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월드컵 최종 선수명단
아무도 요구하지않았는데 스스로 원칙을 내세웠다.
그리고는 이후에 궤변을 내세우며
이제는 결과만 좋게하기위해 원칙을 깼다고 말한다.
그 원칙에 근거해 준비한 사람들은 무엇이 되는가?
결과만 좋으면 잘못된 과정은 용인될 수 있나?
과적하고 허술하게 관리하여 운항해도 배가 목적지에 닿기만 하면 되는거 아니냐는 논리와 무엇이 다를까
과정이 좋지않다면 그 결과 역시 좋지않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월드컵 최종 엔트’의리’ 논란에 관하여
기사입력 2014-05-11 12:22 |최종수정 2014-05-11 12:25
[뷰티풀게임] ‘서형욱의 월드컵 주간문답’에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독자들께서 궁금해하시는 내용에 답을 드립니다. 때로는 정답을, 때로는 나름의 견해를 풀어 놓는 것으로 ‘네이버 스포츠’ 독자들과 함께 월드컵을 논해 볼 생각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본 컬럼의 댓글이나 ceo@footballist.co.kr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편집자 주>
Q. 지난 8일,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 대표팀 최종 엔트리 23인 명단이 발표됐습니다. 깜짝 발탁은 없었다지만, 팬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치열합니다. 박주영의 발탁부터 박주호-이명주의 제외, 윤석영-김창수의 합류까지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아 보이는데요, 홍명보 감독이 오랫동안 한솥밥을 먹은 선수들 중심으로 최종 엔트리를 발표했다는 이유로 조롱 섞인 ‘의리’ 패러디까지 양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현상을 어떻게 보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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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 최종 엔트리 (사진=연합뉴스)
A. 직업적으로 축구를 하는 선수들의 수는 나라별로 수 만에서 수 백만에 이릅니다. 그 중에서 23인을 가려 뽑는 것은 어디서든 쉽지 않은 일이죠. 게다가 월드컵은 국가는 물론 개인의 최대 영예이기도 한 무대입니다. 따라서,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월드컵 최종 엔트리 발표에는 뒷말이 무성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이번 우리 대표팀 논란을 보면서 개인적으로 우리 사회에 ‘불신’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한 조직의 ‘리더’가 하는 말이 곧이 곧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이 되었구나 싶었거든요. 모든 걸 다 믿는 것이야말로 순진하고 어리숙한 태도일지 모르지만, ‘진심’에 대한 신뢰가 이토록 흔들리는 것은 참 슬픈 일이 아닌가 합니다.
먼저 얘기해볼 것은 이번 최종 엔트리와 관련해 일고 있는 ‘의리’ 논란입니다. 알려진대로 홍명보 감독은 2012년 올림픽 최종 명단 18인 가운데 12인을 이번 월드컵 대표팀에 포함시켰습니다. 올림픽이 연령별 대회임을 감안하면 2년의 간격을 두고 이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 것은 분명 이채로운 결정입니다. 특히, 박주영 윤석영 김창수 등 논란의 여지가 있는 선수들이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 포함되면서 홍 감독이 ‘자신이 내세운 원칙보다 친소 관계에 집착한다’는 비판이 나오게 되었죠.
문제는 ‘불신’이다
사실, 감독은 자신이 이끄는 팀의 성적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당사자입니다. 게다가 한 나라의 대표팀을 지휘하는 감독이 일부 팬들의 비난처럼 단지 ‘의리’나 ‘내 새끼’라는 이유만으로 최종 명단에 특정 선수들을 포함시켰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하자면 그렇지는 않을겁니다. 문제는 리더의 선택에 대한 확신을 갖기가 쉽지 않은 우리네 풍토에서, 자신의 약속을 공개적으로 깨뜨린 리더에게 세상이 그리 너그럽지 않다는 겁니다. 이번 사례의 경우, ‘모든 감독들은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선수들로 최종 명단을 작성한다’는 상식적 명제가 흔들리는 현재 상황은 감독이 자초한 것이라는 얘깁니다.
논란의 씨앗은 대표팀 감독 취임 직후에 뿌려집니다. 홍명보 감독은 지난 여름 대표팀 감독직에 취임하며 이런 원칙을 내세웁니다. “소속팀에서 뛰지 않는 선수는 발탁하지 않겠다.” 지금 생각하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얘기였죠. 이처럼 원칙을 천명하는 행위가 리더십의 근간이자 멋있는 태도일지 모르겠지만, 지키지 못할 말이라면 아예 하지 않는 편이 조직에도 훨씬 더 이로울 때가 많습니다. 강직한 언행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니까요.
위기는 금세 찾아옵니다. 여러 주전급 선수들이 소속팀에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면서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됐죠. 내세운 원칙이 스스로를 옭아매는 동아줄이 된 겁니다. 이를테면 대표팀의 골 결정력이 떨어지는 상황에도 박주영이나 지동원의 발탁이 부담스러운 상황이 된 것이죠. 그러자 홍 감독은 동아줄을 벗어 던지기 위해 박주영에게 팀을 옮길 것을 조언하고 마침내 박주영은 아스널에서 왓포드로 임대 이적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출전 기회를 쉽게 얻지 못합니다. 감독이 내세운 원칙에 다가서기 위해 선수가 의지를 보인 것은 맞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 원칙이 이행된 것은 아닙니다. 왓포드에서도 꾸준히 출전하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이후 홍 감독은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이유로 그를 발탁합니다. 이번 최종 엔트리에 포함된 윤석영 역시 비슷한 케이스죠.
‘원칙 재천명’ vs ‘끼워 맞추기’ 발탁
하지만 팬들은 그 말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원칙은 이미 깨졌고,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는 해명은 초라하게 들릴 뿐이었지요. “팀을 옮기고도 뛰지 못하는 선수를 ‘노력했다’는 이유로 뽑는다면, 옮기지 않고도 매 경기 출전하며 활약하는 선수는 왜 뽑지 않았느냐”는 물음에는 어떤 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요. 뽑을 선수를 정해 놓고 원칙에 끼워 맞추는 식이 되었다는 투의 ‘인맥 축구’ 지적은 그래서 일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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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떠도는 합성 사진. 축구팬들의 여론이 반영된 것이라 눈길을 끈다.
아무튼 이 과정에서 대표팀 감독은 대중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화려했던 선수 시절부터 대표팀 감독 부임 때까지 대중적으로 강직하고 신뢰감있는 인물의 대표격이던 홍명보 감독에게는 크나큰 시련이 닥친 셈이죠. 대표팀 감독의 무게감에 짓눌렸기 때문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일리가 있습니다. 단지 성적만 잘 이끌어내면 되는 자리가 아닌 ‘국민정서법’이라는 표현으로 대표되는 여론의 추이에도 적잖은 영향을 받는 직위이기 때문이죠. 자신의 발언(원칙)을 번복하고 또 사과까지 해야했던 홍명보 감독에게는 지금이 가장 힘든 시기일겁니다.
원칙은 깨졌지만 팀은 포기 않는다
하지만 홍 감독은 원칙을 깨야 했던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쓴 것으로 보입니다. 여론의 압박과 선발 대상 선수들의 경합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자신이 구상하는 팀을 완성하는 데에 뚝심을 발휘했으니까요. 그리고 적어도 이 대목에 관한 한, 감독의 선택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굳이 그럴 필요 없던 공개 발언으로 스스로를 옭아맸던 ‘원칙’의 함정에 빠진 것은 비판의 대상이지만, 결국 최종 명단은 감독이 책임지고 또 밀고 나갔어야 할 부분이니까요. 감독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선수를 원하는 시기에 발탁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니 말이죠.
이 부분에서 짚고 넘어갈 것은 결국엔 ‘번복’해야 했던 홍 감독의 원칙, 즉 소속팀에서 꾸준히 출전했느냐의 여부가 대표팀 발탁의 절대 기준이 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소속팀에서 실전 경험을 쌓고 있지 못하더라도 대표팀에서는 맹활약하는 경우가 없지 않거든요. 활약 여부를 떠나, 소속팀에서의 경기력과 대표팀에서의 경기력 간에 무조건적인 상관 관계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감독이 구상하는 팀에 맞는 선수라 판단된다면, 그 선수가 설령 경기에 꾸준히 나서지 못하고 있다해도 그냥 뽑으면 됩니다. 이번엔 감독이 이를 공개적으로 ‘원칙’이라 선언했기에 큰 문제가 되었던 것이죠.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다면 부담이 적었을 선택이, 자신이 밝힌 ‘원칙’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에 가로막혀 버렸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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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중심, 대표팀 공격수 박주영 (사진=연합뉴스)
결과적으로 홍 감독이 그 원칙을 깨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신뢰가 무너진 것이 이 모든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입니다. 신뢰가 깨진 자리에는 여러 추측과 의심이 끼어드는 법이죠. 홍명보 감독이 자신이 스스로 정한 원칙을 깨고 박주영, 김창수, 윤석영을 발탁하는 과정에 팬들의 비난이 뒤따르는 것은 그래서 감독 본인이 감내해야 할 시련입니다. 하지만 한 발 더 들어가면 이번에 발탁된 선수들이 자격 미달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경기에 뛸 몸 상태가 아니라거나, 엔트리 경쟁 선수에 비해 뒤쳐지는 선수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이명주 대신 박종우, 박주호 대신 윤석영, 차두리 대신 김창수와 같은 선택에는 분명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하지만 감독이 감당하기로 결심한 ‘원칙 파괴’의 문제를 제외하면 어떤 선수를 취사선택하든 그건 감독의 자유이자 존중해줘야 할 권한이기도 합니다. 현재 컨디션이나 성과가 아무리 좋다해도, 그것이 지난 1년간 감독이 직간접적으로 지켜보고 내린 결론보다 우세하다고 볼 이유는 아니니까요. 게다가 월드컵 본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부임한 홍명보 감독 체제의 한계를 인정한다면, 자신이 함께 해 본 경험이 있는, 강점을 확실히 알고 있는 선수들에게 더 높은 점수를 주는 것 자체를 ‘인맥 축구’라 부정적으로 몰아갈 필요는 없다는 생각도 있습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떤 선수 구성으로든 종국에 좋은 성과를 낸다면 모든 논란은 해소될 것이라는거죠. 물론 그렇다고해도 여전히 아쉬움은 남을겁니다. 최종 결과가 좋다면 과정에서의 하자는 묻지 않는 풍토가 계속되는 셈이니까요.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홍 감독은 애초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던 원칙을 내세워 스스로 함정에 빠졌고, 2) 이를 정면 돌파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세운 원칙을 깨면서 최종 엔트리를 선택했으니, 3) 그로 인한 비난은 비난대로 감내해야 하지만, 4) 감독 자신이 원하는 선수들로 최종 엔트리를 구성하는 것 자체를 ‘의리’와 ‘인맥’이라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나 합니다. 한 번 신뢰를 잃은 리더는 모든 것을 잃는다는 말도 있지만, 그래도 인맥에 얽매여 스스로에게 해가 될 선택을 할 정도로 어리석은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가 꽤 긴 시간 보아오지 않았나 싶은 기대감 때문입니다. 모쪼록 대표팀 최종 엔트리를 둘러 싼 논란이 서로에게 상처를 덜 입히는 선에서 정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