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축구

난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팀이 꼭 참패하기를 바랬고, 그렇게 참패한 것이 다행스럽다고 여긴다.

그들이 싫어서가 아니라,
결과만 좋다면 그 과정과 스스로 내세웠던 원칙은 망가져도 상관없다는 그 건방진 태도가
반드시 결과로서 심판받아야한다는 생각에.

그게 순리아닐까.

홍명보의 거취, ‘의리사커’ 해명이 먼저다
  
기사입력 2014-06-29 12:18 기사원문보기

[오마이뉴스 이준목 기자]

한국축구의 2014 브라질 월드컵은 초라하게 끝났다. 지역예선부터 누적된 잦은 감독교체와 축구협회의 행정 난맥상이 빚어낸 예고된 비극이다. 사령탑인 홍명보 감독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결자해지라고 했다. 고생한 선수들에 대해서는 박수와 위로도 필요하지만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책임질 것은 책임을 묻고 넘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또 다시 어영부영 넘어간다면 앞으로도 똑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 한국축구가 바로 이번 월드컵의 4년을 허송세월한 이유도 과거의 전례에서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책임의 대상은 1차적으로는 수장인 홍명보 감독이고, 그 다음으로는 홍감독을 선임한 축구협회에 있으며, 마지막으로 대표팀 운영의 난맥상을 왜곡하거나 미화하고 혹은 침묵한 축구인들 전체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의리사커’ 논란 일으킨 장본인, 먼저 해명하라

먼저 홍명보 감독은 이번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의 선수 선발과 전술, 대회 준비 등에 대하여 전권을 행사했다. 뜨거운 감자였던 박주영의 발탁을 비롯하여 기량이 떨어진 런던올림픽 멤버들을 대거 중용하며 ‘의리사커’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이밖에도 기성용의 SNS 논란, 박지성의 대표팀 복귀 추진, 국내파와 유럽파에 대한 차별대우 등 월드컵 준비과정에부터 독선적인 팀운영과 잦은 언행 불일치로 국민들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대표팀의 이미지까지 실추시킨 책임이 있다.

홍 감독은 여론의 비판이 쏟아질 때마다”(이 선수들을 데리고) 결과로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는 논리로 응수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번 월드컵이다.

비교적 최상의 조편성이라는 기대감이 높았고 역대 최대 유럽파들이 합류하며 기대감을 높였으나 돌아온 것은 1무 2패, 승점 1점, H조 꼴찌라는 초라한 현실이었다. 홍 감독이 주장했던 ‘한국형 축구’와 ‘원팀’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특히 홍 감독이 그토록 애지중지했던 박주영을 비롯하여 윤석영, 정성룡, 김보경, 지동원, 홍정호, 김영권, 김창수 등 소위 ‘홍명보의 아이들’은 이번 월드컵에서 대부분 극도의 부진으로 실망감만을 안겼다. 오히려 손흥민, 김신욱, 이근호, 김승규 등 비올림픽팀 출신 멤버이거나 과소평가받던 K리거들이 더 경쟁력 있고 투지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홍 감독의 안목이 틀렸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한 장면이다.

이제는 홍명보 감독이 정확하게 ‘해명’을 해야 할 차례다. 돌이켜보면 홍 감독은 그동안 논란이 된 대표팀 운영에 대하여 한 번도 제대로 책임을 지거나 적극적으로 해명하려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대부분 ‘팀을 위한 결정’이라거나, ‘내부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제대로 된 설명없이 두루뭉술 넘어가기 일쑤였다. 과거 허정무나 최강희 감독도 대표팀 운영을 놓고 구설수에 오르내린 일이 있지만  홍감독만큼 말을 180도 바꾸거나 국민적 비판을 받는 상황에서도 이렇게까지 무성의하고 불성실하게 대응한 경우는 없었다.

그저 (성적을 못내)’죄송하다’나 ‘내가 부족했다’는 한두 마디 이야기로는 불충분하다. 홍감독 본인만 ‘후회없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성패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는 법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홍 감독의 대표팀 운영이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냉정하고 객관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감독 홍명보의 첫 월드컵은 실패했다’는 것이 명백한 팩트다. 결과가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면 이제는 홍 감독이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의 무대에 서야 할 시간이다.

홍명보 감독의 향후 거취에 대한 논의는 그 다음이다. 공식적으로 홍 감독의 임기는 2015년 아시안컵까지다. 감독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홍 감독은 지난 1년간 대표팀을 이끌면서 너무 많은 문제점을 초래했다. 월드컵의 결과도 결과지만 준비과정을 통해 드러난 난맥상을 돌아보면 홍 감독에게 과연 대표팀 지휘봉을 계속 맡겨야 하는지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다.

시간이 촉박하다는 이유로 홍 감독을 유임시킨다면 그것은 지난 월드컵의 결과를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월드컵에 대한 냉철한 자기 반성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이대로라면 홍 감독을 유임시키더라도 내년 아시안컵도 그저 ‘의리사커’의 한풀이 무대로 전락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홍명보 감독의 실패는 곧 그를 선임한 축구협회의 실패

그리고 이제껏 홍 감독의 그림자 뒤에 숨어있는 축구협회와 축구인들도 이번 월드컵의 재앙에 무거운 책임이 있다. 특히 축구협회 수뇌부는 홍 감독의 선임에서부터 이번 월드컵의 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함께 주도했다. 홍 감독의 실패는 곧 그를 선임한 축구협회의 실패이기도 하다.

홍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것은 불과 1년 남짓이지만 축구협회는 지난 4년간 3명의 국내파 감독을 교체하며 대표팀 운영에 혼란을 몰고온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 조광래 감독의 갑작스러운 경질, 최강희 감독의 시한부 선임, 그리고 성인팀 지도경력이 일천한 홍명보 감독의 ‘낙하산 인사’에 이르기까지, 축구협회의 행정은 절차와 과정이 생략되고 장기적인 전략과 비전도 실종됐다.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감독에게 책임을 넘기기에만 급급했을 뿐, 앞장서서 무언가를 책임지려거나 해명하려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대표팀이 잘못된 과정으로 가고 있을 때 중심을 바로 잡아주거나 혹은 외부의 입김에서 감독을 보호해주는 것이 축구협회의 할 일이다. 하지만 축구협회는 홍 감독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아예 방치하다시피 했다. 홍명보 이전의 감독들과 비교해도 달라진 게 없다.

성과가 좋을 때는 너도나도 튀어나와 성공의 지분을 탐했지만, 안 좋을 때는 뒤로 숨어 관망하거나 뒤늦게 비판하는 척 하기 일쑤였다. 이번 월드컵에서 90년대 이전의 수준으로 퇴보한 것은 대표팀의 경기력이 아니라 한국축구 행정과 수뇌부의 마인드였다.

넓게는 홍명보의 의리사커와 대표팀 운영을 미화하거나 동조해온 축구인들 역시 자기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박주영의 황제훈련 논란이나 기성용의 SNS 파문 등 대표팀의 기강과 원칙이 흔들리고 있을 때 축구인들은 과연 무엇을 했을까. 과정과 절차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여론에 대하여 ‘결과로 말하면 된다’는 천박한 논리로 응수해왔다. 전문가로서의 객관적인 견해나 쓴소리보다는 축구 선후배로서의 제 식구 감싸기와 감상적 미화가 주를 이뤘다.

월드컵 특수에만 도취되어 홍명보호와 의리사커의 잘못된 과정을 눈감아왔던 축구인들은 정작 월드컵이 최악의 결과로 끝나자 이제와서 ‘제3자’의 관점으로 입장을 바꾸어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런던올림픽 시절부터 끊임없이 박주영에 대한 특혜를 주장해왔던 차범근이나, ‘대표팀 감독은 결과로 말하는 자리’라며 홍명보의 선택을 줄곧 옹호해왔던 이영표 등이 대표적이다. 그들 역시 이제와서 국민의 편에서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이야기하는 척 위선을 떨기 전에 그들이 과거에 했던 언행을 솔직히 인정하고 해명하는 게 우선일 것이다.  

브라질 월드컵은 단지 축구의 실패가 아니다. 고단한 현실을 축구를 통해 위로받으려던 국민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무엇보다 국민들의 성원과 자부심이 되어야 할 대표팀이 뒤틀린 과정으로 바로 국민들에게조차 외면받는 팀이 되었다는 것이 가장 씁쓸하다.

순간의 감상이나 동정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때 우리가 사랑했던 축구인이나 대표팀이라 할지라도 한국축구의 발전에 어긋나는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엄격히 책임을 물어야 같은 시행착오를 되풀이지않을 수 없다. 팀보다 위대한 개인은 없다는 말처럼, 한국축구 자체보다 더 보호받아야 할 스타나 영웅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