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스펙이 된 세상
너무나 당연한 일이긴 한데
뭐랄까, 매우 답답하다.
희망이라는 것이 없는 세상이 되어간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합격 여부만 따지는 변호사 시험은
오히려 시대를 역행하는 것 같다.
대형로펌, 법조인 자녀만 30여명… 노골적 채용 우대
한국일보 | 기사입력 2014-07-16 04:43 | 최종수정 2014-07-16 09:55
‘빽’ 있어야 로펌행… 현대판 음서제
집안·학벌·인맥이 당락 결정, 객관적 선발기준 없이 밀실채용
최근 3년간 신규취업 변호사 중 SKY 출신이 64%나 차지대형 로펌의 변호사 채용이 실력보다는 인맥과 학벌에 큰 영향을 받는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15일 서울의 한 법학전문대학원의 학생들이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다. 김주성기자 poem@hk.co.kr
변호사시험 성적 비공개 그 후“집안 배경과 인맥, 학벌로 밀실 채용을 하니 서류 통과마저 어렵다.” 사법시험 체제가 아닌 변호사시험 체제에서 대형 로펌들이 집안 배경이나 학벌을 위주로 채용하는 경향이 더 심해지면서 내세울만한 배경이 없는 로스쿨생들은 이러한 좌절감을 표출하고 있다. 현대판 음서제의 부활이라고 할 정도로 법조취업시장에는 집안, 학벌, 인맥만 남았다는 지적이다.
집안 배경이 곧 능력
15일 한국일보가 파악한 10대 로펌의 변호사시험 출신 변호사 채용 현황에 따르면, 대다수의 대형 로펌들이 전·현직 고위 법조인, 정치인, 고위 관료, 대기업 CEO 등의 자녀를 대거 채용했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앤장에는 전 정권 법무비서관(판사 출신)을 지낸 A씨의 딸, 전 헌법재판관의 아들이 채용돼 근무 중이다. 법률시장 2위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다투고 있는 법무법인 태평양은 지역 법원장까지 지낸 현직 법조인의 아들과 딸을 최근 영입했다. 특히 태평양은 지역 로스쿨 출신 채용 할당 카드를 이 법조인 아들에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꼼수’ 지적까지 받고 있다.
정치인 자녀들의 로펌행도 눈에 띈다. 법무법인 세종은 현역 시장의 아들을 채용했으며, 전 국가정보원장의 아들 역시 김앤장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이 밖에 대기업 CEO 딸, 현직 행정부 차관을 친척으로 둔 변호사 등 변시 1~3기 중 이름을 대면 알만한 유력 인사의 자녀 20여명이 로펌에 포진해 있다.
변시 출신 변호사 중 검사를 뽑는 검찰에도 유력 인사의 자제들이 영입됐다. 여당 실세인 한 정치인의 아들이 검사로 임용돼 공익근무관으로 근무하고 있으며, 한 로펌 고문 변호사의 딸 역시 최근 검사로 임용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법관은 변시 출신 변호사 중 “현재 대형 로펌에 취업한 법조인 자녀만 족히 30명은 될 것”이라며 “보수적인 법조계 특성상 쉬쉬하고 있지만, 아버지 ‘빽’으로 취업했다는 이들이 매년 늘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로펌들의 입장에선 유력 인사의 자녀 채용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한 로펌의 인사 담당자는 “로펌은 공익센터가 아니다”며 “자유경쟁시장에서 유력 인사 자제를 채용해 대형 소송 유치에 도움을 받는 것은 또 다른 생존전략일 뿐”이라고 항변했다.
로펌들의 유력 인사 자제 채용 경향은 변호사시험 성적이 공개되지 않으면서 더욱 노골화했다. 주요 로펌들은 변호사시험 합격증과 함께 학부 졸업증, 로스쿨 학점, 자격증, 실무 경력 증명서 등 서류심사를 거쳐 면접으로 채용을 확정한다. 하지만 서류전형에서 인플레이션이 만연한 로스쿨 학점을 불신하고, 자격증과 실무 경력도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아 사실상 서류전형의 객관적 지표가 없다. 면접심사는 아예 제시되는 기준도 없어 불투명성은 더 심각하다. 로펌마다 “우리 로펌과 어울리는 인재상을 찾기 위한 절차를 진행했다”고 할 뿐이다.
법조계에선 로펌의 인사 채용이 개인의 능력보다 배경을 중시하는 전근대적 관행으로 퇴행하면서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의 기득권층의 인맥을 공고하게 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대형 로펌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변호사는 “사법시험 체제에서도 물론 유력인사 자녀들이 로펌에 채용됐지만, 당시에는 사법연수원 성적 등 객관적인 지표가 있어 무리수는 두지 않았다”며 “지금처럼 아무 근거나 기준 없이 (유력 인사들의 자녀를) 채용하는 것은 결국 ‘빽’이 능력인 풍조를 로펌이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배경 약하면 SKY 출신이어야채용 기준의 불확실성이 심화되면서 ‘학벌 지상주의’도 춤추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10대 로펌에 신규 채용된 변호사 238명 중 64.2%가 이른바 SKY(서울?고려?연세대) 로스쿨 출신이다. 로펌들은 서울대 로스쿨 출신 87명(36.6%), 고려대와 연세대 출신 74명(31.1%)을 채용했다. 학부 출신 대학을 보면 서울대 학부 출신들은 121명(50.8%)으로 과반수이고, SKY 출신만 186명(74.1%)에 달했다. SKY 외 서울 주요 사립대 로스쿨 출신 61명 가운데 37명(60.6%), 지방 로스쿨 출신 13명 중 6명(46.1%)이 SKY 학부 출신인 점을 감안한다면, 사실상 로펌 신규채용자 대부분이 SKY 학부 출신이다.
변호사시험 시대를 맞아 포항공대 KAIST 경찰대 출신의 약진도 눈에 띈다. 이들 대학 출신의 신규 변호사는 총 24명으로, 순수 지방대 출신(3명)보다 월등히 많다. 최근 지식재산권, 특허 소송과 경찰 단계의 형사 사건이 증가하면서 전문성 있는 인력이 충원된 것인데, 이들 대학 출신들이 지역 할당을 대부분 차지해 지역 균형을 맞추기는 더욱 어려워진 형국이 됐다.
SKY 출신으로 대형 로펌에서 근무했던 한 변호사는 “로펌 입장에서는 SKY 중심으로 형성된 현 법원·검찰의 인맥을 활용하기 위해 SKY 출신에 대해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법조계에선 성적순으로 줄을 세우던 과거 사법시험 체제도 문제가 있지만 아무 근거 없이 합격증만 교부하는 현 체제가 이어진다면, 오히려 인맥과 학벌이 채용을 좌우하는 현 상황이 고착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최진녕 변호사는 “변호사시험 성적을 무조건 공개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점과 공개할 때 발생할 부작용을 비교하면, 공개했을 때 법률시장의 건전성 확보라는 장점이 더 크다”고 말했다.
정재호기자 next88@hk.co.kr
조원일기자 callme11@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