ‘끼리끼리 스펙 쌓기에만 치중하는 건 대학생답지 않은 폐쇄적 마인드’라는 것이다. 물론 “대학에서 취업을 책임져주지 못하니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것이다” “열정 있다” 등 옹호하는 의견도 있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기업과 호흡을 맞추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다 보니 당장 신입 사원으로 뽑아도 될 만큼 학생들 실력이 점점 전문화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관계자는 “이젠 그런 학생도 하도 많아 결국 또 비슷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