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실패하기 쉽다

동의하는 이야기.

정치는 실패하기 쉽다

“여러분 가운데 머리 나쁜 사람은 나처럼 교수 해라, 그냥 엉덩이 붙이고 앉아서 공부만 하면 된다. 머리 좋을 필요 없다. 그러나 머리가 조금 좋은 사람은 기업인이 돼라. 기업은 변화하는 환경에서 결정을 내려야 하고 변수가 많다. 정말 머리가 좋은 사람은 정치를 해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상황에서 수많은 변수를 고려해서 판단하려면 머리가 좋아야 한다.” 대학 다닐 때 정치학 교수가 강의 시간에 한 말이다.

그 말을 듣기 전에는 반대로 생각했다. 권위주의 시절이었다. 특히 야당은 머리 쓸 일이 없었다. 탄압에 꿋꿋하게 맞설 용기, 반독재의 대의만으로 충분했다. 야당 정치인의 전형은 돌쇠형·의리형이었다. 머리 좋은 사람들은 사쿠라가 되었다. 그런데 민주화하면서 야당에도 전략과 정책적 수요가 생겼다. 머리 쓰는 사람이 필요했다. 여당도 정통성을 획득하면서 인재가 몰렸다. 똑똑한 사람이 정치에 넘쳐났고 정치는 공학의 수준으로 정교해졌다. 그러나 정치의 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시민들의 욕구도 다양해지고 변했다. 정책을 판단하는 데 필요한 정보와 지식은 절대 부족하다.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도 모르면서 결정하고 집행해야 할 때가 있다. 정치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정치는 똑똑한 사람 이상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이탈리아의 예는 정치가 어떤 제약 아래 놓여 있는지 잘 보여준다. 베를루스코니는 총리를 세 번이나 한 노련한 정치인이자 기업인이지만 2011년 경제를 위기에 빠뜨리고 물러났다. 경제학 교수·유럽연합의 경제관료로 내성적이고 차가운 판단력을 지닌 마리오 몬티가 총리를 물려받았다. 그는 베를루스코니와 하나도 닮지 않았다. 아니 반대였다. 내각은 기술관료로만 구성했다. 구원투수, ‘슈퍼 마리오’가 왔다고 했다. 베를루스코니의 방법이 잘못됐다면 몬티는 성공해야 했다. 그러나 강력한 긴축은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노조와 재계 모두 반발했지만 설득하지 못했고, 그를 옹립한 정당들도 등을 돌렸다. 내각은 1년 만에 붕괴되었다.

제1당 민주당의 부대표 엔리코 레타가 국정을 넘겨받았다. 시장은 환영했다. 연정참여 3당의 정치인과 기술관료 혼합 내각을 구성하고 긴축 완화로 전환했다. 몬티의 방향이 틀렸다면, 레타의 노선이 맞아야 했다. 그러나 정치 갈등에 휩싸이고, 경제 상황도 개선하지 못한 그는 10개월 만에 당내 반란으로 쫓겨났다. 반란을 이끈 39살의 피렌체 시장 마테오 렌치는 지난 2월 유럽 최연소 총리로 취임해 최연소 내각을 이끌고 있다.

강력한 긴축과 긴축 완화 가운데 어느 것이 정답인지, 경제 전문가·온건한 정치인·정치 신인 가운데 누가 총리로 적합한지 알 수 없다. 70대 재벌, 60대 교수, 50대 정치인 모두 실패했다. 정치경험은 부족하지만 패기 있는 30대는 대안일까. 알 수 없다.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군주를 위해 ‘군주’를 쓴 지 500년이 지났지만 별로 변한 게 없다. 이건 이탈리아만의 현상이 아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보통 사람들의 욕구는 정치가 할 수 있는 걸 넘어선다. 하지만 정치는 못하겠다고 두 손 들 수 없다. 약속하고 지키지 못하는 쪽을 선택한다. 그리고 실망하면 새로운 정치를 다시 약속해서 기대를 모으고 또 실망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그래서 정치는 항상 새 정치를 지향한다고 해야 한다. 새 정치·약속은 정치의 일상이고 오래된 정치언어다. 1960년 7월 총선 때 민주당은 “집권하면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박정희는 민정이양 후 대선 불출마도, 1971년 차기 대선 불출마 선언도 어겼다. 그러나 민주당 정권, 박정희를 평가할 때 약속을 지키지 않은 사실을 중시하지 않는다.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가 약속을 지켰기 때문이 아니라, 산업화했다는 점에 있듯이 박정희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이유 역시 약속을 깼기 때문이 아니라 독재하고 인권탄압했다는 점에 있다. 전두환이 단임 약속을 지켰는데도 왜 평판이 좋지 않은지 생각해보면 도움이 된다.

마키아벨리는 가변적이고 인간의 신중함으로도 통제할 수 없는 포르투나(운명)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말했다. 새 정치·약속을 너무 믿지 않는 게 좋다. 정치는 실패하기 쉽다. 물론 정치의 어려움이 정치의 실패, 정치적 무능을 정당화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정치의 허약성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치 자체를 기득권으로 몰아 질식시키는 일을 피할 수 있다. 정치를 죽이고 세상을 변덕스러운 운명의 여신에게 맡길 수는 없다.

<이대근 논설위원>